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낸드플래시(낸드) 메모리 경쟁자 '키옥시아(옛 도시바 메모리)'의 사실상 최대주주에 올라섰다. 당장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향후 전환사채(CB)를 주식으로 전환하면 키옥시아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D램과 고대역폭메모리(HBM)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점으로 꼽혀온 낸드 시장에서 SK하이닉스가 새로운 전략적 선택지를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키옥시아 최대주주 도시바는 최근 지분을 14.48%에서 14.12%로 0.36%포인트(p) 줄였다. 이에 베인캐피탈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BCPE 판게이아 케이만2'가 지분율 14.19%로 최대주주가 됐다.
그래픽=홍연택 기자
해당 SPC에는 SK하이닉스가 CB 형태로 투자하고 있다. 직접 지분을 보유한 것은 아니지만 SK하이닉스의 투자처가 키옥시아 최대주주가 되면서 간접적인 영향력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SK하이닉스가 CB를 의결권 있는 주식으로 전환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키옥시아 지분을 직접 확보하면서 최대주주 지위를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로서는 CB 전환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키옥시아는 글로벌 낸드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어 3위권을 차지하는 업체다. 올해 1분기 매출 기준 시장점유율은 14%로 삼성전자 29%, SK하이닉스 18%에 이어 3위다.
단순히 두 회사의 시장점유율을 합산하면 SK하이닉스와 키옥시아가 32%로 삼성전자를 넘어서는 규모가 된다. 물론 두 회사가 별도 기업으로 경쟁하고 있는 만큼 이를 그대로 시장 지배력으로 볼 수는 없다. 다만 SK하이닉스가 키옥시아에 대한 전략적 영향력을 확대할 경우 글로벌 낸드 시장의 경쟁 구도에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은 있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도 키옥시아는 전략적 가치가 크다. SK하이닉스는 D램과 HBM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낸드에서는 삼성전자와 키옥시아, 웨스턴디지털·샌디스크 등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키옥시아와의 연결고리가 강화되면 직접 생산능력을 늘리지 않고도 낸드 시장에서 전략적 선택지를 확보할 수 있다. 특히 낸드플래시를 기반으로 한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시장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산과 함께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사업적 활용 가능성도 주목된다.
다만 SK하이닉스가 당장 키옥시아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CB를 주식으로 전환해 의결권을 확보하려면 관련 기업결합 심사를 거쳐야 한다. SK하이닉스가 2018년 CB 투자 당시 맺은 계약상 제한도 남아 있다. 당시 계약에는 2028년까지 키옥시아 의결권을 15% 초과해 보유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겼으며 키옥시아의 별도 동의가 없는 한 효력이 유지된다. 이사 선임이나 기밀정보 접근 등에 대한 제한도 존재한다.
일본 정부의 입장도 변수다. 키옥시아는 일본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 가운데 하나인 만큼 일본 정부가 해외 자본의 영향력 확대를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중요하다. SK하이닉스가 CB 전환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려 할 경우 각종 규제와 심사를 넘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SK하이닉스가 당장 CB를 주식으로 전환하기보다는 현재의 투자 지위를 유지하면서 시장 상황을 지켜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의결권 확보를 위해서는 여러 제반 절차를 거쳐야 하는 만큼 SK하이닉스가 당분간 CB를 그대로 보유할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SK하이닉스의 선제적인 투자가 향후 낸드 시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전략적 옵션으로 돌아왔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지분 구조 변화의 의미는 SK하이닉스가 당장 키옥시아를 장악했다는 데 있지 않다. 8년 전 단행한 투자가 낸드 시장의 판을 바꿀 수 있는 잠재적 카드로 다시 부상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향후 CB 전환 여부와 일본 정부 및 관계 당국의 심사, 키옥시아의 지분 구조 변화에 따라 SK하이닉스의 선택지가 어디까지 넓어질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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