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정부가 메가특구 내 기간제 사용기간을 최대 4년으로 늘리는 등 노동규제 완화를 검토하면서 비정규직 장기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청년·비정규직 등 노동시장 취약계층의 고용 불안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취재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가 지역균형발전 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해 추진하는 메가특구 사업 내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최대 4년으로 늘리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정부는 더 오랜 기간 일할 수 있도록 해 경력 단절을 줄이고 고용을 안정시키겠다는 취지지만 현장에서는 정규직 전환 시점만 늦추고 비정규직 상태를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7일 국회에 메가특구특별법 노동 분야 잠정안을 보고했다. 잠정안에는 기간제 연장 외에도 파견 대상 업무 확대와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연장 등을 허용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일부 고소득 관리자·연구개발 인력에 대해서는 주 52시간 상한과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적용을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에 올랐다.
이 가운데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안은 노사 당사자의 서면 합의를 전제로 기존 2년의 사용기간을 추가로 2년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4년 근무 후 정규직 전환 없이 계약이 종료될 경우 별도의 ‘공정수당’을 지급하는 방안도 함께 논의되고 있다.
현행 기간제법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기간제 노동자를 2년을 초과해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2년을 넘겨 계속 사용할 경우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본다. 정부안이 현실화하면 기업이 기간제 노동자를 정규직이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이 사실상 2년 더 늘어나는 셈이다.
현장에서는 기간제 연장이 고용 안정으로 이어지기보다 정규직 전환 시점을 늦추고 불안정한 고용상태를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계약 갱신 여부를 사실상 사용자가 결정하는 상황에서 노동자의 서면 동의를 충분한 안전장치로 볼 수 있느냐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20대 45.5%·30대 45.2% “비정규직 기간만 늘어날 것”
취업과 동시에 불안정 노동을 경험하는 청년들에게 ‘기간제로 2년 더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을 기회 역시 2년 더 뒤로 밀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청년층은 기간제·한시적 고용에 상당 부분 노출돼 왔다.
2023년 기준 15~29세 임금근로자의 약 22.8%가 기간제근로자였으며 지난해에도 청년 비정규직 154.6만 명 가운데 99.1만 명이 한시적 근로자였다. 실제 조사에서도 청년 직장인들은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을 ‘고용 안정’보다 ‘비정규직 장기화’에 가까운 정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6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최대 4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에 대해 응답자의 43.3%가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고 비정규직 기간만 늘리는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답했다.
특히 청년층의 우려가 컸다. 20대에서는 45.5%, 30대에서는 45.2%가 정규직 전환 회피와 비정규직 기간 연장을 우려했다. 정부가 당초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을 도입한 취지인 “일할 수 있는 기간이 길어져 고용이 더 안정될 것 같다”는 말에 동의한 비율은 16.4%에 그쳤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이도 나타났다. 현재 정규직으로 일하는 응답자 가운데 같은 우려를 나타낸 비율은 41.8%였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는 45.5%였다. 기간을 정해 일해본 사람들이 사용기간 연장을 더 부정적으로 바라본 것이다.
기간제 사용 기간 연장을 부정적으로 바라본 청년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불안정하고 열악한 고용 상태에 놓여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직장갑질119 측은 “현재 정규직인 사람보다 비정규직인 사람이 더 많은 우려를 표명한 것도, 기간을 정해 일을 한다는 것이 일터에서 어떤 불안과 차별과 고통을 주는지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일터에서 차별 받고 괴롭힘과 성희롱을 당해도 기간제 노동자들은 말을 꺼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국 2년을 4년으로 늘리면 불안에 떨어야 하는 기간만 늘어나는 셈”이라면서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안정적인 일자리이지 4년마다 쓰고 버려지는 일자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기간 연장보다 먼저 따져야 할 것은 ‘처우 격차’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을 두고 노동 현장에서는 정규직과 기간제 사이의 처우 격차를 먼저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간제 노동이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무환경·복지 등 불리한 노동조건과 맞물려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이하 노노모) 하은성 노무사는 본보에 “노동자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일하는 기간과 방식을 선택할 수 있고 처우에서도 불이익이 없다면 기간제 연장은 문제가 아니”라면서 “하지만 현재 국내 노동시장에서는 기간제 노동자가 정규직보다 열악한 처우를 감수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사용기간만 연장하면 노동자가 낮은 노동조건에 머무는 기간만 길어지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처우 격차가 해소되지 않은 채 기간제 사용기간만 늘어날 경우 그 영향은 노동시장에서 선택지가 적은 집단에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특히 청년과 여성, 고령층, 이주노동자 등 상대적으로 교섭력이 약한 노동자들이 장기간 기간제 고용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 노무사는 “일반 기간제가 바닥인 줄 알았는데 4년제라는 지하가 더 남아 있는 셈”이라며 “실업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메가특구를 만들면 블루워커 중에서도 주변부에 있는 노동자들이 이곳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가 메가특구특별법을 통해 검토 중인 노동특례에는 파견근로 대상 업무 확대와 기간 연장,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 등도 포함돼 있다. 일정 요건의 관리자·연구개발 인력을 대상으로 주 52시간 상한과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등의 적용을 제외하는 이른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도 논의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시절 연구개발 인력에 대한 주 52시간 적용 예외에 반대했던 것과 달리 집권 이후 추진되는 메가특구특별법에서는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과 파견 확대 등 보다 폭넓은 노동특례가 검토되고 있는 만큼 향후 입법 과정에서는 정책 기조의 일관성과 ‘지역균형발전·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메가특구의 당초 취지에 부합하는지를 둘러싼 논의가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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