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부의 친일행적이 잇따라 확인돼 논란에 휩싸인 배우 하영(본명 안하영·33)이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심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배우 하영 / 하영 인스타그램
하영이 지난 13일 촬영 도중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결국 촬영이 한동안 중단됐다고 마이데일리가 16일 보도했다. 하영은 오랜 시간 휴식을 취한 뒤 안정을 되찾고 남은 촬영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하영은 내년 방송 예정인 SBS 새 드라마 '승산 있습니다'를 촬영 중이다.
증조부를 둘러싼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은 지난 10일이다. 공교롭게도 다음 날인 11일은 하영의 생일이었다. 당초 '승산 있습니다' 제작진은 촬영장에서 케이크를 준비해 하영의 생일을 축하할 예정이었지만, 바로 전날 증조부의 친일 행적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하면서 별도의 축하 행사 없이 조용히 지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논란에도 하영의 드라마 출연에는 현재까지 변동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SBS 측은 앞서 "상당 부분 촬영이 진행된 상태"라며 "해당 사안을 인지하고 있으며 추이를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 추후 정리되는 내용이 있다면 말씀드리겠다"고 밝혔다. '승산 있습니다' 촬영은 막바지 단계로 이르면 3주 안에 마무리될 것으로 알려져 하영이 작품에서 하차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배우 하영 / 하영 인스타그램
이번 논란은 하영이 지난 7일 방송된 KBS 2TV 예능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하면서 시작됐다. 하영은 방송에서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가문 내력을 소개하며 "증조부께서 한양에서 최초로 양의원을 개원하셨고, 고종 황제를 진료하셨다"고 언급했다. 이후 온라인에서는 하영의 증조부가 안상호(1872~1927)가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됐다.
안상호는 일본 도쿄에서 서양의학을 배운 뒤 한국인 최초로 서양식 병원을 연 인물로 알려져 있다. 병원을 운영하면서 왕실 진료에도 참여한 그는 1919년 고종이 쓰러졌을 당시 일본인 의사와 함께 진료를 본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안상호가 친일 의혹을 받아 온 인물이라는 점이다. 1918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실린 기사에는 안상호가 일본인 아내와 결혼한 뒤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다. 지금 조선 옷은 한 벌도 없고 매운 음식도 못 먹는다"고 말한 내용이 담겨 논란이 커졌다.
배우 하영 / 하영 인스타그램
'친일인명사전'을 펴낸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14일 입장문을 내고 안상호의 친일 행적이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연구소는 안상호가 평의원으로 이름을 올린 대정친목회를 이완용·민영휘 등 대표적 친일 인사들을 중심으로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를 표방하며 결성된 친일 단체로 규정했다. 연구소는 이 밖에도 안상호의 주요 친일 행적으로 이토 히로부미 추도회 준비위원 참여, 식민통치·수탈기구 참여, 일제 동화정책의 내면화 등을 꼽았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은 방송 인터뷰에서 경성에서 열린 이토 히로부미 추모 준비위원회 명단에 안상호의 이름이 올라 있다고 설명했다.
안상호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지 않아 친일파로 보기 어렵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연구소는 "발간 당시 안상호의 친일 행적이 선정 기준에 미달해 수록을 보류한 것"이라며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없다는 사실이 곧 친일 행적이 없음을 뜻하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다만 연구소는 "선대의 과오에 대한 단죄를 후손에게 전가하는 연좌제적 발상은 민주사회에서 정당화될 수 없다"며 "논란의 본질은 배우 개인이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조상의 식민지 협력 이력에 대한 최소한의 역사적 성찰 없이 발언해 대중에게 상처를 준 역사 인식과 성찰 부재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영 측의 초기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논란 초기 소속사는 증조부의 친일 행적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냈다가 하루 만에 이를 번복했다. 소속사는 "추가 확인 결과 증조부 안상호가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는 기록이 실제로 존재함을 확인했다"고 인정했다. 하영은 지난 12일 인스타그램에 자필 사과문을 올려 "그동안 가족을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로 증조부의 삶을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부끄럽게도 그런 무지한 상태로 여러 자리에서 증조부에 대한 이야기를 가족의 자랑처럼 꺼내 왔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일을 계기로 관련 자료를 직접 찾아보는 과정에서 증조부의 친일적 행적을 알게 됐다"며 "그 과오를 무겁게 받아들이며 후손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했다. 소속사의 '사실무근' 대응에 대해서도 "충분한 확인 없이 잘못된 입장이 전달되도록 한 점 또한 저의 부족함"이라고 사과했다.
논란의 여파는 하영의 활동 전반으로 번졌다. 하영과 정해인이 공동 주연한 넷플릭스 시리즈 '이런 엿같은 사랑' 관련 인터뷰가 취소됐고, 하영이 모델로 나선 삼성전자 '삼성 아트 TV' 광고와 의류 브랜드 아티드, 네이버플러스 스토어 광고 영상이 잇따라 비공개로 전환됐다. 논란의 발단이 된 '옥탑방의 문제아들'은 다시보기 서비스를 중단하고 유튜브 클립까지 비공개 처리했다. 오는 19일 공개 예정이던 웹예능 '유튜브하지영'의 하영 출연분도 최종 업로드하지 않기로 결정됐다.
여기에 하영의 사과문을 두고 또 다른 논쟁도 일었다.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를 연출한 이도윤 감독과 '참교육'의 홍종찬 감독이 하영의 사과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른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하영은 '중증외상센터'에서 천장미 역을, '참교육'에서 최가윤 역을 맡아 두 감독과 호흡을 맞췄고, '중증외상센터' 시즌2 출연도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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