친일 재산 환수 법안이 12월 시행되며 친일파 후손 재산 환수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배우 하영 모습. /연합뉴스
떵떵거리며 사는 친일파 후손과 어렵게 사는 독립운동가 후손의 씁쓸한 대비는 2026년 광복 81주년에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 배우 하영의 증조부인 안상호의 친일 논란이 불거지며 대중의 분노가 들끓었다. 마침 이재명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친일 재산을 조사해 환수하겠다고 밝히면서, 해당 집안의 재산도 몰수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의 기대가 높아졌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상호 후손의 재산은 현행법은 물론 곧 시행될 새 법으로도 국가가 환수할 수 없다.
16년 만에 부활한 칼날… '판 돈'도 끝까지 쫓는다
오는 12월, '친일반민족 행위자 재산의 국가 귀속 등에 관한 특별법'이 새롭게 시행된다.
지난 6월 2일에 공포된 이 법을 통해 과거 활동이 종료됐던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2기로 부활해 다시 친일 재산과 행위자를 추적하게 된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친일 재산의 처분 대가(매각 대금)까지 환수할 수 있도록 법에 명시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후손이 친일 재산인 줄 모르는 사람에게 이미 땅을 팔아치웠다면 그 재산 자체를 빼앗아 올 수 없었고, 이는 일종의 재산 세탁이나 은닉 통로로 쓰였다.
손수호 변호사는 17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후손이 친일파 조상의 땅을 이미 팔았더라도, 그 매각 대금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환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친일 재산을 신고하거나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 사람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도 새롭게 도입됐다.
안상호는 '국가 공인 친일파'가 아니다? 엄격한 법의 잣대
그렇다면 왜 새 법이 시행되더라도 배우 하영 집안의 재산, 즉 안상호의 재산은 환수 대상에서 빠지는 걸까.
그가 친일 행위를 한 것은 맞지만, 우리 법이 재산을 귀속시킬 수 있는 환수 대상 친일파의 기준을 대단히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재산이 귀속되려면 '반민족행위진상규명법'이 정한 세 가지 요건 중 하나에 반드시 해당해야 한다.
첫째, 을사조약이나 한일합병조약 등 국권을 침해한 조약을 체결·조인하거나 모의한 자이거나, 일본 제국의회 귀족원·중의원, 혹은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고문·참의 등으로 활동한 자여야 한다.
둘째, 일제로부터 공작·후작·백작·자작·남작 등 귀족 작위를 받거나 계승한 자여야 한다.
셋째, 독립운동가나 그 가족을 살상·처형·학대·체포하거나 이를 지시하는 등 친일 정도가 지극히 중대한 자여야 한다.
손수호 변호사는 "안상호가 대정 친목회에 가입하고 경성부 협의회에서 활동했으며 이완용을 치료하는 등 친일 행위를 했다 하더라도, 적어도 우리 법상 이 요건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실제로 안상호는 정부가 확정한 국가 공인 친일파 명단 1006명은 물론, 민간 기관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 인명사전에 수록된 4700여 명 명단에도 포함돼 있지 않다.
손 변호사는 일반적인 정서상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10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지난 지금, 아주 작은 친일 행위까지 하나하나 들춰내 재산을 환수하는 것은 사실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며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현실적 어려움을 짚었다.
'후작' 이해승 후손의 특급호텔… 끝나지 않은 법적 저항
안상호와 달리, 법적 요건에 완벽히 부합하는 거물급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 환수 역시 쉽지만은 않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직접 환수 소송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지목한 '이해승'이다. 그는 일제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고 내각 대신으로 한일신협약 조인에 찬성했던 핵심 친일파다.
정부가 그의 재산을 환수하려 하자, 현재 서울의 유명 특급호텔인 스위스 그랜드 호텔을 소유하고 있는 그의 손자는 즉각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손 변호사는 이 소송에 대해 "굉장히 오랜 시간 싸웠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 중요한 것은 국가가 그동안 굴욕적인 패소를 당해 왔다는 점"이라며 친일파 후손들의 격렬한 법적 저항 분위기를 전했다.
친일파 재산 환수는 이미 과거에 종결된 사실관계를 사후에 규율하는 진정 소급 입법의 성격을 띠기 때문에 법적 안정성 및 재산권 침해 논란과 끊임없이 충돌해 왔다.
과거 헌법재판소는 3.1운동의 헌법 이념 구현과 민족정기 회복을 근거로 이 법을 '합헌'이라 판단했지만, 소급 입법의 원칙적 금지를 지적하는 위헌 소수 의견도 분명 존재했다.
법망을 빠져나가는 극소수 친일 요건의 한계, 그리고 격렬하게 저항하는 친일파 후손들의 숨겨진 자금을 끝까지 쫓겠다는 국가의 기나긴 전쟁은 오는 12월 새 법 시행과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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