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경기도지사가 5일 경기도 재정 비상 상황을 선언하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지방채 발행 한도를 거의 채운 데다 각종 기금까지 끌어다 쓰면서도 필수 예산조차 온전히 세우지 못한 현실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5일 기자회견 나선 추미애 경기도지사 / 뉴스1
추 지사는 이날 오전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도민께 반드시 알려야 할 경기도의 현실이 있다"며 "지금 경기도는 이미 진행 중인 사업조차 온전히 유지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어 "지방자치의 존립과 경기도의 미래가 걸린 중차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며 경기도의회와 31개 시군, 1420만 도민, 모든 공직자가 함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 지사가 밝힌 경기도 재정 실태는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세 차례에 걸쳐 발행한 지방채는 9430억원으로, 발행 한도 9460억원의 99.6%에 달했다. 20년 만에 처음 있는 대규모 지방채 발행이었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5월에는 용도가 정해진 목적기금을 쉽게 끌어다 쓸 수 있도록 조례를 바꾼 뒤, 통합계정을 거쳐 5588억원을 일반회계 등으로 옮겨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는 접경지역 특성상 조성된 남북협력기금도 포함돼 있어, 추 지사는 "비상시에 써야 할 자금까지 일반 예산으로 돌려 쓰면서 기금 자체가 바닥났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지방채와 기금을 총동원하고도 올해 예산은 불완전하게 편성된 것으로 드러났다. 다수의 필수·민생사업 예산이 12개월치가 아닌 9개월치만 반영돼, 10월부터 12월까지 석 달간의 재원이 비어 있는 상태라는 설명이다. 추 지사는 노인장기요양 예산 1234억원, 소아응급 책임의료기관 육성 예산 10억원, 도교육청 학생 급식비 지원 584억원 등 구체적인 항목을 열거하며 "신뢰를 말아먹은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재정상황을 조금이라도 일찍 투명하게 공개하고 구조조정에 나섰다면 선제 대응이 가능했을 텐데, 임시방편으로 위기를 가리는 사이 경기도 재정을 바로잡을 골든타임마저 놓쳐버렸다"고 말했다.
추 지사는 이 같은 재정 운영의 책임을 김동연 전 지사가 이끈 민선8기에 돌렸다. 그 결과 경기도는 현재 약 7700억원 규모의 감액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였다.
구조적인 문제도 짚었다. 추 지사에 따르면 경기도 전체 예산은 41조7000억원에 달하지만, 정책적으로 실제 쓸 수 있는 재원은 3조5000억원 수준에 그친다. 세입 구조가 취득세에 지나치게 쏠려 있는 탓이다. 실제 경기도의 취득세 수입은 2022년 약 11조원에서 올해 약 8조원으로 30% 가까이 줄었다. 반면 복지 지출은 전체 예산의 약 49%를 차지하고 있으며, 인구 유입과 고령화가 계속되면 향후 60%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추 지사는 이런 세입·세출 불균형이 겹치며 "구조적인 재정 위기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5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열린 '경기도 재정상황 관련 기자회견'에서 재정 비상 선언을 하고 있다. / 뉴스1
추 지사는 경기도의 재정 형편을 "마른 땅에 풀 한 포기조차 남지 않았다"고 표현하며 "더 이상 끌어다 쓸 재원도, 위기를 미룰 여력도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2~3년 뒤 기존 빚을 갚기 위해 다시 지방채를 발행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 있다"며 "도민의 삶과 경기도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오늘부로 경기도 재정 비상 상황을 공식 선언한다"고 밝혔다.
대응 방안으로는 도지사와 고위공직자의 각종 업무경비 감액, 행사성·낭비성 예산 편성 및 집행 전면 중단, 관행적으로 이어져 온 연구용역·민간위탁·대행사업 재평가, 조직과 공공기관 효율화, 취득세 중심 세입 구조 개선을 위한 제도 개혁 등을 제시했다. 실·국과 공공기관 간 인력 재배치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아울러 지방소비세 확충, 기업 유치에 따른 세수의 합리적 배분, 국고보조사업에 따른 과도한 지방비 부담 개선 등을 국회와 정부에 요구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다만 추 지사는 재정 위기를 이유로 민생을 포기하지는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도민의 생명과 안전, 취약계층 보호 등 반드시 확보해야 할 예산은 끝까지 지키겠다"며 "지금의 어려움을 미래세대의 빚으로 넘기지 않고, 불필요한 곳에서 먼저 줄이고 더 큰 책임이 있는 곳에서 더 많이 감당하는 공정한 재정개혁을 통해 경기도의 새로운 전환점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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