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가 2011~2012년 국가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 경기에 참가한 외국인 심판 등에게 벌인 성접대의 구체적 내역을 담은 정부 보고서가 공개됐다. 1년 남짓한 기간에 여덟 차례에 걸쳐 안마시술소 등에서 접대가 이뤄졌고, 협회는 그 비용을 법인카드로 결제한 뒤 회계 장부에는 식사나 음주 접대로 꾸며 은폐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이 6일 오전부터 충남 천안에 있는 대한축구협회 사무실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구 대한축구협회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고 있다. 사진은 이날 압수수색이 진행 중인 충남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대한축구협회 사무실의 모습. / 뉴스1
JTBC는 문화체육관광부가 2016년 작성한 '대한축구협회 임직원 등 비리 조사 결과' 보고서를 입수해 성접대 혐의 부분의 전문을 7일 공개했다. 해당 보고서는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익명 처리 외에 수정된 내용은 없다고 JTBC는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협회는 2011년 3월부터 2012년 3월까지 국가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 경기에 참가한 외국인 심판들, 그리고 심판 교류 차 한국을 방문한 중국축구협회 관계자들을 서울 강남구 역삼동과 울산, 경남 창원 등지의 안마시술소에서 접대했다. 협회 법인카드로 결제된 접대 비용은 여덟 차례를 합쳐 모두 559만8000원이다.
첫 번째 접대는 온두라스와의 국가대표팀 친선경기를 앞둔 2011년 3월 25일 새벽 1시 4분에 이뤄졌다. 경기에 참가한 심판 3명을 역삼동의 안마시술소에서 접대하고 법인카드로 75만원을 결제했다. 접대를 기안한 심판국 직원 A씨는 정산 과정에서 접대 사실을 숨기고 식사 접대를 한 것처럼 허위로 결제를 받았다.
두 번째는 이틀 뒤인 3월 27일 오후 8시 39분이었다. 올림픽대표팀의 중국전에 참가한 심판 3명을 울산 남구 삼산동의 안마업소에서 접대하고 51만원을 결제했다. A씨는 이번에도 접대 사실을 숨기고 경기 후 음주를 한 것처럼 꾸며 정산했다.
세 번째 접대는 6월 3일 국가대표팀의 세르비아전에 참가한 심판 4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역삼동 안마시술소에서 90만원이 결제됐다.
네 번째는 런던올림픽 아시아예선 오만전이 열린 다음 날인 9월 22일 새벽 0시 27분이었다. 경기에 참가한 심판 4명을 경남 창원시 중앙동의 안마업소에서 접대하고 76만원을 결제했다. A씨는 정산 기안을 하면서 접대 사실을 숨기고 경기 후 음주를 한 것처럼 허위 결제를 받았다.
경찰이 6일 오전부터 충남 천안에 있는 대한축구협회 사무실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구 대한축구협회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고 있다. 사진은 이날 압수수색이 진행 중인 충남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대한축구협회 사무실의 모습. / 뉴스1
다섯 번째 접대는 10월 8일 새벽 0시 24분에 있었다. 국가대표팀의 폴란드전에 참가한 심판 3명을 역삼동 안마시술소에서 접대하고 108만원을 결제했다. A씨는 여기서도 접대 사실을 숨기고 경기 후 음주를 한 것처럼 허위 결제를 받았다.
여섯 번째는 해가 바뀐 2012년 1월 18일이었다. 심판 교류 차 방문한 중국축구협회 관계자 3명, 곧 심판국장과 심판회계 담당, 심판담당자를 역삼동 안마시술소에서 접대하고 90만원을 결제했다.
일곱 번째 접대는 2월 29일 새벽 0시 16분에 이뤄졌다.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예선 쿠웨이트전에 참가한 심판 2명을 역삼동 안마시술소에서 접대하고 50만원을 결제했다. A씨는 정산 과정에서 실제 사용 금액 50만원을 32만원으로 줄여 '심판 마사지'라는 명목으로 결제를 받았다.
마지막 여덟 번째 접대는 3월 14일 오후 8시 34분에 확인됐다. 카타르전이 열리던 시각에 올림픽대표팀 아시아예선 카타르전에 참가한 감독관 1명을 역삼동의 중국 마사지 가게에서 접대하고 19만8000원을 결제했다. 접대 대상이 심판이 아니라 심판들의 향응 수수를 감시해야 할 감독관이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보고서는 이 같은 접대가 심판국 사원인 A씨가 기안해 대리와 과장, 국장, 부회장 결재까지 받고 시행된 것으로 확인된다며, 협회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심판을 접대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결재 라인에 포함된 부회장의 이름은 보고서에 익명(○○○)으로 처리돼 있다.
