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영(안하영·33)의 증조부 안상호를 둘러싼 친일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민족문제연구소가 안상호의 주요 친일 행적을 공개하며 “화려한 이력 이면에는 친일·부일 협력 행적이 존재하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라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는 14일 입장문을 통해 “최근 언론 및 온라인 공간을 통해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 행정과 후손들의 언행에 대한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며 이같은 내용을 전했다.
연구소는 안상호가 단순히 일제강점기 전문직 의사로 활동한 데 그치지 않고 여러 식민통치 기구와 친일·내선융화 단체에서 활동했다고 지적했다.
연구소에 따르면 안상호는 1909년 안중근 의사에게 피살된 이토 히로부미를 추도하기 위해 민간에서 추진된 ‘국민대추도회’ 준비위원으로 참여했다. 실제 추도회가 열리지는 않았지만 민간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추진된 행사에 참여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게 연구소의 설명이다.
또 “경성부윤의 자문기구이자 일제 식민통치를 뒷받침한 지방행정 보조기구인 경성부 협의회원을 역임했다”며 “식민지 금융수탈기구인 경성 종로금융조합의 조합장을 지냈다”고 설명했다.
매일신보에 1918년 12월10일 실린 기사를 인용하면서 “‘조선 옷은 한 벌도 없고 일본 사람과 똑같다’, ‘조선 사람과 상관이 없다’라며 밝히는 등 일제의 동화정책을 전면적으로 내면화한 대표적 인물로 소개됐다”고도 강조했다.
특히 연구소는 대정친목회에 단순히 이름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친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반박했다.
연구소는 대정친목회를 이완용·민영휘·조중응 등 대표적인 친일 인사들이 중심이 돼 ‘내선융화’를 표방하며 만든 단체로 규정했다.
이어 “대정친목회는 조선인 유력자와 일제 당국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자임했다”며 “나아가 3·1운동 전후 일제가 이른바 문화통치(민족분열책)를 획책할 당시, 대정친목회는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홍보하고 민족의 저항 의지를 무력화하는 정신적 · 사회적 협력기구로 기능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단체의 성격을 고려할 때, (안상호가) 평의원으로 참여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친일 행위”라고 비판했다.
안상호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다는 점을 두고 친일 인사로 볼 수 없다는 주장에도 명확히 선을 그었다.
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수록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 곧 ‘친일 행적이 없음’을 뜻하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며 “ 해방 60여 년 만에 결실을 맺은 사전 편찬 작업은 당시 축적된 학술 연구 성과와 사료의 한계 속에서 진행되었으며, 인력과 자료 부족으로 인해 판단이 보류된 인물도 다수 존재한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논란이 하영 개인에 대한 ‘연좌제식 비난’으로 흐르는 데 대해서는 경계하는 입장을 내놨다.
연구소는 “이번 논란의 본질은 배우 개인이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조상의 식민지 협력 이력에 대한 최소한의 역사적 성찰 없이 발언하여 대중에게 상처를 준 ‘역사인식과 성찰 부재의 문제’에 있다”고 짚었다.
이어 “조상의 과오를 성찰 없이 미화하거나 무비판적으로 소비한 태도에 대한 겸허한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하면서도 “역사적 과오에 대한 법적·정치적 책임은 행위 당사자에게 귀속되는 것이 원칙”이라며 후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하영은 지난 7일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해 자신의 집안이 4대째 의사 집안이라고 소개했다. 이후 증조부가 일제강점기 의사로 활동한 안상호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당시 행적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하영은 지난 12일 자필 사과문을 통해 “후손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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