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 "웃음기 싹 뺀 미스터리 도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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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 "웃음기 싹 뺀 미스터리 도전, 즐겁다"

이데일리 2026-08-05 05:10:0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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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살다 보면 세상이 바라는 가짜 욕망에 현혹되기 쉬워요. 욕망이 없는 사람은 없지만, 내가 진짜 무엇을 바라고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하죠.”

박상영 작가는 자칭 ‘글쓰기에 미친 사람’이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새벽 5시면 일어나 글을 썼고, 하루의 대부분을 소설을 생각하며 보냈다. 그렇게 매달린 끝에 2016년 단편소설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가 문학동네 신인상에 당선되며 꿈꾸던 소설가의 길에 들어섰다.

특히 2019년 발표한 대표작 ‘대도시의 사랑법’은 퀴어 문학의 새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되며 대중적 성공을 거뒀고, 이 작품으로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2023년 국제 더블린문학상, 2024년 메디치상 후보에 잇달아 이름을 올렸다. 등단 10년 차에, 그것도 퀴어 소설로 이례적인 성과를 거둔 것이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최근 43쇄를 찍을 만큼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여전히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런 그가 신작 ‘지푸라기 왕관을 쓴 여자’로 추리소설에 도전하며 작품 세계를 한층 넓혔다. 익숙한 작업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 셈이다.

최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도서관에서 만난 박 작가는 “작가로 살아오면서 누구보다 성공하고 싶은 욕망이 컸다”며 “소설 속 인물들에게도 나와 같은 욕망과 결핍을 부여해 탐구해보고 싶었다”고 집필 배경을 밝혔다. 이어 “사랑과 욕망은 명확히 구별하기 어려운 감정”이라면서 “결핍이 클수록 욕망도 커지고 그것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도, 가장 비인간적으로도 만든다”고 덧붙였다.

박상영 작가(사진=래빗홀).
박상영 작가(사진=래빗홀).


◇재벌가 뒤흔든 두 여성

‘지푸라기 왕관을 쓴 여자’는 자이니치(재일조선인) 여성 마츠노 하나가 화재로 숨진 어머니 사치코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소설이다. 하나는 한국인 기자 맹준호와 함께 과거를 파헤치고, 이야기는 1970~1990년대 한국 경제성장기 재벌가의 권력 투쟁으로 이어진다. 흔히 남성을 중심으로 그려졌던 재벌 서사를 여성 재벌 윤동주를 중심으로 풀어낸 점이 특징이다.

박 작가는 “주변에서 만난 부자들을 보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며 “독자들도 재벌을 특별한 존재가 아닌, 결국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나라는 사람이 가진 내면의 결핍, 기존 재벌 서사의 클리셰(고정관념)를 비틀고 싶은 마음, 한국에만 있는 특수한 재벌 상속 구조 등 세 가지가 맞물리면서 이번 작품이 탄생했다”고 부연했다.

소설은 추리소설의 문법을 충실히 따른 1부와 인물들의 욕망과 결핍을 깊이 파고드는 2·3부로 구성됐다. 독자를 미스터리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1부다. 2부부터는 사치코와 윤동주, 두 여성의 삶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특히 윤동주는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결핍을 품은 채 재벌가의 정상을 향해 달려가지만, 결국 허무함을 마주하는 인물이다. 박 작가는 “윤동주는 나와 가장 닮은 캐릭터”라며 “두 여성의 서사에 초점을 맞춘 2부를 풀어내고 싶어서 이 소설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쉼 없이 이어가는 창작”

그의 소설은 동성애를 소재로 하면서도 빠르게 페이지가 넘어가는 이른바 ‘페이지 터너’로 사랑받아왔다. 중간중간 유머를 녹여 읽는 재미를 더했던 전작들과 달리 이번 신작은 과감히 웃음기를 뺐다. 수차례의 수정 끝에 4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이유다.

박 작가는 “변화하고 싶다는 욕구와 여섯 권의 책을 쓰며 느낀 소진이 겹치면서 집필 과정에서 번아웃을 겪기도 했다”며 “하지만 퀴어가 아닌 소재로 글을 써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언급했다.

이달 중순에는 미국 아이오와대가 운영하는 국제창작프로그램(IWP)에 참가해 세계 각국의 작가들과 교류할 예정이다. 차기작도 이미 준비 중이다. 지난해 계간 ‘문학동네’ 가을호에 발표한 중편 ‘복숭아 통조림, 기억의 무게’를 장편으로 개작해 오는 8월부터 계간 ‘창비’에 연재한다.

그는 “새 소설책이 채 식기도 전에 또 창비 연재를 시작한다”며 “정말 왜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이어 “좋아하는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환경이 너무 행복하고 좋다”면서 “앞으로도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이야기들을 용기 내서 세상에 펼쳐 보이겠다”고 강조했다.

박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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