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예술가에게 학교 졸업장은 완벽한 홀로서기를 담보할까. 작업실 임대, 전시 기획, 비평 교류 등 정규 미술대학 과정이 온전히 채우지 못한 실무적 공백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아르코미술관은 8월 7일부터 9월 27일까지 기획전 ‘예술 학교: 우리가 서로의 학교가 될 때,’를 가동한다. 대학 제도권 밖에서 창작자들이 주체적으로 구축한 학습 공동체를 미술관 내부로 과감히 끌어들였다. 머터리얼 라이브러리, 모크캠프, 버드콜, 쿠로다, 큐레이팅 스쿨 서울, 행복반, PIE, YPC×학회쥐 등 8개 팀, 42명 작가가 치열한 생존법을 꺼내놓는다. 이들이 운영하는 학교에는 권위적인 교장, 학년, 졸업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2000년대 이후 불거진 혹독한 경쟁 중심 평가, 값비싼 교육비 늪에서 벗어나, 실패와 시행착오를 공유하는 자생적 연대를 모색한다.
전시실을 가장 도발적으로 장악한 팀은 모크캠프다. 2025년 발족한 혜화기지 프로젝트를 이어받아 무료 설치 연습을 지원한다. 참가자들은 전시장에 완성작을 진열하는 관습을 거부하고 나흘 간격으로 작품 설치, 수정, 철수를 릴레이처럼 반복한다. 전시 공간 구조 파악, 조명 조율, 동선 설계 등 보이지 않는 막노동을 투명한 학습 과정으로 탈바꿈시킨다. 머터리얼 라이브러리는 창작 바탕이 되는 재료에 집요하게 매달린다. 유화 안료 혼합부터 석고 드로잉, 3D 프린팅 접목까지 다방면으로 실험한다. 실패작, 연구 데이터 전면 공개는 완벽한 결과물만 찬양하는 낡은 관행에 날리는 유쾌한 펀치다.
행복반은 매일 드로잉을 생산하며 모임을 꾸렸다. 작가 본인이 대표작을 지정하는 뻔한 방식을 뒤집고, 동료들 감상과 평가에 기대어 전시작을 최종 추려냈다. 선배 작가 김지원 회화와 에세이를 곁들여 수직적 교육 체계를 벗어난 수평적 교류 성과를 자랑한다. 쿠로다 팀은 만화 매체를 앞세워 배움을 설명과 전달 한계에 가두지 않는다. 취향과 애정을 결합한 공동 창작 워크숍을 가동해 흥미로운 만화 결과물을 탄생시켰다. 좋아하는 소재를 매개로 노는 행위 자체가 훌륭한 학습이 되는 풍경이다.
버드콜은 책장 분류 방식을 송두리째 엎었다. 일반 도서관 분류법을 과감히 버리고, 장난스럽고 임시적인 규칙을 도입해 관람객이 책 사이에서 기발한 연관성을 발견하도록 부추긴다. PIE는 위키 엔진을 십분 활용해 디지털 공유 공간 '아트아트아트.위키'를 가동한다. 관람객 누구나 접속해 텍스트를 고치고 문서를 추가하며 거대한 지식 구조 생산에 직접 참여한다. 큐레이팅 스쿨 서울은 창작자 개인 경험을 훌륭한 교육 자원으로 둔갑시키고, 학회쥐는 귤, 우유, 쥐 등 엉뚱한 소재로 권위적인 미술 비평계를 유쾌하게 조롱한다.
전시장에 포진한 8개 팀 운영 방식은 극명하게 엇갈리지만, 묵직한 공통 질문 하나로 꿰어진다. 예술가는 결코 홀로 살아남을 수 없으며 왜 연대해야 하는지 묻는다. 예술 학교 전시는 자생적 공동체 활력을 무조건 찬양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학과 공공 지원 시스템이 제 몫을 다하지 못해 모든 짐을 예술가 개인 연대로 떠넘긴 현실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신진 작가들이 어디서 실패하고 다시 일어설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을지 묻는 뼈아픈 성찰이다. 9월 3일 열리는 '아르코데이' 청년 작가 네트워킹 행사는 제도권이 답해야 할 생존 질문을 한층 날카롭게 벼릴 전망이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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