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전세라 기자】 세계가 K-아트를 주목하기 전부터 ‘한국적인 그림’이 무엇인지 묻고 답해온 작가의 전시가 열렸다.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미)이 자수와 나전, 동양화의 조형 원리를 서양 유화 안에서 변용하며 독자적인 색과 빛의 언어를 구축한 이대원 작가를 조명한다.
국현미는 5일 오전 서울 중구에 위치한 국현미 덕수궁에서 이대원의 대규모 회고전 《이대원: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간담회에는 김성희 국현미 관장과 배원정 학예연구사가 참석해 전시 기획 배경과 이대원의 작품 세계를 소개했다.
6일부터 오는 11월 8일까지 덕수궁 전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이대원의 첫 대규모 회고전이다. ‘색채의 마법사’,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화가’, ‘농원의 화가’ 등으로 기억돼 온 작가의 약 70년에 걸친 화업을 한자리에서 되짚는다. 1930년대 초기작부터 말년의 5m가 넘는 대작까지 회화 122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젊은 시절부터 해외에서 개인전을 열었던 이대원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으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초기작 상당수가 국외로 반출됐거나 개인 소장가에게 흩어져 있어 소재 파악과 대여에 어려움이 컸다. 국현미는 국내는 물론 일본과 미국 등 해외에 흩어진 작품과 자료를 찾아 50곳이 넘는 소장처와 관계 기관의 문을 두드렸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가 겨냥하는 것은 기존의 ‘이대원상(像)’을 새롭게 바라보는 일이다. 그동안 이대원의 밝고 화려한 화면은 작가의 낙천적인 성격에서 비롯된 것으로 손쉽게 설명되곤 했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그 밝음이 단순한 기질의 산물이 아니라 한국 전통미술의 조형 원리를 서양 유화 안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오랫동안 고민한 결과라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그의 색채다. 이대원은 서로 다른 색의 실이 섞이지 않은 채 나란히 놓이는 자수의 방식과 빛이 표면에 맺혀 반짝이는 나전의 효과에 주목했다. 여기에 동양화의 선과 점, 준법과 수지법 등을 유화의 붓질로 변용했다. 전통 공예의 표면 효과와 동양화의 선·점, 유화의 발색이 결합되면서 이대원 특유의 색점·색선·색면이 만들어진 셈이다. 한때 그의 그림을 두고 따라붙었던 ‘서양 물감으로 그린 동양화’라는 평가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시는 네 부분의 연대기적 구성으로 이대원의 약 70년 화업을 따라간다. 1930~1950년대를 다룬 1부 ‘배우되 갇히지 않다’, 1950~1970년대의 2부 ‘이어가되 휩쓸리지 않다’, 1970~2000년대 독자적인 색점·색선·색면의 언어가 무르익는 3부 ‘쌓아 올리니 자유롭다’를 거쳐 마지막 4부에서는 평생 쌓아온 색과 빛의 언어가 5m가 넘는 대형 화면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일본인 미술교사 사토 구니오와 이대원의 관계도 비중 있게 다룬다. 경성제2고등보통학교 시절 이대원을 가르친 사토는 학생들에게 서양미술뿐 아니라 조선의 공예와 미술을 함께 보도록 이끈 인물이다. 이러한 경험은 이대원이 훗날 자수와 공예, 동양화에서 자신의 회화 언어를 길어 올리는 중요한 출발점이 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토 구니오의 희귀 회화인 ‘설정’도 국내 최초로 공개한다.
전시 제목 역시 이러한 재해석과 맞닿아 있다. 이대원의 오랜 지인이었던 고고미술사학자 김원룡이 그의 그림을 두고 ‘사람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평한 데서 제목을 가져왔다. 이번 전시는 밝고 행복해 보이는 화면 자체에 머무르지 않고, 그 ‘슬프지 않은 그림’이 어떤 조형적 고민과 실험을 거쳐 탄생했는지를 거슬러 들여다본다.
한국적 현대회화의 가능성을 일찍부터 고민하는 한편 화랑과 대학, 문화행정을 넘나들며 한국 미술의 기반을 다졌던 이대원. 이번 전시는 그를 '행복한 화가'라는 익숙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한국 현대미술의 형성과 확장에 관여한 작가로 다시 자리매김한다. 그의 첫 대규모 회고전은 아직 충분히 조명되지 않은 이대원의 작품 세계와 역할을 새롭게 살펴보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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