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한수지 기자] 약선 요리 연구가 이경애가 아버지의 노름빚으로 극심한 가난을 겪었던 어린 시절부터 수차례의 실패를 딛고 대한민국 대표 ‘약선 명인’으로 성공하기까지의 인생사를 털어놨다.
5일 방송된 EBS 1TV 예능프로그램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에는 50년 경력의 약선 요리 연구가 이경애가 출연해 자신의 삶과 성공 스토리를 공개했다.
이날 이경애는 “사랑하는 서장훈 오빠 보고 싶었다. 보고 싶어서 눈물이 짓무르려고 한다”며 특유의 유쾌한 입담으로 등장했다. 서장훈이 “오늘의 백만장자시냐”고 묻자 그는 “맞다”면서도 “지금은 가진 게 별로 없다. 별명이 ‘밥 퍼주는 아줌마’다. 다 퍼주다 보니 남은 게 얼마 없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경애는 요식업 종사자들의 멘토로 활동하며 16년 동안 어려운 소상공인을 직접 찾아가 컨설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손맛을 전수한 식당만 350여 곳에 달하며 대통령상도 세 차례 수상했다. 그는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는 게 제일 행복하다”고 말했다.
직접 만든 약선 요리를 맛본 서장훈은 “상을 또 받으셔야 한다”며 감탄했고, 장예원은 “촬영을 접고 계속 먹고 싶다”고 극찬했다. 이어 서장훈은 “조미료를 전혀 안 썼다는데 마치 조미료를 듬뿍 넣은 것처럼 깊은 맛이 난다”고 놀라워했고, 두 사람은 음식을 리필해 먹으며 감탄을 이어갔다.
서장훈이 그의 손을 잡자 이경애는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오늘 손 안 씻어야겠다”며 벅찬 마음을 드러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경애는 누구보다 힘겨웠던 어린 시절도 털어놨다. 그는 “지금까지 남을 위해 쓴 돈이 200억 원 정도 된다”며 “어릴 때 성공하면 나처럼 배고파 우는 사람이 없게 하겠다고 다짐하며 살아왔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경애는 아버지의 노름빚 때문에 집안이 급격히 기울었다고 회상했다. “어머니는 부잣집 딸이었지만 논과 밭을 사주면 아버지가 모두 팔아버렸다”며 “먹을 것이 없어 생강밭에서 생강을 캐 먹었고, 어머니는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 끼니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가정형편 탓에 중학교 진학도 포기해야 했던 그는 성인이 된 뒤 일수를 빌려 작은 중국집을 열었다. 뛰어난 손맛 덕분에 장사는 시작부터 잘됐지만, 경쟁 업체가 건물을 매입하면서 불과 6개월 만에 가게를 비워야 했다.
이후 남편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번 돈으로 다시 커피숍을 열었지만, 장사가 안정될 무렵 또다시 건물주의 퇴거 요구를 받으며 삶의 터전을 잃었다.
사연을 들은 서장훈은 “건물주들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한 뒤 “참고로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세입자를 먼저 내보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잇따른 실패를 겪은 이경애는 어린 시절 허기를 달래기 위해 마셨던 약재 달인 물을 떠올렸고, 이를 계기로 약선 요리에 뛰어들었다. 남편과 함께 문을 연 식당은 입소문을 타며 큰 인기를 얻었고, 1990년대 초반에는 10년간 누적 매출 5억 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또다시 임대 문제를 겪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부부는 광명에 직접 땅을 매입해 식당을 짓기로 결심했다. 당시 주변에서는 논밭 한가운데 대형 식당을 짓는 것이 무모하다고 만류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식당은 개업 1년 만에 하루 최대 매출 2000만 원을 올리며 지역의 대표 맛집으로 자리 잡았다.
서장훈은 그의 성공 비결에 대해 “손맛은 정말 타고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경애는 당시 손님이 너무 많아 은행에 갈 시간조차 없어 “돈을 쌀자루에 넣어 베고 잤다”고 회상했다. 이후 2000평 규모의 땅을 마련해 식당 5곳을 운영하게 됐고, 현재는 약 500평의 부지를 광명시에 기증해 해당 지역이 음식문화거리로 조성되는 데 힘을 보탰다.
방송 말미 그는 “죽을 때까지 배고픈 사람이 있다면 그냥 지나치지 못할 것 같다”며 변함없는 나눔의 철학을 전해 깊은 여운을 남겼다.
한수지 기자 / 사진= EBS 1TV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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