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경기도미술관의 청년작가전 ‘우리의 여름에게’ [전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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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경기도미술관의 청년작가전 ‘우리의 여름에게’ [전시리뷰]

경기일보 2026-08-09 14:40:5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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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우의 신작 ‘화장실은 2층에 없습니다. 불편을 끼쳐서 죄송합니다’. 실제 경기도미술관 2층에 화장실이 없는 공간의 특성을 안내문과 전광판 등의 형태로 작품화했다. 이나경기자
전재우의 신작 ‘화장실은 2층에 없습니다. 불편을 끼쳐서 죄송합니다’. 실제 경기도미술관 2층에 화장실이 없는 공간의 특성을 안내문과 전광판 등의 형태로 작품화했다. 이나경기자

 

폭발할 듯 뜨거운 여름은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때로는 기계마저 지치게 한다. 하지만 여름이 없다면 생명이 자라날 시간도 없다. 푸른 녹음과 생명력은 그 뜨거움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얻을 수 있다. 청춘도 여름과 닮았다. 지나고 나면 어느 때보다 아름답지만 그 한가운데 선 사람은 누구보다 치열하다. 흔들리고 사유하고 고뇌하면서도 히어로를 꿈꾼다. 그러면서 순수함과 자유로움으로 번뜩이며 성장한다. 경기도미술관이 개관 20주년을 맞아 펼쳐든 ‘여름’은 그런 시간이다.

 

경기도미술관이 대규모 청년작가전 ‘우리의 여름에게’를 열고 있다. 오는 9월27일까지 전시실 1~4에 청년작가 26팀의 작품 93점이 펼쳐진다. 회화와 설치, 미디어, 조각부터 공예·건축·디자인·퍼포먼스까지 장르의 경계도 희미하다. 미술관은 신진작가의 발굴과 지원을 공공미술관의 역할로 보고, 동시대 시각문화의 최전선에 선 청년작가들의 가능성을 중심에 세웠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길 찾기’가 아니다. 번호를 따라 작품을 차례로 훑는 익숙한 관람법도 없다. 사라진 길 위로 저마다 풀어낸 ‘여름’이 펼쳐진다. 관람객은 설계도처럼 생긴 전시장 배치도이자 DIY 작품 해설집을 각자의 방식으로 접어 들고 눈길이 가는 곳으로 발을 옮긴다. 처음에는 우주 한가운데 던져진 듯 낯설지만, 몇 걸음 지나면 이 무질서가 꽤 자유롭고 설레기까지 한다.

 

전승보 관장은 “청년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것이 공공미술관의 중요한 역할”이라며 “이들이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청년의 가능성을 하나의 방향으로 규정하기보다 스스로 발화하도록 ‘무작위성’을 택했다. ‘신체·환경·구조·기록·물질·경계’라는 여섯 단어 역시 작품을 구획하는 칸막이가 아니라 각자의 세계로 들어가는 실마리다.

 

그 자유로운 동선의 시작에서 관람객은 낯섦을 느끼고, 반복 속에서 이내 유머를 발견한다. 건축가이자 작가인 전재우의 신작 ‘화장실은 2층에 없습니다. 불편을 끼쳐서 죄송합니다’는 전시장 입구부터 미술관 곳곳에 안내판과 전광판의 모습으로 불쑥 등장한다. 실제 2층에 화장실이 없다는 건물의 불편을 작품으로 끌어들여 무심코 지나치던 안내정보와 공간의 규칙을 뒤집어 바라보게 한다. 전재우는 “화장실이 없는 게 치부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를 감추는 대신 전면에 내세워 익숙한 공간의 규칙을 비튼다. 익숙함을 비트는 초입은 감각을 깨운다.

