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상징·차세대 주자 승승장구…이후 후단협 사태·탈당 등 부침 겪기도
'이재명 대표 지도부' 최고위원 시절 계엄 예고…총리로 APEC 회의 성공 등 이끌어
(서울=연합뉴스) 오규진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를 통해 17일 선출된 김민석 신임 대표는 86운동권 그룹의 대표적 정치인으로, 이재명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4선 국회의원이다.
김 대표는 20대에 정계에 입문해 최연소 국회의원이 되는 등 전도유망한 청년 정치인으로 주목받았지만,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를 주장하며 탈당한 이후 정치적으로 고된 시간을 보냈다.
유학 등 야인 생활과 당 최고위원으로의 재기 성공, 피선거권 제한 등 부침을 겪은 끝에 2020년 원내에 재입성했고, 국정 2인자인 국무총리에 이어 '로망'이라던 당 대표 자리에 오르면서 여권의 유력한 대권 잠룡으로 떠올랐다.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전국학생총연합 의장을 지낸 김 대표는 1990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DJ)에게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다.
김 전 대통령이 이끄는 신민주연합당과 통합에 참여해 '민주 통합의 첫아들'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국회 입성은 15대 총선에서 이뤄졌다. 1996년 당시 32세의 나이로 당시 총선에서 최연소 의원으로 당선됐고, 16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1997년 대선 국면에서는 김 전 대통령을 밀착 수행하며, 정권교체의 일등 공신이 됐다.
김 전 대통령의 총재 비서실장으로 2000년 새천년민주당 창당을 주도했고, 2002년 지방선거에 38세 나이로 여당 서울시장 후보가 되는 등 차세대 주자로서 발돋움했다.
다만 서울시장 선거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밀려 낙선했다.
같은 해 10월 노무현·정몽준 대선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후보 단일화를 외치며 당을 떠났다.
김 대표의 탈당은 이번 당 대표 경선 국면에서 경쟁 후보의 공세 소재로 소환됐다.
정청래 후보는 TV 토론회 등에서 '후단협(후보단일화협의회) 사태'를 고리로 김 대표를 향한 공세를 강화했다.
김 대표는 이에 '후보 단일화와 탈당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분들께 사과한다'며 "노무현 대통령님께서는 자서전을 통해 2002년 당시를 회고하시고, 제가 최고위원이 되어 봉하를 찾았던 2008년에는 '대의원들의 명령에 의해 공식 화해가 이루어졌다'고 말씀해주셨다"고 밝혔다.
탈당 이후 정치 행보는 내리막길이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고배를 마셨고 미국 뉴욕주립대, 중국 칭화대(淸華大)에서 유학하는 등 야인 생활을 했다.
2008년 당 최고위원에 뽑히며 정치인으로서 부활을 알렸지만 정치자금법 사건에 발목이 잡혀 5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되는 역경을 다시 맞기도 했다.
이후 2014년 9월 마포에 당사를 둔 원외 정당인 '민주당'을 창당하며 정치활동을 재개했으며, 2년 뒤 추미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통합 작업을 통해 다시 더불어민주당으로 돌아왔다.
이어 2020년 21대 총선에서 다시 국회에 입성하면서 그간의 부침을 극복하고 정치적 보폭을 넓혀갔다.
22대 총선에서 4선 고지를 밟은 김 대표는 2022년 대선부터 이재명 대통령과의 인연을 본격적으로 맺어갔다.
김 대표는 당시 이재명 후보 선대위 전략기획본부장을 맡으며 친명(친이재명)계로 부각됐다.
이재명 대표 시절 1기 지도부에서 정책위의장을 지낸 김 대표는 2024년 출범한 '이재명 2기 지도부'의 '수석' 최고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친명계 핵심으로 부상했다.
이 시기 윤석열 정부의 '계엄 시도'를 예고하며 여론의 조명을 받기도 했다.
12·3 비상계엄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치러진 지난해 '장미 대선' 승리에 일조한 뒤 이재명 정부 첫 국무총리로 발탁됐다.
김 대표는 '국민의 새벽을 지키는 새벽 총리'를 자처했다.
총리 취임 후 지난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를 진두지휘하며 성공 개최를 이끌었다.
방미길에도 올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JD 밴스 부통령과 만났고, 올해 3월부터 중동 전쟁 장기화에 대응하는 정부 비상경제본부의 본부장을 맡기도 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총리 임기 마지막 날인 6월 30일 국무회의에서 "(김 총리가) 정말로 크게 국정에 도움이 됐고 전체적 지휘를 너무 잘해주셨다"며 치하했다.
김 대표는 '새벽 총리' 임무를 마치고, '새벽 대표'를 준비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 달 31일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민생을 책임지는 '새벽 당 대표'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당 대표 후보 시절 농수산물도매시장이나 수협 위판장 등에서 새벽 일정을 소화하며 시민들을 만났다. '새벽 대표'를 위한 예열 과정인 셈이었다.
김 대표는 지지자들 사이에선 이 대통령의 대표 시절 오탈자로부터 유래된 '초코'라는 별명으로 친숙하다. 이 대통령이 유튜브 라이브 댓글에 '김민석 최고님'을 '김민석 초코님'으로 잘못 쓰면서 지지자들 사이에 '초코' 별명이 퍼져나갔다.
오랜 기간 사용한 이메일 아이디 'ms2030'이 정치적 대망을 예고해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기도 한다. 국무총리에 이어 당대표에 오르며 대권 잠룡으로서도 입지를 굳게 다졌다는 평가와 맞물리는 대목이다.
내년 재보선과 2028년 총선 성적에 따라 김 대표의 대망론에 한층 더 힘이 붙을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김 대표는 전대 기간 연합뉴스와 만나 이메일 아이디의 취지와 관련해 "국제적인 정치가가 원래 꿈이었다. 어떤 위치든 상관 없이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정치를 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 서울(62) ▲ 서울대 사회학과 ▲ 서울대 총학생회장·전국학생총연합 의장 ▲ 15·16·21·22대 국회의원 ▲ 새천년민주당 김대중 총재 비서실장 ▲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최고위원 ▲ 20대 대선 민주당 중앙선대위 전략기획본부장 ▲ 21대 대선 민주당 중앙선대위 상임공동선대위원장 ▲ 제49대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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