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운명을 바꾼 협상, ‘조미수호통상조약’ 탄생의 숨은 계산('시간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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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운명을 바꾼 협상, ‘조미수호통상조약’ 탄생의 숨은 계산('시간여행자')

뉴스컬처 2026-08-08 00:00:00 신고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19세기 국제 사회는 화약 냄새만 가득한 시대가 아니었다. 각국은 종이 위에 서명을 남기며 관계를 규정했고, 조약 한 줄이 국가의 방향을 바꾸기도 했다. 외세의 압박이 거세지던 시기, 조선 역시 더는 문을 걸어 잠근 채 버틸 수 없었다. 선택은 늦었지만 치열했다.

오는 9일 밤 9시 30분 방송되는 KBS1 ‘역사스페셜-시간여행자’는 1882년 체결된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중심으로 조선이 처음 서양 국가와 외교 관계를 맺게 된 과정을 따라간다. 고종의 결단, 청의 개입, 미국의 계산이 맞물린 이 협상은 국가의 향방을 가른 분기점이었다.

■ 첫 문을 연 조선,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의미

사진=역사스페셜-시간여행자
사진=역사스페셜-시간여행자

1882년 5월, 제물포에서 체결된 조약은 조선이 서양과 맺은 첫 공식 외교 관계였다. 오랫동안 이어진 통상 거부 정책이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조선은 더 이상 고립으로 버틸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 조약은 불평등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지만, 조선이 반드시 확보하려 했던 조건들도 담겼다. 대표적으로 관세자주권은 외국 상품에 대한 과세 권한을 조선이 직접 행사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었다. 당시 동아시아 국가들조차 확보하지 못했던 권리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또 하나의 핵심은 ‘거중조정’이다. 외국과의 분쟁 시 미국이 중재 역할을 맡는다는 내용으로, 조선은 이를 외교적 안전장치로 인식했다. 약한 국가가 국제 질서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 대응이었다.

■ ‘조선책략’이 흔든 조정, 통상 거부에서 전환까지

사진=역사스페셜-시간여행자
사진=역사스페셜-시간여행자

조약 체결의 배경에는 한 권의 책이 있었다. ‘조선책략’은 당시 조선 사회에 강한 파장을 일으켰다. 이 책은 국제법에 기반한 외교 질서를 설명하며 조선이 취해야 할 전략을 제시했다.

특히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협력해야 한다는 내용은 기존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조선 내부에서는 이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이어졌다. 외부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길이 제시된 셈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청나라 외교관의 손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청은 조선에 미국과의 관계 수립을 권유하며 자신들의 전략적 구상을 관철하려 했다. 이는 조선을 둘러싼 국제 정치의 복잡성을 보여준다.

■ 고종의 선택과 내부 충돌, 거센 반발의 파고

외교 방향의 변화는 즉각적인 저항을 불러왔다. 위정척사 사상을 따르던 유생들은 대규모 상소 운동을 벌이며 통상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조정은 거센 압박 속에서 갈라졌다.

고종은 공개적으로 결정을 밀어붙이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그는 반대 여론을 피해 비밀리에 외교를 추진하며 돌파구를 찾았다. 국가의 생존이 걸린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권력 내부의 긴장과 충돌이 뒤엉킨 순간이었다. 조선은 외부의 압력뿐 아니라 내부의 균열과도 동시에 싸워야 했다.

■ 미국·청·조선, 서로 다른 계산이 만든 협상

사진=역사스페셜-시간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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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통상 확대를 목표로 조선에 접근했다. 슈펠트 제독은 여러 차례 조선을 찾으며 관계 수립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결국 그는 청의 도움을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청의 핵심 인물 이홍장은 조선 문제를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조선을 국제 질서 속으로 끌어들이면서도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조선의 외교는 사실상 세 나라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무대였다.

이 협상은 단순히 두 나라 간 합의가 아니었다. 각국의 목표와 계산이 얽힌 결과였으며, 조선은 그 틈에서 최대한의 조건을 확보하려 했다.

■ 조약 이후, 기대와 현실 사이의 괴리

사진=역사스페셜-시간여행자
사진=역사스페셜-시간여행자

조약 체결 이후 조선은 여러 서구 국가와 잇따라 외교 관계를 맺었다. 워싱턴에 공사관을 설치하며 국제 사회에 발을 내딛었다. 변화의 속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졌다.

고종은 특히 거중조정 조항에 큰 기대를 걸었다. 강대국 사이에서 조선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로 여겼기 때문이다. 외교를 통한 생존 전략이 현실화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후의 역사는 이 기대가 얼마나 유지됐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조약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 선택은 조선이 세계 질서 속으로 들어가는 출발점이었다.

19세기 말, 한 장의 문서에 담긴 서명으로 조선은 생존을 위한 선택을 이어갔다. 외세 속에서 방향을 찾으려 했던 그 시도의 기록은 오늘에도 묵직한 의미를 남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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