 

■ 흙에서 AI, 아버지의 기억에서 우주까지

경기도미술관 개관 20주년 기념전 ‘우리의 여름에게’에 참여한 알오에스(ROS)팀이 신작 ‘네 개의 땅과 흙, 움직임, 소리’를 기반으로 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이나경기자
경기도미술관 개관 20주년 기념전 ‘우리의 여름에게’에 참여한 알오에스(ROS)팀이 신작 ‘네 개의 땅과 흙, 움직임, 소리’를 기반으로 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이나경기자

 

자유로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서로 다른 세계가 한 전시장에서 마주한다. 도자·퍼포먼스 콜렉티브 알오에스(ROS)의 신작 ‘네 개의 땅과 흙, 움직임, 소리’는 강원 양구·경기 남양주와 안산·전북 임실의 야생 흙에서 출발했다. 2023년부터 이어온 재료 연구는 그 땅에 사는 사람과 마을의 이야기로 확장됐다. 심다은 작가는 “재료가 어디에서 출발하고, 작가는 어디서부터 작업을 시작하는지를 고민했다”고 했다. 가장 원초적인 ‘땅’을 좇아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닿은 셈이다.

 

반대편에는 AI와 만난 예술이 있다. 팀펄의 신작 ‘세파리움: 메리골드의 잔상’에서는 관람객이 꾼 꿈을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이를 해몽해 이미지로 펼친다. 첨단기술은 오히려 ‘인간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 향한다.

 

팀펄의 ‘세파리움: 메리골드의 잔상’. 관람객이 입력한 꿈을 인공지능이 분석·해몽해 새로운 이미지로 펼쳐낸다. 이나경기자
팀펄의 ‘세파리움: 메리골드의 잔상’. 관람객이 입력한 꿈을 인공지능이 분석·해몽해 새로운 이미지로 펼쳐낸다. 이나경기자
김연재의 ‘사람은 누구나 죽어, 그런데 어쩌면 난 아닐지도 몰라’. 아버지에 대한 기억에서 출발해 42개 패널에 SF적 상상과 현실의 이미지를 펼쳐냈다. 이나경기자
김연재의 ‘사람은 누구나 죽어, 그런데 어쩌면 난 아닐지도 몰라’. 아버지에 대한 기억에서 출발해 42개 패널에 SF적 상상과 현실의 이미지를 펼쳐냈다. 이나경기자

 

개인의 기억은 우주까지 팽창한다. 김연재의 ‘사람은 누구나 죽어, 그런데 어쩌면 난 아닐지도 몰라’는 투병 중에도 “나는 죽지 않아”라고 말하던 아버지에게서 출발했다. 42개 패널에 1970년대 SF 이미지와 현실의 파편을 뒤섞어 가족의 죽음이라는 사적인 슬픔을 인류의 소멸과 영웅주의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한다.

 

그런가 하면 남다현은 작은 집 한 채로 기억을 파고든다. ‘2008년 7월12일 청구3차 106동 507호’에는 작가의 일기장을 펼친 듯 싸이월드 화면부터 식탁 위 치킨, 우산과 상장까지 한 시대의 일상이 빼곡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장면 하나하나 모두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졌다. 작가의 유년 시절 기억에서 창조된 공간이지만 실제 해당 아파트에는 ‘507호’가 존재하지 않는다. 너무도 친숙한 공간은 관람객 자신의 유년기를 소환하며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흐린다.

 

남다현의 ‘2008년 7월12일 청구3차 106동 507호’. 작가의 유년 시절 기억을 토대로 스티로폼으로 재현한 가상의 집이다. 이나경기자
남다현의 ‘2008년 7월12일 청구3차 106동 507호’. 작가의 유년 시절 기억을 토대로 스티로폼으로 재현한 가상의 집이다. 이나경기자

 

■ 닿지 않는 청춘, 몸과 기계 그리고 경계

한재석의 신작 ‘미궁Ⅱ’. 클로버형 인터체인지를 끝없이 맴도는 자동차의 움직임을 통해 반복과 출구 없는 상황을 보여준다. 이나경기자
한재석의 신작 ‘미궁Ⅱ’. 클로버형 인터체인지를 끝없이 맴도는 자동차의 움직임을 통해 반복과 출구 없는 상황을 보여준다. 이나경기자

