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없던 관람기준 마련됐지만 소음 규제는 빠져
선박 따라 같은 거리·속도에도 소음 달라…단속·관리도 한계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제주 바다를 헤엄치는 남방큰돌고래에게 관광선박은 얼마나 시끄럽게 들릴까.
사람에게는 탁 트인 바다 위를 유유히 지나가는 배 한 척이지만 물속 돌고래가 느끼는 세상은 다르다.
남방큰돌고래는 시야가 제한된 바닷속에서 소리로 무리와 소통하고 주변 환경을 파악하며 먹이를 찾고 사냥한다.
소리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생존을 위한 핵심 감각인 셈이다.
그런 돌고래 곁을 오늘도 관광선박이 오간다.
◇ 규정조차 없던 10년 전…거리·속도 기준 생겼지만
제주 남방큰돌고래가 선박에 시달려 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0년 전인 2016년 8월 제주 성산 앞바다.
당시 제트스키 한 대가 요란한 굉음과 함께 먹이사냥 중이던 돌고래 무리 한가운데를 그대로 훑고 지나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동작이 느린 새끼를 데리고 달아나는 어미를 뒤쫓아 어미와 새끼를 떨어뜨려 놓았고, 어미를 놓친 새끼 돌고래가 불안한 듯 주변을 맴도는 모습도 목격됐다.
사람을 태운 모터보트 여러 대가 돌고래를 에워싸고 손을 뻗어 만지려는 모습도 목격됐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선박을 이용해 야생 돌고래를 관찰할 때 지켜야 할 기준 자체가 없었다.
미국과 호주 등이 가이드라인과 법으로 돌고래 접근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과 달리 제주 바다의 돌고래는 무방비 상태였다.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관찰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해양수산부는 2017년 '남방큰돌고래 관찰가이드'를 처음 마련했다.
그러나 법적 구속력이 없는 자율지침이었다.
2022년 10월 해양생태계의 보전과 관리에 관한 법률(해양생태계법)이 개정되면서 비로소 과태료 근거가 생겼고 2023년 4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현재 규정은 돌고래와의 거리에 따라 선박 속도와 운항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한한다.
선박은 돌고래와 1천500∼750m 거리에서 속력을 10노트 이하로, 750∼300m에서는 5노트 이하로 줄여야 하고, 300m 이내로 들어가면 스크루(추진기)를 정지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돌고래 50m 이내 접근은 전면 금지되며, 돌고래 300m 이내에 3척 이상의 선박이 동시에 접근해서도 안 된다.
드론으로 돌고래를 관찰할 때 30m 이하로 저공비행하는 행위, 돌고래에게 먹이를 주거나 만지는 행위도 금지된다. 위반하면 최대 2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10년 전에는 없었던 거리와 거리별 속도 기준이 만들어지면서 남방큰돌고래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갖춰진 셈이다.
그러나 최근 제주대학교 연구진은 현행 거리·속도 기준만으로는 선박이 돌고래에게 미치는 수중소음의 영향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했다.
◇ 가까이 다가가는 작은 배, 멀리서도 시끄러운 큰 배
제주대 기초과학연구소 김창수 박사 연구팀은 지난해 6월 한 달간 11일에 걸쳐 서귀포시 대정읍 노을해안로 앞바다에서 드론과 수중청음기인 하이드로폰으로 관광선박과 남방큰돌고래를 추적했다.
분석 대상은 모두 187회의 선박 통과 궤적과 471회의 돌고래 수면 출현 위치다.
그 결과 돌고래와 300m 이내에서 스크루를 정지하도록 한 기준은 모든 선박 유형에서 광범위하게 지켜지지 않았다.
50m 이내 접근금지 기준도 마찬가지였다.
관광 활동을 병행한 어선은 돌고래 조우 사례의 15%가 50m 이내에서 발생했고, 소형 관광선과 대형 관광선도 각각 4.2%, 4.4%가 50m 이내로 접근했다.
그러나 연구진이 주목한 것은 단순한 거리 위반만이 아니다.
현행 규정은 돌고래와의 거리와 거리에 따른 선박 속도를 정하고 있지만 돌고래가 실제 노출되는 수중소음에 대한 별도의 기준은 없기 때문이다.
같은 거리에서 같은 속도로 달려도 선박의 크기와 엔진 출력, 추진기 구조에 따라 돌고래가 듣는 소음은 크게 달라진다.
연구진은 남방큰돌고래가 서로 소통할 때 내는 휘파람 소리인 '휘슬'(whistle) 주파수인 5.3∼12.5㎑와 겹치는 대역에서 선박소음을 분석했다.
배경소음보다 3㏈ 높은 경우를 보수적인 의사소통 방해 가능 기준으로, 6㏈ 높은 경우를 보다 뚜렷한 소음 증가 기준으로 삼았다.
이는 돌고래의 청력 손상 여부가 아니라 선박소음이 돌고래가 주고받는 소리를 가릴 가능성을 살펴본 것이다.
