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가 음주운전 사고 후 채혈 거부한 사실을 기억하지 못 해도, 당시 의식이 있었다면 처벌된다. / AI 생성 이미지
A씨는 최근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다가 연석을 들이받고 차량이 전복된 단독사고를 냈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 응급실이었고, 사고 순간부터 응급실에서 있었던 일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퇴원 후 휴대전화를 확인한 A씨는 눈을 의심했다. 경찰이 보낸 문자 메시지에는 A씨가 '채혈을 거부'했으며, 이에 따라 강제채혈을 진행할 예정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음주운전 사실은 인정하고 깊이 반성하고 있지만, 기억에도 없는 채혈 거부로 가중처벌을 받게 될까 봐 A씨는 불안하다. 과연 처벌을 피할 수 있을까?
'기억상실' 아닌 '의식상실' 입증이 관건
결론부터 말하면, 단순히 사고 후 기억이 없다는 주장만으로 음주측정 거부 혐의를 벗기는 어렵다. 법원은 처벌의 근거가 되는 '거부의 고의'를 판단할 때, 사건 이후의 '기억'이 아닌 사건 당시의 '의식'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즉, 술에 취해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 '블랙아웃' 상태였더라도, 의식이 있어 거부 의사를 표현했다면 처벌될 수 있다는 의미다. 법원 판례 역시 '의식이 있었는지 여부와 이후에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라고 본다.
따라서 A씨의 주장보다는 객관적인 증거로 당시 상태가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
'기억 안 난다'는 진술, 객관적 증거로 입증해야
변호사들은 의도적인 거부가 아니었음을 입증하려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진술을 뒷받침할 객관적인 증거 확보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윈앤파트너스 법률사무소 한장헌 변호사는 진술 방향에 대해 “음주운전 및 사고 발생에 대해서는 깊이 반성하고 처벌을 달게 받겠으나, 당시 사고 충격으로 의식이 명료하지 않아 경찰관의 채혈 요구를 정상적으로 인지하거나 고의로 거부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고 일관되게 진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법무법인 재이 김정철 변호사는 조사에서 “'거부한 적이 없다'고 단정하기보다 '사고 직후부터 퇴원 전까지 기억이 없으며, 요구를 인식하고 의도적으로 거부했는지는 객관적 기록을 확인해야 한다'고 진술하라”고 설명했다.
이때 필요한 객관적 기록에 대해선 “응급실 의무기록·간호기록·의식수준, 투약내역, 119 기록, 경찰 바디캠과 현장보고서의 확보를 요청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법률사무소 새율 윤준기 변호사 역시 “응급실 초진기록, 의식 수준 평가, 활력징후, 영상검사 결과, 간호기록지에 남은 당시 상태 기재가 핵심 자료다”라고 짚었다.
반성문, 언제 어떻게?…'섣부른 인정'은 금물
A씨가 궁금해한 반성문 제출 시점에 대해서는 변호사들의 의견이 다소 갈렸다. 수사 초기부터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견과, 혐의가 확정된 뒤 신중하게 내야 한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제로변호사 홍윤석 변호사는 “반성문과 탄원서는 경찰 조사 단계부터 수사관에게 제출하는 것이 좋다”며 “조사 전 미리 준비하여 성실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유리하다”고 봤다.
하지만 법무법인 한설 조민성 변호사는 “반성문은 조사와 감정 결과로 사건의 윤곽이 잡힌 뒤에 제출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며 “기억나지 않는 부분까지 포괄적으로 인정하는 문장이 들어가면 측정거부까지 자백한 자료로 읽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음주운전 자체는 인정하고 반성하되, 기억나지 않는 채혈 거부 혐의까지 섣불리 인정하는 내용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조언이다. IBS법률사무소 유진명 변호사는 “음주운전과 단독사고로 큰 위험을 초래한 점은 명확히 인정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채혈 거부까지 인정하는 표현은 넣지 않는 것이 좋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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