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괴담] 귀신보다 오싹한 선비들의 싸움과 권력의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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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괴담] 귀신보다 오싹한 선비들의 싸움과 권력의 복수

뉴스컬처 2026-08-15 00: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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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한여름 밤,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이야기는 반드시 귀신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래된 기록 속에는 실제 사람이 벌인 다툼과 권력의 복수, 그리고 상상하기 어려운 형벌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문헌을 들여다보면 웃음으로 시작한 말싸움이 끔찍한 싸움으로 번지고, 정치적 갈등이 인간의 몸을 파괴하는 처벌로 이어지는 일까지 등장한다.

야담집 '용재총화'에는 성균관을 드나들며 공부하던 두 선비 김윤량과 김복창의 다툼이 기록돼 있다. 처음부터 목숨을 건 싸움이었던 것은 아니다. 발단은 서로를 향한 조롱이었다.

사진=AI로 생성된 이미지
사진=AI로 생성된 이미지

김복창은 김윤량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먹을 것만 보면 주섬주섬 챙기는 사람이라며 그를 비웃었다. 조롱은 말에서 그치지 않았다. 김복창은 선비들이 글을 짓는 형식인 ‘찬(贊)’을 빌려 김윤량을 놀리는 글까지 지었다.

글재주를 겨루던 선비들의 세계에서 글은 명예를 세우는 도구인 동시에 상대를 공격하는 무기가 되기도 했다. 김윤량 역시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자신을 비웃은 김복창을 같은 방식으로 되받아치기 시작했다.

말과 글로 이어지던 싸움은 결국 감정을 건드리는 단계까지 치달았다. 김윤량은 자신이 알고 있던 점술 지식을 끌어내 김복창의 운명을 들먹였다. 그리고 김복창이 일찍 죽을 것이라는 악담을 퍼부었다.

그 말이 김복창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더 이상 글이나 말로 받아칠 상황이 아니었다. 김복창은 불이 붙은 숯덩이를 집어 들고 김윤량에 위해를 가했다.

말로 시작된 다툼이 순식간에 돌이킬 수 없는 폭력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논하던 공간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결말이었다.

이 이야기가 섬뜩한 까닭은 폭력이 낯선 인간들에게서 벌어진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문을 익히고 글을 짓던 사람들 역시 감정이 격해지면 상대를 모욕하고, 그 모욕이 폭력으로 번질 수 있었다. 오래된 기록은 인간의 분노가 얼마나 빠르게 이성을 밀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진=AI로 생성된 이미지
사진=AI로 생성된 이미지

그러나 조선의 옛 기록에는 개인 간의 싸움보다 훨씬 무거운 이야기도 남아 있다. '청성잡기'에 남은 정치적 적대가 형벌과 결합하면서 한 인간의 생명을 끊어버린 사건이다.

1644년, 조선의 정치판에서는 심기원과 김자점이 치열하게 맞서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대립했고, 결국 심기원은 반란을 꾀했다는 혐의를 받게 됐다.

심기원에게 내려진 처벌은 일반적인 형벌의 범위를 넘어섰다. 그는 형벌을 집행하는 관리들에게 붙잡혀 형틀에 묶였다. 당시 그는 자신에게 닥칠 처벌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매를 맞거나 귀양을 가거나, 최악의 경우 큰 부상을 입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시작된 형벌은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잔혹했다. 관리들은 심기원의 몸을 형틀에 단단히 묶었다. 심기원은 당황해 무슨 형벌인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김자점의 명령이라는 것 뿐이었다. 이후 심기원은 고통 속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더욱 기이하다. 형벌을 집행하던 사람에게 자신을 대신해 김자점에게 말을 전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자신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처럼 김자점 역시 같은 운명을 맞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말은 훗날 실제 사건과 겹쳐지며 더욱 섬뜩한 일화가 됐다.

심기원이 죽은 지 7년 뒤, 이번에는 김자점이 반역 혐의와 관련된 사건으로 처벌을 받게 됐다. 그의 아들이 반란을 꾀했다는 죄목이 문제였다. 그리고 김자점 역시 심기원에게 내려졌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마지막을 맞이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한때 다른 사람의 죽음을 명령했던 권력자가 결국 자신이 명령했던 것과 같은 처벌을 받게 된 셈이다. 심기원이 남겼다는 마지막 말은 실제 역사의 결과와 겹치면서 마치 저주처럼 전해지게 됐다.

물론 이런 기록을 오늘날의 시선으로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기록이 만들어진 배경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옛 문헌에는 사건의 사실과 전승, 기록자의 평가가 함께 섞여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가 오랫동안 전해진 까닭은 인간의 권력욕과 복수심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압축해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후 그 형벌은 결국 폐지됐다. 사람을 죽이는 데 그치지 않고 오랜 고통을 가하도록 설계된 처벌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기록은 흔적을 지우지 않았다.

'용재총화'에 남은 김윤량과 김복창의 다툼, '청성잡기'에 전해지는 심기원과 김자점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사건처럼 보인다. 하나는 선비들의 사소한 말다툼에서 출발했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 권력 다툼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두 이야기를 관통하는 것은 인간의 분노가 통제력을 잃는 순간이다.

조롱은 폭력이 됐고, 권력은 복수가 됐다. 그리고 복수는 결국 또 다른 복수의 기억을 남겼다.

한여름 밤 역사책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귀신보다 더 무서운 존재를 만나게 된다. 바로 실제로 분노하고, 미워하고, 복수했던 인간이다. 오래된 기록 속에 남은 이 이야기들이 공포로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밤이 깊어질수록 섬뜩한 것은 어둠이 아니다. 수백 년 전 사람들이 남긴 기록 속에서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은 인간의 분노와 권력의 흔적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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