소형 관광선은 전체 조우 사례의 93%에서 3㏈ 기준을, 44%에서 6㏈ 기준을 초과했다. 선박 자체가 가장 시끄러워서가 아니라 돌고래 가까이 접근하는 경향 때문에 높은 소음 노출이 빈번했다.
반대로 대형 관광선은 상대적으로 먼 거리를 유지했는데도 선박 자체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커 돌고래가 높은 소음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속도를 줄였을 때 소음이 감소하는 정도도 배마다 달랐다.
연구진의 분석 결과 대형 관광선은 속도가 1노트 낮아질 때 소음이 1.52∼1.77㏈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된 반면, 소형 관광선은 0.17∼0.28㏈ 감소하는 데 그쳤다.
결국 '얼마나 가까이, 얼마나 빠르게'만 따지는 현행 기준으로는 선박 종류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수중소음까지 관리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특히 자체 소음이 큰 선박은 거리와 속도 기준을 지키더라도 돌고래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소음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게 연구진의 분석이다.
연구진은 이에 따라 충돌과 직접적인 행동 교란을 막기 위한 최소 접근거리는 유지하되 선박 유형과 속도, 거리에 따라 돌고래가 실제 듣게 되는 소음까지 함께 고려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 지침 위반 단속하지만 현장과 적발 사이 '간극'
그렇다면 실제 제주 바다에서 관람지침은 얼마나 지켜지고 있을까.
제주해경에 따르면 관련 규정 시행 이후 남방큰돌고래 관찰 과정에서 위반행위로 적발된 사례는 2023년 3건, 2024년 2건, 2025년 1건 등 모두 6건이다.
2023년 5월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포구 앞 해상에서는 남방큰돌고래 무리에 과도하게 접근한 선박이 적발됐다. 같은 해 8월에는 대정읍 무릉포구 앞 해상에서 돌고래 50m 이내로 접근해 운항한 사례와 돌고래 무리를 발견하고도 스크루를 정지하지 않고 접근한 사례가 각각 적발됐다.
2024년 4월과 9월에도 대정읍 해상에서 스크루를 정지하지 않은 채 돌고래를 관찰하는 선박이 잇따라 적발됐다.
지난해 4월에는 한 선박이 엔진을 정지하지 않은 채 돌고래 무리 50m 이내로 접근해 관광활동을 하고 있다는 전화 신고가 접수됐다.
적발 사례는 모두 남방큰돌고래 주요 서식지이자 돌고래 관광이 활발한 서귀포시 대정읍 해상에 집중됐다.
제주도에 따르면 대정읍 일대에서는 돌고래 관광을 병행하는 어선 대여섯 곳이 주로 활동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위반행위에 대한 현장 확인과 조사는 해경이, 과태료 부과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과 처분은 제주도가 맡는다.
제주도는 해경이 적발하거나 시민단체 등이 신고한 위반 사례를 넘겨받아 현장 조사와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2023년 이후 지금까지 모두 5건에 총 4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제주도 관계자는 "신고가 들어오면 현장에 나가 조사하고 사전통지와 의견진술,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경과 제주도는 관람지침 준수를 위한 홍보와 교육도 벌이고 있다.
제주해경은 지난해 7월 제주도와 합동으로 관내 수상레저사업장을 찾아 남방큰돌고래 관찰가이드 리플릿을 배부하고 돌고래와 거리별 선박 속도와 접근 제한 등을 안내했다.
그러나 지난 3년여간 해경 적발 6건과 제주도의 과태료 부과 5건이라는 수치는 연구진이 관측한 현장의 위반 빈도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현장에서 위반 행위를 적발하고 입증하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적발된 당사자들이 위반 사실을 부인하는 경우가 많아 촬영 영상 등 객관적인 자료 없이는 입증하기 쉽지 않다.
돌고래 관광선박의 위치와 속도, 돌고래와의 거리를 상시 또는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별도의 체계가 없어 위반행위 적발은 해경의 현장 단속이나 시민단체 등의 신고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
연구진은 이를 제한속도 표지판을 설치해 놓고 과속단속 카메라나 현장 점검을 운영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규정이 있더라도 적발 가능성이 낮으면 실제 준수 여부가 운항자의 자율에 상당 부분 맡겨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앞으로 드론과 수중청음기를 이용해 관광선박의 접근거리와 속도, 돌고래의 소음 노출을 지속해서 관찰할 계획이다. 거리 기준 위반 사례를 객관적인 자료로 기록해 변화와 개선 여부를 공개하고, 중대하거나 반복적인 위반이 확인되면 관계기관에 자료를 제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김창수 박사는 "이번 연구가 보여주는 가장 큰 문제는 특정 업체 한 곳의 위반이 아니라 관람지침을 만들고도 준수 여부를 확인할 행정체계가 없다는 점"이라며 "행정이 책임 있는 관리를 통해 관광업계가 지속 가능한 생태관광으로 전환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규정이 만들어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 규정이 바다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게 하고, 거리뿐 아니라 선박 소음까지 남방큰돌고래 보호정책에 반영하는 일이다.
관광객에게는 잠시 스쳐 가는 엔진 소음이지만 제주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남방큰돌고래에게는 먹이를 찾고 무리와 소통하는 '소리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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