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철현 교수, 국민대학교 스마트경험디자인학과 허정윤 교수,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 애넌버그 커뮤니케이션·저널리즘 스쿨 공동연구팀이 아바타를 활용한 메타버스형 원격 심리치료를 경험한 성인 이용자들을 심층 분석해 디지털 심리치료 플랫폼이 갖춰야 할 설계 기준을 제시했다.

◆표정·몸짓 실시간 반영 아바타로 상담…60명 대상 실시
연구팀은 심리건강 관리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만 19세부터 70세까지의 성인 60명을 대상으로 아바타 매개 원격 심리치료를 진행했다.
참여자의 실제 얼굴 대신 익명 아바타가 활용됐지만, 카메라로 촬영한 이용자의 얼굴 표정과 눈의 움직임, 몸짓과 고개 움직임은 실시간으로 아바타에 반영돼 상담자에게 전달됐다.
가상공간도 상담 전 준비공간, 개인 상담실, 상담 후 성찰 공간, 익명으로 다른 이용자와 간접적 연결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 등으로 세분화해 구성했다.
이 가운데 다양한 연령과 특성을 반영해 30명을 선정, 상담 경험에 대한 심층 면담을 통해 질적 분석을 진행했다.
최종 심층면담에는 여성 16명, 남성 14명이 참여했으며 면담에서 나온 2,233개의 초기 분석 항목을 508개로 정리한 뒤 4개의 핵심 주제를 도출했다.
◆‘익명성과 자기표현의 균형’…행동의 사실성이 핵심
실제 외모가 드러나지 않는 아바타가 심리적 부담을 낮춰 이용자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보다 편안하게 표현하도록 돕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신의 모습과 똑같이 생긴 아바타보다 표정이나 몸짓이 자연스럽게 반영되는 ‘행동의 사실성’이 이용자가 아바타를 자신의 분신처럼 느끼는 데 중요한 요소로 확인됐다.
◆상담 전·중·후 이어지는 공간의 역할
상담 전 가상 대기공간은 현실의 병원 대기실처럼 마음을 정리하고 상담을 준비하는 전환 공간, 즉 긴장과 예기불안을 줄여주는 ‘심리적 전이 공간’으로 작용했다.
상담 중에는 사용자가 자신의 아바타 표시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상담 후에는 상담 내용을 기록하거나 감정을 돌아보는 기능, 익명성을 유지하며 다른 이용자와 공감·교류하는 공간에 대한 요구가 나타나, 상담 전·중·후를 하나의 치료 여정으로 설계할 필요성이 제시됐다.
◆‘메타-커넥션’…상담자 역할과 기술적 안정성
연구팀은 가상공간에서의 상담 경험이 그 안에서 끝나지 않고 일상의 감정 점검과 행동 변화로 이어지며, 다시 다음 상담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메타-커넥션(meta-connection)’으로 설명했다.
상담 이후 감정이나 상태를 기록하고 정기적인 심리평가·알림·맞춤 콘텐츠 등으로 자신의 상태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아바타 상담에서는 고개 끄덕임이나 시선, 반응 같은 제한된 신호가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어, 상담자의 아바타가 적절히 반응하지 않을 경우 참여자들이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있는가’라는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다.
연구팀은 아바타를 통한 언어·비언어 소통법을 익힐 수 있는 상담자 교육과 함께 안정적인 네트워크, 다양한 기기 접속 지원, 쉬운 이용 안내가 마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실제 서비스 확대를 위해서는 실시간 표정 정보 등 민감정보를 안전하게 처리할 개인정보 보호·보안 체계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숨어야만 말할 수 있다”…안전행동 우려도
연구팀은 익명 아바타가 가진 장점의 이면도 짚었다.
사회불안이나 수치심이 큰 사람이 아바타 뒤에서만 계속 대화하려 할 경우 ‘숨어 있어야만 말할 수 있다'는 생각이 굳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를 불안을 당장은 줄여주지만 장기적으로는 회피를 지속시킬 수 있는 ’안전행동(safety behavior)‘의 가능성으로 설명하며, 아바타 매개 원격 심리치료를 대면치료와 완전히 분리된 장기 대체수단이 아닌 필요한 치료 수준에 따라 방법을 연결하는 ’단계적 돌봄'‘안에서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번 연구는 아바타 심리치료가 기존 대면치료보다 효과가 우수하거나 동등하다는 것을 입증한 연구는 아니다.
다만 이용자들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익명성을 지키면서도 감정 표현과 상담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요소를 구체적으로 정리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연구팀은 “아바타 외형을 실제 사람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보다 표정과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상담 전·중·후 전 과정을 하나의 치료 경험으로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향후 장기 추적 연구와 대면·화상 상담과의 비교, 치료자 교육, 비용효과 분석, 다양한 문화권·디지털 취약계층 대상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메디컬월드뉴스 김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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