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하다 보면 자주 이런 질문을 받는다.
“선생님, 다른 이야기는 됐고요. 그 사람이 나르시시스트가 맞는지만 알려주세요.”
질문하는 사람은 단순히 정신건강 정보를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다. 대개는 오랫동안 자기 판단을 의심한 끝에 이곳까지 온 사람이다.
상대가 화를 낼 때마다 자신의 말투를 돌아봤고, 연락이 끊길 때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찾았다. 서운함을 표현했다가 예민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고, 나중에는 서운해하는 자신이 정말 문제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됐다.
그런 사람에게 ‘나르시시스트’라는 대답은 하나의 구원이 될 수 있다.
상대가 NPD라면 자신이 겪은 혼란에도 이유가 생긴다. 자신이 부족해서 관계를 망친 것이 아니라는 설명도 얻는다. 그래서 이 질문에는 사실 이런 마음이 숨어 있다.
“내가 겪은 일이 정말 힘든 일이었다고 말해주실 수 있나요?”
그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고통을 인정하는 일과 만나보지도 않은 사람의 병명을 확정하는 일은 같지 않다.
확신에 찬 대답이 더 위험한 이유
상담자가 단호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입니다.”
그 말을 들으면 당장은 속이 시원하다. 지난 관계가 단번에 정리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다음부터 다른 문제가 시작되기도 한다.
문자 한 줄을 받을 때마다 상대의 의도를 해석받고 싶어진다. 갑자기 친절해진 이유, SNS에 사진을 올린 이유, 연락하지 않는 이유까지 누군가에게 물어야 마음이 놓인다. 처음에는 상대에게 휘둘렸는데, 이제는 상대를 해석해주는 사람의 확신에 기대게 된다.
자기 판단을 되찾기 위해 시작한 상담에서 오히려 자신의 판단을 더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상담자가 충분한 정보도 없이 제삼자의 병명을 단정하는 순간, 상담은 내담자가 현실을 이해하도록 돕는 자리가 아니라 권위를 빌려 결론을 내려주는 자리가 된다. 확답은 편안하지만, 그 편안함이 오래 지속될수록 내담자는 다음 답도 바깥에서 구하게 된다.
좋은 상담은 답을 독점하지 않는다. 내담자가 다시 자신의 감각을 믿을 수 있도록 판단할 힘을 돌려준다.
NPD는 성격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인 NPD는 허영심이 많거나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에게 붙이는 공식 명칭이 아니다.
미국 정신분석의학회에서는 과도한 자기중심성, 인정에 대한 욕구, 공감의 어려움이 오랫동안 여러 상황에서 나타나고 대인관계와 생활 기능에 상당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를 말한다.
한 연애에서 무책임하게 행동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알 수 없다. 가족과 친구, 직장에서는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 비슷한 문제가 얼마나 오래 반복됐는지, 다른 정신건강 문제나 상황으로 설명될 가능성은 없는지도 살펴야 한다.
전 연인의 말과 행동을 직접 겪은 사람은 그 관계에 관해서는 가장 중요한 증언자다. 하지만 상대의 발달 과정과 다른 관계, 내면의 경험까지 모두 알 수는 없다. 피해 경험에 관해 말할 자격과 상대의 의학적 진단을 내릴 권한은 별개의 문제다.
병든 사람만 타인을 해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만나면 특별한 원인부터 찾는 경향이 있다.
평범한 사람이 자신의 편의를 위해 거짓말했고, 책임지기 싫어서 상대를 비난했으며, 이익을 얻기 위해 관계를 통제했다는 설명은 어딘가 허전하게 느껴진다. 그보다는 상대에게 특별한 병리가 있었다는 설명이 훨씬 완결된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데 반드시 성격장애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상대가 결국 양보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소리를 지른다. 질투를 사랑으로 받아주는 분위기 속에서 감시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침묵으로 벌을 주면 상대가 먼저 사과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배운 사람도 있다.
이것은 신비한 심리 조종 능력이 아니라, 자신에게 유리한 행동을 반복한 결과일 수 있다.
모든 문제를 나르시시즘으로 설명하면 관계 속 권력과 선택의 문제가 사라진다. 상대는 병에 지배당한 사람이 되고, 그가 얻은 이익과 져야 할 책임은 뒤로 밀린다.
반대로 NPD 진단을 받은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타인을 학대하는 것도 아니다. 병명으로 악인을 골라내려는 태도는 진단받은 사람에게 불필요한 낙인을 남기는 동시에, 진단이 없는 가해자의 행동을 평범한 갈등처럼 보이게 만든다.
사람이 어떤 진단을 받았는가와 자신의 행동에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는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성격을 단정하면 행동이 흐려진다
“그 사람은 나르시시스트였어요.”
이 문장에는 많은 경험이 담겨 있지만, 정작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말을 조금 바꿔보면 관계의 모습이 훨씬 또렷해진다.
“내가 만나기 싫다고 하면 며칠 동안 연락을 끊었습니다.”
“자신이 했던 말을 부인했고, 대화 내용을 보여주면 제가 집착한다고 비난했습니다.”
“내 친구들을 만나는 것은 싫어하면서 자신은 어디에 가는지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과는 했지만 같은 행동이 반복됐습니다.”
이 문장들은 상대의 성격을 추측하지 않는다. 대신 누가 무엇을 했고, 그 일이 어떻게 반복됐는지를 보여준다.
진단명은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장면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상대가 NPD인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어도, 거절했을 때 며칠간 말을 끊었다는 사실은 그대로 남는다.
이렇게 행동을 구체적으로 말하기 시작하면 “혹시 내가 사람을 잘못 판단한 것은 아닐까”라는 불안에서도 조금 벗어날 수 있다. 상대의 정체를 완벽하게 규정하지 않아도 내가 받은 대우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보호하려면 병명보다 경계를 봐야 한다
관계가 안전했는지를 알아보는 데에는 거창한 심리 이론이 필요하지 않을 때가 많다.
내가 싫다고 말할 수 있었는지, 거절한 뒤 보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는지, 서운함을 표현했을 때 대화가 가능했는지를 떠올려보면 된다. 상대가 사과한 뒤 실제 행동이 달라졌는지, 내 인간관계와 시간과 돈을 내 뜻대로 사용할 수 있었는지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 질문에 답하는 동안 상대의 병명은 잠시 비워두어도 된다.
그 사람이 NPD가 아니더라도 반복되는 거짓말을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진단 기준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모욕과 감시를 견뎌야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악인으로 확정해야만 내 경계를 세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상대의 병명을 증명하려는 데 몰두할수록 내 삶의 기준은 뒤로 밀린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밝히는 일보다 그 행동을 앞으로도 받아들일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상담이 돌려주어야 하는 것
상담자는 내담자 대신 사람을 판결하는 사람이 아니다. 혼란 속에서 놓친 사실을 함께 살피고, 내담자가 자기 경험을 다시 믿도록 돕는 사람에 가깝다.
“그 사람은 나르시시스트입니다”라는 말보다 때로는 이런 말이 더 필요하다.
“그 사람이 어떤 진단을 받는지와 관계없이, 당신은 그 관계에서 반복해서 무시당했습니다.”
“상대의 병명을 알아야만 그 일이 잘못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말은 화려하지 않다. 단번에 모든 의문을 없애주지도 않는다. 대신 판단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해준다.
그 사람의 병명은 끝내 공란으로 남을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다시는 받아들이지 않을 대우까지 공란으로 남겨둘 필요는 없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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