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스스로 묘지명을 쓰던 예순한 살의 정약용이 204년의 시간을 건너 카메라 앞에 선다. 위대한 실학자도, 개혁을 꿈꾼 관료도 아닌 한 인간으로서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다산의 목소리가 AI 기술을 통해 되살아난다.
16일 밤 11시 방송되는 EBS1 ‘AI 드라마 - 부활수업’ 정약용 편에서는 1822년 8월 고향 마재마을 여유당에서 회갑을 맞은 정약용이 자신의 묘지명인 ‘자찬묘지명’을 써 내려가던 때를 배경으로 삼았다.
18년간의 유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지 4년. 집 뒤 언덕에 자신의 묫자리까지 마련한 정약용은 삶을 정리하듯 붓을 들었다. AI로 복원된 정약용은 그날 카메라 앞에 앉아 자신의 이름과 호, 태어난 해를 소개하며 노년의 시간을 담담하게 기록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정약용이 노년의 쇠락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흐려진 눈과 어두워진 귀, 빠진 이마저도 그는 뜻밖의 ‘유쾌한 일’로 받아들인다. 눈이 어두워지니 세상의 시선을 살피지 않아도 되고, 귀가 먹으니 세상 시비에 휘말릴 일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 웃음 뒤에는 파란만장했던 시간이 자리한다. 신유박해로 형제들과 함께 끌려갔고, 가족과 벗을 잃었다. 목숨을 위협받는 순간도 여러 차례 겪었다. 재난이 닥치자 등을 돌린 옛 벗들의 모습도 지켜봐야 했다. 18년의 유배 생활을 견딘 뒤에야 그는 타인의 평가보다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이번 편에서 정약용이 전하는 메시지는 ‘자찬묘지명’을 비롯해 ‘송파수작’,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다산시문집’ 등에 남겨진 기록을 토대로 재구성됐다.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백민정 교수의 학술 자문을 통해 정약용의 삶과 사상, 신유박해 당시의 역사적 배경도 살폈다.
‘AI 드라마 - 부활수업’은 AI가 역사 인물의 말을 임의로 만들어내는 방식과는 다르다. 실제 기록과 전문가 검증, 인간 작가의 집필을 거친 뒤 AI 디지털 복원 기술을 활용해 인물의 모습을 구현한다. 이번 정약용 편에서는 여유당의 짙은 여름 풍경까지 더해져 다산이 생애를 정리하던 당시의 분위기를 담아냈다.
정약용은 500여 권의 저술을 남긴 실학자로 기억된다. 그러나 이번 방송은 그 이름 뒤에 가려진 한 노인의 시간을 들여다본다. 유배와 박해, 배신을 지나 회갑에 이른 정약용이 끝내 붙잡은 것은 세상의 인정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이었다.
제작진은 “정약용을 위대한 실학자로 기억하는 데서 벗어나 회갑을 맞아 자신의 삶을 돌아보던 한 사람의 내면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노년의 쇠락마저 유쾌함으로 받아들이며 마음을 지켜낸 정약용의 모습을 담았다”고 전했다.
동서양의 철학자와 과학자, 소설가 등을 AI로 되살려온 ‘AI 드라마 - 부활수업’은 이번에는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을 통해 시대를 넘어 이어지는 삶의 메시지를 전한다. 정약용 편은 16일 밤 11시 EBS1에서 만날 수 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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