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정부와 여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세금과 대출을 조여 주택 수요를 관리하는 동시에 공급을 늘리겠다는 정책 방향은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정책의 효과가 충분히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시장의 불만을 달래기 위한 해법이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발표된 부동산 세제개편안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시가 30억원 이하 1주택자의 보유세와 양도소득세 부담이 오히려 줄어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청년과 신혼부부, 무주택 실수요자를 대상으로 대출 규제를 일부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공급 확대 역시 주요 정책 과제로 제시됐다.
그럼에도 시장의 반응이 냉담한 것은 정책의 명분과 실제 체감 사이에 간극이 있어서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장기간 상승하는 가운데 보유세와 거래세를 동시에 손보는 방식은 주택을 보유하거나 거래하려는 사람 모두에게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 특히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과세 강화는 임대주택 공급과 연결된다는 반론까지 불러왔다.
정책에는 언제나 목적과 비용이 따른다.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세제와 금융 규제를 강화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거래가 위축되거나 임대 물량이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 부작용 역시 정책 설계 단계에서 설명돼야 한다. '집값을 잡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이유만으로 비용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정책적 난맥상이 청년층에게 '조금 불편하게 살면 된다'는 식의 메시지로 연결될 때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이 폐기되는 버스를 주거공간으로 개조해 대학가 청년들의 단기 거처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가 삭제한 사례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이디어 차원의 제안이었다는 해명에도 비판이 거셌던 이유는 단순히 버스라는 공간의 특이성 때문만은 아니다.
주거비 때문에 부모와 함께 살거나, 직장과 먼 지역으로 밀려나거나, 좁은 원룸에서 생활하는 청년들에게 주거는 이미 생활의 가장 현실적인 문제다. 그런 상황에서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버스를 주거공간으로 활용하자'고 말하면, 정책의 대상이 된 청년 입장에서는 그것이 창의적인 대안인지 아니면 '당신들은 이 정도면 되지 않느냐'는 말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역사적으로도 민생의 어려움을 해결한다는 명분 아래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이 정치적 신뢰를 무너뜨린 사례는 적지 않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프랑스 혁명기의 마리 앙투아네트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게 하라'는 말은 오늘날까지 현실을 모르는 지배층의 상징처럼 사용된다. 다만 이 말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실제로 했다는 증거가 없으며, 장 자크 루소의 저작에 등장한 익명의 '위대한 공주'에 관한 일화가 훗날 그녀에게 연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여부와 별개로 이 일화가 수백 년 동안 전해져 온 이유는 분명하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서민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인식은 사실관계 이상의 정치적 힘을 갖기 때문이다.
현대 정치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된다. 영국에서는 2016년 당시 주택장관 개빈 바웰이 청년층의 주택 구입을 돕기 위해 더 작은 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언급했다. 당시 런던의 1인용 주택은 이미 유럽에서 작은 편이었고, 일부 소형 주택은 400제곱피트 안팎에 불과했다. 바웰 장관은 젊은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작은 집이라도 있는 편이 집을 전혀 갖지 못하는 것보다 낫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논리는 단순했다. 집값이 비싸다면 집을 작게 만들면 된다. 그러나 이 논리에는 중요한 전제가 빠져 있다. 집이 작은 것이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집값과 소득의 격차가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거공간을 줄이는 방식은 선택지가 충분한 시장에서는 하나의 상품 전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주거비 부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작은 공간을 선택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제약이다. 해외에서도 '다운사이징'을 젊은 저소득 임차인에게 사실상 강요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나온 바 있다.
한국의 '버스 하우스' 논란도 같은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버스를 활용한 임시주거 자체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재난이나 긴급 주거지원처럼 한시적이고 명확한 목적이 있다면 이동식 주거시설은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해외에서도 컨테이너 등을 활용해 신속하게 임시 또는 저렴한 주거공간을 공급하는 사업이 실제로 운영되고 있다. 미국 애틀랜타에서는 컨테이너를 활용한 주거 프로젝트가 추진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을 청년 주거정책의 상징적인 대안으로 제시하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버스 한 대가 아니다. 안정적인 소득을 얻고, 직장과 가까운 곳에서 거주하며,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더라도 감당할 수 있는 주거비를 갖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토지와 정비사업의 제약을 완화하며, 임대주택 공급이 지속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먼저다. 필요한 경우 금융 지원을 확대하되 자산 가격을 다시 끌어올리는 부작용도 함께 관리해야 한다.
결국 주거정책의 핵심은 '얼마나 좁은 공간에서 살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왜 정상적인 주거를 감당하기 어려운가'에 대한 답을 찾는 데 있다.
정부가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만큼 앞으로 나올 수도권 주택 공급대책은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공급 물량을 늘린다는 숫자만 제시할 것이 아니라 실제 착공과 입주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도심에서 필요한 주택이 어느 지역에 공급되는지, 정비사업과 공공사업의 역할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까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세제 역시 마찬가지다. 1주택자와 다주택자, 거주자와 비거주자를 하나의 잣대로 다루기보다 각각의 경제적 기능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야 한다.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민간 임대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정책은 선의만으로 평가받지 않는다. 결과와 비용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부동산 정책은 세대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분야다. 이미 주택을 가진 사람에게는 세금이 문제가 될 수 있고, 집을 사려는 사람에게는 가격과 대출이 문제가 된다. 임차인에게는 전월세 가격과 공급량이 중요하다. 같은 정책이 누구에게는 보호막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정치권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특정 세대를 정책의 실험 대상으로 바라보는 태도다.
청년들에게 내 집 마련을 포기하라고 말하면서 임시주거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 작은 집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하는 것, 지금보다 불편한 주거환경을 감수하면 된다고 설득하는 것은 정책의 실패를 개인의 적응 문제로 바꿔버릴 위험이 있다.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특별한 특혜가 아니다. 부모 세대가 누렸던 것과 동일한 조건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도 아닐 수 있다. 적어도 일하고 저축하고 미래를 계획하면 주거의 가능성이 조금씩 커지는 사회를 원한다는 데 더 가까울 것이다.
부동산 정책이 청년에게 희생을 요구해야 할 때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희생에는 명확한 이유와 기간, 보완책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 역시 그 비용이 실제 생활에서 어떤 의미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시장과 싸우지 않겠다'는 말보다 중요한 것은 시장이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청년을 위한 정책'이라는 명칭보다 중요한 것은 청년이 실제로 그 정책을 선택할 수 있는가다.
버스를 집으로 바꾸는 발상보다 먼저 바꿔야 할 것은 주거정책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선일지도 모른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더 작은 희생을 요구하는 정책이 아니라, 왜 그들에게 희생이 반복해서 요구되는지를 설명하고 그 구조를 바꾸려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박성대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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