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개봉한 한국 뮤지컬 영화 '영웅'이 15일 광복절을 맞아 tvN 광복절 특선 영화로 편성됐다. 방송 시간은 이날 오전 11시다.
영화 '영웅'
영화 '영웅'(감독 윤제균, 제작 JK필름·씨제이ENM, 배급 CJ ENM)은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다룬 동명의 뮤지컬을 기반으로 제작된 한국의 뮤지컬 영화다.
'영웅' 스틸컷 / CJ ENM MOVIE
영화는 2019년에 촬영을 마쳤으나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개봉이 미뤄졌고 3년 만인 2022년 12월 21일에 극장에서 공개됐다.
대한제국의 주권이 일본에게 완전히 빼앗길 위기에 놓인 1909년, 러시아 연해주. 갓 서른 살의 조선 청년 안중근과 독립군들은 자작나무 숲에서 단지동맹으로써 독립운동의 결의를 다진다. 이토 히로부미 저격부터 뤼순 감옥에서의 순국까지 안중근의 마지막 1년을 뮤지컬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연출은 '해운대', '국제시장' 등으로 천만 관객을 두 번 동원한 윤제균 감독이 맡았다. 주연인 안중근 역에는 뮤지컬 '영웅' 초연부터 주역을 맡아온 정성화가 캐스팅돼 스크린으로 옮겨왔다.
이 밖에 김고은, 이현우, 나문희, 배정남, 박진주, 유재명, 정원중이 출연했다. 일제강점기 조선 항일운동을 소재로 한 만큼 역사적 고증에도 공을 들였으며, 이토 히로부미 역은 재일 한국·조선인 배우가, 지바 도시치(千葉十七) 역은 실제 일본인 배우가 연기해 현장감을 더했다.
흥행 성적은 327만 명을 기록했다. 개봉 8일 차에 100만 명을 돌파했고, 이후 '아바타: 물의 길'이라는 초대형 기대작과 같은 시기에 개봉하는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꾸준한 흥행세를 이어갔다. 이는 국산 창작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서 이례적인 흥행으로 평가된다.
음악 퀄리티와 정성화 배우의 호연, 여기에 애국심이 더해지며 관람객 평가가 최상위권을 달렸다는 분석이 많다. 조마리아 역을 맡은 나문희의 열연이 관객들의 눈물을 자아냈다는 반응도 잇따랐다.
'영웅' 스틸컷 / CJ ENM MOVIE
뮤지컬 '영웅'
영화의 원작인 뮤지컬 '영웅'은 2009년 10월 26일 처음으로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기념해 안중근 의사의 후손들이 참관한 가운데 초연됐다. 초연부터 정성화가 안중근 역을 맡았고,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사실상 대체 불가의 배역으로 자리 잡았다.
뮤지컬 '영웅'은 2010년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최우수창작뮤지컬상을, 제16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최우수작품상, 남우주연상, 연출상, 음악상, 무대미술상을 양쪽 시상식에서 모두 받는 이례적인 성과를 거뒀다.
한국뮤지컬대상을 비롯한 각종 뮤지컬 시상식에서 총 18개 부문을 수상하며 창작 뮤지컬 단일 작품으로 최다 수상 기록을 세웠고, 2017년에는 창작 뮤지컬 티켓 판매 연간 랭킹 1위를 달성했다. 2023년에는 국내 창작 뮤지컬 중 두 번째로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
2011년에는 뉴욕, 2015년에는 하얼빈에서 해외 공연도 이뤄졌으며, 안중근 의거가 실제로 일어난 하얼빈에서 공연을 올렸다는 점은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시도였다.
뮤지컬 '영웅' 포스터 / 세종문화회관
안중근 의사와 광복절
안중근(1879~1910)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한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파괴하는 원흉으로 규정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이토는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이듬해 초대 통감으로 부임해 조선의 식민지화 기반을 닦은 인물이었다.
작년 안중근 의사 기념관 재개관식 현장 / 뉴스1
하얼빈역에 이토 히로부미가 내리자 안중근은 그를 환영하기 위한 의장대 뒤에서 기회를 기다렸다. 그리고 열 걸음 정도 거리가 됐을 때 앞으로 나아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
체포된 안중근은 뤼순감옥으로 이송됐다. 재판은 불법적으로 진행됐다. 사건이 일어난 하얼빈은 러시아가 관리하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일제가 재판할 권리가 없었으나, 일제는 러시아에 압박을 가해 안중근을 넘겨 받아 국제법과 국제관례를 무시하고 재판을 강행했다.
안중근은 재판받는 동안 줄곧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을 밝혔으며, 자신의 행동이 한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한 의거였음을 당당하게 주장했다. 재판을 지켜본 영국 기자는 "재판의 승리자는 안중근이었다"고 보도했다.
안중근은 뤼순감옥에서 사형집행을 기다리며 자서전 '안응칠 역사'와 '동양평화론'을 집필했다. 1910년 3월 26일 안중근은 초연한 자세로 뤼순 형장에서 순국했다. 향년 31세였다.
일본인 간수였던 지바 도시치는 안중근의 신념과 인품에 감명받아 평생 그를 기렸으며, 안중근은 사형 집행 직전 지바에게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이라는 유묵을 남겼다.
안중근 의거 이후 35년이 지난 1945년 8월 15일, 일제는 연합국에 항복했고 한국은 광복을 맞았다.
광복절은 일제 강점에서 벗어난 날을 기념하는 동시에 안중근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날이기도 하다. 올해로 광복 81주년을 맞는 이날, 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영웅'이 안방에서 다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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