 

청춘의 고독과 불안도 서로 다른 얼굴로 드러난다. 송석우의 ‘어긋난 시선의 결’ 속 청년들은 얼굴과 몸을 가까이하면서도 서로 눈을 마주하지 않는다. 한재석의 신작 ‘미궁Ⅱ’에서는 자동차가 클로버형 인터체인지를 끝없이 질주하지만 출구는 다시 입구가 된다. 서로에게 닿지 못하는 시선과 좀처럼 도착하지 못하는 질주가 젊은 세대의 단절과 불안을 묘하게 겹쳐놓는다.

 

몸과 기계의 관계도 뒤섞인다. 작·편곡과 철학, 순수미술을 아우르는 강동훈의 퍼포먼스 영상 ‘베시카 피시스’에서는 직접 작곡한 첼로 선율에 맞춰 흑백 화면 속 두 사람이 거울처럼 움직인다. 맞닿은 손끝은 활과 현처럼 보이고 두 몸은 한 몸이 됐다 다시 갈라진다. 레이첼 윤은 반대로 기계가 사람을 흉내 내게 한다. ‘페니텐트’ 등에서 승마운동기구와 마사지기 같은 돌봄의 기계에 인공 식물을 결합해 인간의 몸짓을 모방시키며, 기계가 인간의 돌봄과 욕망을 온전히 대신할 수 있는지를 되묻는다.

 

레이첼 윤의 작품이 설치된 전시장. 승마운동기구와 마사지기 등 인간을 돌보는 기계에 인공 식물을 결합해 인간의 몸짓과 돌봄을 흉내 내도록 했다. 이나경기자
레이첼 윤의 작품이 설치된 전시장. 승마운동기구와 마사지기 등 인간을 돌보는 기계에 인공 식물을 결합해 인간의 몸짓과 돌봄을 흉내 내도록 했다. 이나경기자

 

자연 역시 평화로운 풍경에 머물지 않는다. 송승준의 신작 ‘호기심이 사라진 방’은 DMZ와 체르노빌 같은 무인지대가 지구 전체로 확장된 세계를 상상하며 인간이 자연을 분류하고 낭만화해온 시선을 뒤집는다. 그런가하면 이해반의 신작 ‘블루밍 클러스터’는 고향 철원의 DMZ에서 발견한 군사 표식과 위장무늬를 회화로 옮겨 보호와 위협, 가시성과 은폐가 공존하는 ‘경계’를 펼쳐낸다.

 

■ 청년 품은 미술관…다음은 아시아

송승준이 신작 ‘호기심이 사라진 방’을 설명하고 있다. 작품은 DMZ와 체르노빌 같은 무인지대를 출발점으로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고 분류하는 방식을 되묻는다. 이나경기자
송승준이 신작 ‘호기심이 사라진 방’을 설명하고 있다. 작품은 DMZ와 체르노빌 같은 무인지대를 출발점으로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고 분류하는 방식을 되묻는다. 이나경기자

 

전시는 청년을 ‘풋풋함’이나 ‘새로움’으로 단순화하지 않는다. 고독과 불안, 가족과 죽음, 기억과 관계, 기술과 자연까지 이들이 바라보는 세계는 넓고 깊다. 지난해 9월부터 100명이 넘는 작가와 만난 심민하 학예연구사는 “매체의 다양성과 복합성에 주목했다”라며 “청년작가들의 현실과 고달픔,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려는 모습에서 이들의 미래가 궁금해졌다”고 덧붙였다.

 

개관 20주년의 경기도미술관은 올해 ‘환대’와 ‘연대’를 내걸고 상반기 소장품전으로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이번 전시에서 청년의 ‘오늘’을 마주한 뒤, 연말 아시아 작가전으로 시선을 넓힌다. 오는 23일 알오에스 팀의 ‘흙으로 빚는 극’ 워크숍, 9월19일 퍼포먼스 ‘뿌리기반사회’ 등 전시와 연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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