접대를 담당한 심판국 사원 A씨와 대리 B씨는 문체부 조사에서 "안마 비용은 성매매 비용까지 포함된 금액이며, 외국인 심판들이 공항이나 숙소 등에서 먼저 요구해서 접대를 했다"고 진술했다.
보고서는 이 같은 접대 내역을 정리하면서 근거 자료로 현대카드와 하나카드의 카드 사용 내역서, 협회의 정산·소명 자료, A씨와 B씨의 진술문답서 등을 제시했다.
접대가 이뤄진 시점은 모두 조중연 전 대한축구협회장 재임 기간이었다. 당시 심판 업무를 맡았던 한 간부는 JTBC에 "심판의 기분을 잘 맞춰주려 그랬다"며 "그래야 호각을 잘 불어주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간부는 감독관의 눈을 피하려 결제가 주로 자정 안팎에 몰렸다고 설명했다.
공교롭게도 성접대가 이뤄졌을 당시 대표팀 성적은 좋았다. 7경기에서 A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은 5승 2무를 기록하며 한 차례도 지지 않았다. 조광래 감독의 A대표팀은 온두라스를 4-0으로 완파했고, 홍명보 감독의 올림픽대표팀은 중국을 1-0으로 눌렀다. 세르비아전은 2-1 승리, 오만전은 2-0 승리로 마무리됐다. 조광래 감독의 후임 최강희 감독이 지휘한 쿠웨이트전에서는 이동국의 선제골과 이근호의 추가골로 2-0 승리를 거뒀다. 두 번의 무승부는 폴란드전과 카타르전이었다. 폴란드전은 조광래 감독이 선수 7명을 교체해 국제축구연맹(FIFA)의 공식 교체 인원 6명을 넘기는 바람에 공식 A매치로 인정받지 못했고, 카타르전은 이미 본선행을 확정한 뒤 치른 경기로 0-0으로 끝났다.
성접대 관련 내용은 2016년 문체부 감사에서 파악됐으나 당시에는 공개되지 않았다. 문체부는 당시 스포츠비리신고센터를 통해 조중연 전 회장의 공금 유용을 비롯한 협회 관련 각종 비위 의혹을 조사해 결과를 보도자료로 공개했지만, 성접대 등 민감한 사안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데다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워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부적절한 법인카드 사용에 관해 일부를 인정하면서도 뇌물 등 형법상으로는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이에 따라 징계 조처도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문체부는 전했다.
이번 의혹은 협회가 각종 논란으로 궁지에 몰린 가운데 터져 나왔다. 협회는 2024년 7월 홍명보 전 감독을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한 이후 줄곧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이후 대표팀을 이끌던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이 2024년 2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부진과 선수단 내홍 여파로 경질된 뒤, 협회는 5개월가량 새 감독을 물색한 끝에 홍 전 감독을 선임했다. 시즌이 진행 중이던 K리그 팀의 현역 감독을 빼 갔다는 비난과 함께,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을 겪은 지도자에게 다시 대표팀을 맡기는 것이 적절하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홍 전 감독 선임 당시 전력강화위원으로 활동한 국가대표 선수 출신 박주호는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일부 위원이 외국 지도자보다 국내 축구인을 선임하도록 몰아갔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놓으며 파장을 키웠다.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자 문체부가 특정감사에 들어갔고, 국정감사에서는 홍 전 감독 선임과 2013년부터 이어진 정몽규 전 회장 체제의 '사유화'·'밀실 행정' 논란이 다뤄지며 협회가 크게 질타받았다.
2024년 11월 문체부가 감사 결과 정몽규 전 회장을 비롯한 협회 주요 인사에 대한 중징계를 요구했으나 협회가 불복하면서 법적 공방이 벌어졌다. 정 전 회장은 지난해 2월 선거에서 득표율 85.6%의 압도적 지지 속에 4연임에 성공했지만,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응원 분위기가 좀처럼 모이지 않자 5월 말 월드컵 이후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후 대표팀이 북중미 월드컵에서 졸전 끝에 32강에도 들지 못하면서 협회는 거센 격랑에 휩싸였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지난달 말 청문회를 열어 행정 난맥상을 거듭 질타했고, 정몽규 전 회장과 홍명보 전 감독이 나란히 출석했다. 시민단체 고발로 시작됐으나 지지부진하던 경찰 수사도 탄력이 붙었다. 이 사건은 애초 서울 종로경찰서가 맡았으나 월드컵 탈락으로 수사에 이목이 쏠리자 지난달 초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금융범죄수사대로 이관됐고, 6일 충남 천안의 축구협회와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됐다.
협회는 "해당 사건은 15년 전 일로 협회의 문서 보관 연한이 5년에 불과해 모든 정황을 정확히 안내하기 어렵다"며 "지금은 법인카드와 관련해 철저한 시스템을 마련해 준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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