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N] 작지만 오래 남는 이야기, '나의 창백한 푸른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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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N] 작지만 오래 남는 이야기, '나의 창백한 푸른 점'

뉴스컬처 2026-08-07 17:10:02 신고

인형극 ‘나의 창백한 푸른 점’. 사진=인형꾼 배시시
인형극 ‘나의 창백한 푸른 점’. 사진=인형꾼 배시시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무대 위에 길게 놓인 그림이 천천히 움직인다. 손의 미세한 회전에 따라 장면이 이어지고, 빛이 스며들며 하나의 풍경이 형성된다. 설명보다 앞서는 감각이 객석에 고요하게 번진다. 인형극 창작집단 ‘인형꾼 배시시’의 ‘나의 창백한 푸른 점’은 서사를 말로 전달하기보다 이미지의 축적을 통해 감정을 건넨다.

작품은 오는 29일과 30일, 아르코꿈밭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 선정작으로, 기존 작업에서 발전해온 미학적 실험이 보다 안정된 형태로 정리된 무대다. 작품은 상실 이후의 시간을 다루지만, 비극적인 감정에 머물지 않고 천천히 회복의 방향을 그려간다.

이야기는 어린 시절 별을 바라보던 기억에서 시작된다. 빛나는 존재가 되고자 했던 ‘나’는 어느 순간 궤도를 벗어나고, 익숙했던 자리에서 멀어진다. 그 이후 이어지는 시간은 설명 없이 흐른다. 침묵과 이미지가 그 자리를 대신 채운다.

어딘가를 떠돌던 ‘나’는 결국 자신과 닮은 ‘창백한 푸른 점’을 마주한다. 멀리서 바라본 지구는 하나의 작은 빛으로 존재한다. 그 장면은 거대한 배경 속에서도 오히려 더 또렷하게 남는다. 작품은 이 만남을 통해 관계와 기억을 다시 불러낸다.

인형극 ‘나의 창백한 푸른 점’. 포스터 사진=인형꾼 배시시
인형극 ‘나의 창백한 푸른 점’. 포스터 사진=인형꾼 배시시

제목은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언급한 이미지에서 출발한다. 보이저 1호가 기록한 지구의 모습은 먼 거리에서 하나의 점으로 보인다. 작품은 이 이미지를 인용에 머물지 않고, 감각적인 경험으로 확장한다. 관객은 그 작은 빛을 바라보며 자신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무대의 중심 장치는 ‘크랭키’다. 긴 그림 두루마리를 돌려가며 장면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아날로그적 움직임이 특징이다. 종이 위에 그려진 이미지가 빛을 만나면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만든다. 빠르게 전환되는 화면이 아니라,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이 관객의 호흡을 바꾼다.

여기에 다양한 오브제가 더해진다. 작은 물체 하나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고, 그림자는 또 다른 형상을 드러낸다. 조명은 밝기의 역할을 넘어서 공간의 분위기를 조율한다. 사운드는 장면과 맞물리며 감각의 깊이를 더한다.

작품은 여러 과정을 거치며 변화해왔다. 2023년 인천 학산소극장에서 첫 발표가 이루어졌고, 2024년 인도네시아 Pesta Boneka #9에 초청되며 다른 관객과 만났다. 그 과정에서 이미지 중심의 표현이 더욱 강조되었고, 이번 공연에서는 그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작·연출을 맡은 이희원은 회화적 이미지를 무대로 풀어내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작업은 이야기의 구조를 앞세우기보다, 시각적 경험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이번 작품에서도 이러한 방향은 유지되며, 보다 정돈된 방식으로 구현된다.

공연과 함께 진행되는 아카이빙 전시는 작품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준다. 극장 2층 꽃밭라운지에서 열리는 전시는 제작 과정과 이미지의 변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된다. 무대 위에서 스쳐 지나간 장면들이 다른 방식으로 다시 마주하게 된다.

‘인형꾼 배시시’는 2022년 창단 이후 다양한 형식을 시도해왔다. 회화, 오브제, 움직임을 결합한 작업을 통해 인형극의 표현 범위를 넓혀왔다. 각각의 작품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관객과 만났지만, 이미지에 대한 탐구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공연은 거대한 우주를 배경으로 하지만, 결국 아주 작은 존재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된다. 멀리서 바라볼수록 선명해지는 하나의 빛처럼, 작품은 관객의 기억 속에 조용히 머문다.

이미지는 빠르게 소비되지 않는다. 천천히 스며들고, 오래 남는다. ‘나의 창백한 푸른 점’은 그 시간을 견디며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무대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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