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대한민국의 시간은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거리와 지하철, 병원과 가족 안에서 노인을 만나는 일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사회가 노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인구 변화만큼 빠르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의 과정이지만, 현실 속 늙음은 종종 부담과 비효율로 해석된다.
극단 신세계의 연극 '노인박멸'은 이러한 불편한 현실을 무대 위로 가져온다. 작품은 팔순을 앞둔 택시기사 정복의 삶을 따라가며 한 사람이 나이 들어가는 과정과 그를 둘러싼 가족, 사회의 시선을 보여준다.
정복은 오랜 시간 운전대를 잡아온 베테랑 기사다. 그러나 교통사고를 계기로 가족들은 그의 일을 멈추게 하려 한다. 평생 자신의 역할을 통해 존재감을 확인해 온 사람에게 은퇴는 단순한 직업의 변화가 아니다. 사회와 연결되는 방식, 자신을 증명하는 방법, 삶의 의미까지 흔드는 사건이 된다.
작품은 한 노인의 위기를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지 않는다. 정년 이후의 삶과 돌봄, 치매와 가족의 책임 문제를 통해 한국 사회가 노인을 대하는 방식을 비춘다. 일을 할 수 있을 때는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지만, 생산성을 잃는 순간 주변부로 밀려나는 현실을 무대 위에서 드러낸다.
‘노인’이라는 단어에는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과 기억이 담겨 있지만, 오늘날 사회에서는 때때로 쇠퇴와 부담을 연상시키는 표현으로 소비된다. '노인박멸'은 이러한 시선 자체를 문제 삼는다. 작품 제목은 노인을 없애자는 주장이 아니라, 노인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려는 사회의 태도를 향한 역설적인 표현이다.
초고령사회에서 노인은 특정 세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도달하게 되는 삶의 모습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자신의 미래에 찾아올 늙음을 인정하기보다 젊음을 유지하고, 경쟁력을 증명하며, 계속해서 ‘필요한 사람’으로 남기 위해 애쓴다.
연극은 사람이 사회적 가치와 생산성으로만 평가될 때, 나이 든 사람의 삶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그리고 효율이라는 기준으로 인간을 나누는 사회는 결국 누구를 위한 사회인지 질문을 던진다.
김수정 연출은 자신의 흰머리를 바라보며 작품의 출발점을 찾았다. 늙음을 감추려 하는 개인의 마음에서 시작해, 왜 우리는 노화를 두려워하고 외면하는지까지 시선을 넓혔다.
이는 개인의 감정과 사회 구조가 맞닿는 부분이다. 젊음은 능력과 가능성의 상징으로 소비되고, 늙음은 쇠퇴의 이미지로 묘사되는 문화 속에서 사람들은 나이를 숨기려 한다. 연극은 그 익숙한 풍경을 낯설게 바라보게 만든다.
극단 신세계는 그동안 동시대 사회가 외면하는 문제를 공연으로 다뤄왔다. 전쟁과 국가 폭력, 부동산, 젠더 등 현실 속 갈등을 무대 위에서 풀어내며 관객이 사회 문제를 다시 바라보는 계기를 만들어왔다.
'노인박멸' 역시 개인의 가족사를 넘어 사회 전체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정복이라는 한 인물의 변화는 곧 우리 모두가 언젠가 마주할 변화이며, 가족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고령사회가 안고 있는 현실적인 고민과 연결된다.
특히 돌봄 문제는 초고령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과제다. 노인의 삶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가족에게만 책임을 맡길 것인지, 사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는 앞으로 더욱 중요한 논의가 될 수밖에 없다.
연극은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기준을 흔든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닌지, 사회가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이 지나치게 좁아진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작품이 바라보는 것은 노인의 문제가 아니다. 늙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의 모습이다. 노인을 밀어내는 문화 속에서 결국 밀려나는 대상은 미래의 우리 자신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는다.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에서 필요한 것은 늙지 않는 방법이 아니라 늙어가는 존재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다. 연극 '노인박멸'은 그동안 외면해 온 노화와 존엄의 문제를 무대 위에 올리며, 인간의 가치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문화적 기록으로 남는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Copyright ⓒ 뉴스컬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