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앉아 지내는 생활이 위험하다는 사실이 처음 과학의 언어로 드러난 곳은 1950년대 런던의 시내버스 안이었다. 스코틀랜드 출신 역학자 제리 모리스는 1949년부터 런던교통공사 소속 남성 노동자 약 3만1천 명을 지켜보며, 하루 종일 앉아 운전하는 기사와 이층버스 계단을 오르내리며 표를 받던 차장의 건강을 견주었다. 당시만 해도 심장병은 나이가 들면 자연히 찾아오는 숙명이거나 유전이나 식습관의 문제로 여겨졌다. 몸을 얼마나 쓰느냐가 심장을 좌우한다는 발상 자체가 낯설었다.
운전기사는 근무 시간의 90%를 앉은 채 보냈고, 차장은 하루 약 600개의 계단을 오르내렸다. 나이도 계층도 근무 환경도 비슷한 두 집단에서 차이를 만든 변수는 사실상 '움직임' 하나였다.
결과는 분명했다. 차장이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숨질 확률은 운전기사의 절반에 그쳤다. 모리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관찰 대상을 넓혔다. 자전거나 도보로 편지를 나르던 우편배달부는 창구에 앉아 일하던 전화 교환원이나 사무원보다 심장병을 확실히 덜 앓았다.
직업이 요구하는 움직임의 양이 곧 심장의 운명을 갈랐다. 1953년 의학지 랜싯에 실린 이 연구는 신체 활동과 건강을 잇는 최초의 대규모 증거이자, 오늘날 '운동 역학'이라는 분야의 출발점이 되었다.
◇ 우주에서 확인된 착석의 대가
오래 앉는 습관의 해악은 뜻밖의 장소에서 다시 확인됐다. 1960∼70년대 무중력에 오래 노출된 우주비행사들이 지상에서 오래 앉아 지낸 사람들과 똑같은 신체 변화를 보인 것이다. 중력을 거스르며 몸을 지탱할 일이 사라지자 근육과 뼈가 빠르게 약해졌는데, 이는 온종일 의자에 몸을 맡긴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과 본질적으로 같았다.
몸을 쓰지 않으면 우리 몸은 조용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신진대사가 느려지고 혈당과 혈압, 지방 대사가 흐트러진다. 쓰지 않는 근육은 줄고 뼈는 성글어진다. 그 끝에는 비만과 하지정맥 혈전증, 심장병과 당뇨병, 근육 위축과 디스크, 우울증과 암이 줄지어 따라붙는다.
문제는 이 과정이 아무런 통증도 신호도 없이 진행된다는 데 있다. 하루하루는 멀쩡해 보이지만, 몸속에서는 대가가 차곡차곡 쌓인다. 일주일에 차를 열 시간 넘게 타거나 TV를 스물세 시간 넘게 보면 심장병 위험이 70% 넘게 뛴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진단은 한층 무겁다. 운동 부족은 고혈압(13%), 흡연(9%), 고혈당(6%)에 이어 전 세계 사망의 6%를 차지하는 네 번째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비만(5%)보다 위험하고 흡연에 버금가는 셈이다.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사실은 누구나 경계하지만, 오래 앉아 있는 것이 그에 맞먹는 위협이라는 사실은 좀처럼 실감하지 못한다.
개별 질환으로 들어가면 그 무게가 더 또렷해진다. 운동 부족은 전 세계 당뇨병의 약 27%, 허혈성 심장병의 약 30%, 유방암과 대장암의 21∼25%를 부르는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런데도 성인 네 명 중 한 명은 WHO가 권하는 최소 활동량조차 채우지 못한다. 우리 사정도 다르지 않다. 많은 직장인이 하루의 70%를 앉아서 보내고, 나머지 30%만 가벼운 움직임에 쓴다. 의자에 붙어 사는 삶이 이미 하나의 질병 환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행히 해법은 멀리 있지 않다. 하루 동안 몸을 얼마나 움직였느냐, 그 총합이 곧 운동량이다. 2017년 네덜란드 연구진은 한 시간쯤 앉았다가 일어나 걷거나 맨손 운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헬스클럽에 가지 않고 상당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굳이 시간과 돈을 따로 들이지 않아도,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쓰는 순간이 모두 운동이 된다는 뜻이다.
걸음 수를 채우는 방법은 생활 곳곳에 숨어 있다.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밟고, 버스나 지하철에서 목적지보다 두세 정거장 앞서 내려 걷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앉을 자리를 찾는 대신 서서 가고, 걸레질할 때 무릎을 펴고, 틈날 때마다 걷는 것도 훌륭한 운동이다.
거실이나 부엌에서 쪼그려 앉았다 일어서기, 발끝으로 서기, 엎드려 뻗치기 같은 5분 운동만으로도 충분하다. 핵심은 한 자세로 오래 머물지 않는 것, 한 시간에 한 번은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 '하루 만 보'의 진실
걷기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하루 만 보'에는 흥미로운 뒷이야기가 있다. 1만 보라는 목표는 의학 연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1960년대 일본의 마케팅에서 태어났다. 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운동 열기가 번지자, 이듬해 시계 제조사 야마사(Yamasa)가 '만보계'라는 걸음 측정기를 내놓으며 붙인 상표명이 그대로 굳어졌다. 만(萬)이라는 글자가 걷는 사람의 모습을 닮았고 숫자가 외우기 쉬웠다는 것이 선택의 이유였다.
반세기 넘게 온 세계가 따라온 건강 수칙이 실은 상품 이름에서 비롯된 셈이다. 정작 후속 연구들이 가리키는 건강 효과의 문턱은 대체로 1만 보보다 낮은 곳에 있다.
여기에 한 가지 단서가 붙는다. 집 안을 느릿느릿 오가는 1만 보와 힘차게 내딛는 1만 보는 같지 않다. 분당 100보 안팎의 빠른 걸음이라야 심혈관에 의미 있는 이득을 준다. 숫자에 얽매일 필요는 없되, 조금 빠르게 걷는 습관이 몸에 남기는 이득만큼은 분명하다.
다만 개인의 의지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현실의 장벽도 인정해야 한다. 걸을 만한 길이 마땅치 않고, 미세먼지가 발목을 잡으며, 어깨를 부딪치는 좁은 길이 걷기를 불편하게 한다. 내리막길과 계단을 내려가는 동작은 무릎 관절에 부담을 준다. 아무리 걷겠다는 마음을 먹어도 걸을 수 없는 환경이라면 그 결심은 이어지기 어렵다.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일이 시민 개개인의 건강과 곧바로 맞닿아 있는 까닭이다.
의자에서 일어나 몸을 움직이는 일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하루를 짜는 방식의 문제다.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고 그 자리에 걸음을 채워 넣는 것, 거기서 건강한 삶이 시작된다.
엄융의 서울의대 명예교수
▲ 서울의대 생리학교실 교수 역임 ▲ 영국 옥스퍼드의대 연구원·영국생리학회 회원 ▲ 세계생리학회(International Union of Physiological Sciences) 심혈관 분과 위원장 ▲ 유럽 생리학회지 '플뤼거스아히프' 부편집장(현) ▲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회원(현) ▲ 대구경북과학기술원 학제학과 의생명과학전공 초빙석좌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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