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진에서 심장 잡음이 들린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우리 강아지는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노령견 보호자에게 가장 자주 듣는 되물음이다. 여기엔 중요한 오해가 하나 숨어 있다. 심장병은 증상이 나타난 뒤에 시작되는 병이 아니라 증상이 없으면서 한참 진행되는 병이다.
강아지에게 가장 흔한 심장병은 이첨판폐쇄부전증(점액종성 승모판막질환)으로 강아지 심장질환의 70~75%를 차지한다. 특히 소형견에게 많이 발생하므로 몰티즈·푸들·포메라니안·시츄가 주류인 국내에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10세를 넘긴 강아지의 약 30%에서 이 병 특유의 심장 잡음이 들린다. 판막이 두꺼워져 피가 역류하기 시작하면 청진으로 잡음이 잡히지만 기침이나 호흡곤란은 그로부터 몇 년 뒤에야 나타난다. 아무 이상 없어 보이는 그 몇 년이 사실은 가장 손쓰기 좋은 시기다.
■같은 ‘잡음’이라도 상태 달라
국제 기준인 미국수의내과학회(ACVIM) 가이드라인은 심장병에 있어서 증상 없는 단계를 둘로 나눈다. 심장 잡음은 들리지만 심장 크기가 아직 정상인 B1, 또 역류가 오래 진행돼 좌심방과 좌심실이 실제로 커진 B2다. 겉으로는 둘 다 멀쩡해 보이지만 이 구분이 치료 방침을 완전히 바꾼다.
■무증상 단계서 약 투여 시작하면 심부전 늦춰
B2 단계에서 피모벤단이라는 강심제를 미리 투여하기 시작한 강아지와 그러지 않은 강아지를 비교한 연구가 있다. 360마리를 대상으로 한 위약 대조 무작위 임상시험에서 피모벤단을 먼저 쓴 쪽은 심부전이 오거나 심장 문제로 사망하기까지 중앙값 1228일이 걸렸다. 위약을 받은 쪽은 766일이었다. 차이는 약 15개월 위험도는 피모벤단을 쓴 쪽이 36% 낮았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 약에 대해 증상이 없는 B2 단계에서 심부전을 늦추는 적응증을 정식 승인했다. 열다섯 달은 사람에게는 짧아 보여도 열두 살 노령견에게는 남은 삶의 상당 부분이다.
단 심장 잡음이 들렸다고 무조건 약을 쓰지는 않는다. 심장이 아직 커지지 않은 B1 단계에는 투약이 권고되지 않는다. 지금 어느 단계인지 확인한 뒤 결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잡음만으로 알기 어려워...심장 초음파검사 필요
심장 잡음의 크기가 심장의 크기를 말해주지는 않는다. 큰 잡음이 들려도 심장이 아직 정상인 때가 있고 그 반대도 있다. 흉부 방사선검사에도 한계가 있다. 심장 크기를 재는 척추심장크기(VHS·심장 크기를 척추뼈 길이로 환산해 나타내는 지표)는 보통 10.5를 넘으면 심비대로 보지만 카발리에 킹 찰스 스패니얼이나 퍼그처럼 정상 수치가 애초에 10.6 안팎인 견종은 건강해도 이 기준을 넘어선다.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B2를 판정하는 기준 자체가 심장 초음파검사를 요구한다. 좌심방이 대동맥 대비 1.6배 이상 커졌는지 체중을 보정한 좌심실 내경이 1.7을 넘는지가 그것이다. 이 두 수치는 초음파로만 잴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임상시험도 초음파로 B2가 확인된 강아지들만 대상으로 했다. 심장 초음파검사 없이 약을 쓰기 시작하면 우리 강아지가 효과가 증명된 바로 그 상태에 해당하는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한 가지 더 심장 잡음이 들린다고 모두 이첨판폐쇄부전증인 것도 아니다. 선천성 심기형이나 심근질환처럼 치료 방향이 전혀 다른 병이 원인일 수 있다. 심장 초음파검사는 대개 마취 없이 20~30분이면 끝난다. 평생 먹을 약을 먹기 시작할지 말지를 정하는 검사치고는 부담이 크지 않은 편이다.
■집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검사 ‘호흡수 기록’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데 효과는 확실한 방법도 하나 있다. 잠잘 때 호흡수를 세는 것이다. 강아지가 완전히 잠든 상태에서 꿈을 꾸거나 헐떡이지 않을 때 가슴이 오르내리는 횟수를 1분간 세면 된다. 건강한 강아지와 증상 없는 심장병 강아지는 대개 분당 30회를 넘지 않는다. 이 수치가 30회를 넘고 며칠에 걸쳐 계속 오른다면 폐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는 신호일 수 있다.
반려견이 잠잘 때 호흡수를 일주일에 두세 번 기록해두면 우리 강아지만의 ‘평소 값’이 생긴다. 평소 18회쯤이던 강아지가 어느 날 28회를 보인다면 30회를 넘지 않았어도 변화를 알아챌 수 있다. 심부전이 시작되는 순간을 가장 먼저 발견하는 사람은 대개 수의사가 아니라 매일 곁에 있는 보호자다.
심장 잡음은 진단명이 아니라 출발선이다. 지금 증상이 없다는 것이 지금 할 일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7세를 넘긴 소형견이라면 해마다 청진을 받고 심장 잡음이 확인되면 심장초음파검사로 정확히 확인해보길 권한다. 이 병에서 벌 수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강아지가 멀쩡해 보이는 바로 그 시기에 결정된다.
<이승호 24시 분당 리더스 동물의료원(동물병원) 중증내과질환센터 부장ㅣ정리 헬스경향 조선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