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 픽사베이
삼겹살 1인분이 2만원에 육박하는 게 예삿일이 된 '금겹살' 시대다. 두 사람이 삼겹살에 소주 몇 병만 곁들여도 계산서에 찍힌 돈이 10만원을 넘길 수도 있다. 서민 외식의 상징이던 삼겹살이 이제는 불판보다 계산서를 먼저 걱정하는 메뉴가 됐다. 대형마트 삼겹살 판매가의 일부는 유통업체들이 6년 넘게 값을 짜고 맞춘 결과였다는 것이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이정호)는 이마트에 납품하는 돼지고기 가격을 담합한 도드람푸드 등 유통업체 6곳과 임직원 12명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4일 밝혔다. 이들 가운데는 국내 1·2위 업체도 포함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2017년 8월부터 2023년 11월까지 약 6년 3개월간 이마트에 납품하는 돼지고기 견적가격을 매주 주고받거나 사전에 합의하는 방식으로 담합했다. 담합 규모는 이마트가 이 기간 매입한 돼지고기 구매액 기준 약 1조2000억원에 이른다. 이마트가 담합 업체들로부터 돼지고기를 사들이면서 지불한 돈 상당액이 부풀려진 가격이었던 셈이다.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 돼지고기가 진열돼 있다. / 뉴스1
담합은 이마트가 2017년 8월 납품업체 간 가격 경쟁을 유도하려고 각 업체가 낸 견적가격을 서로 공개하지 않기로 하면서 시작됐다. 견적가격을 감춰 경쟁을 붙이려던 조치가 오히려 업체들의 담합을 부른 셈이다. 업체들은 견적 정보를 자기들끼리 매주 교환해 납품가격이 일정 수준 밑으로 떨어지지 않게 유지했다. 담합이 드러나지 않도록 소액의 차이만 두고 견적을 넣는 수법도 썼다.
초기에는 행사나 재고 처분 등 사정이 있을 때 담당자끼리 개별적으로 연락해 가격을 조율했다. 그러다 2021년 11월부터는 텔레그램 단체 비밀 대화방을 만들어 집단으로 가격을 맞췄다. 가격 정보 교환 행위를 처벌하는 공정거래법 규정이 그해 12월 시행되자 이들은 "보안에 더욱 신경 쓰자"고 서로 당부하며 담합을 이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관련 처벌 규정이 시행된 이후의 담합 행위만 기소 대상에 포함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현장조사에 나서자 임직원들은 조직적으로 증거를 없앴다. 한 업체에서는 준법감시를 맡은 법무팀 직원이 영업팀장에게 경쟁사와 주고받은 자료와 경쟁사 가격 정보가 담긴 전산 자료를 모두 지우라고 지시한 사실도 확인됐다. 검찰은 이를 조사 방해로 보고 범행을 주도한 4명을 특정해 함께 기소했다. 아울러 가담 정도가 무거운 12명에 대해서는 공정위에 고발요청권을 행사했다.
이번 사건은 공정위가 앞서 이마트에 돼지고기를 납품한 9개 업체의 담합을 적발해 과징금 31억6500만원을 부과하고 6곳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수사가 본격화했다. 공정위 조사 단계에서는 각 업체가 참여하는 일반육 입찰과 브랜드육 견적서 제출 과정에서 부위별 가격이나 하한선을 미리 맞춘 정황이 확인됐다. 이는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돼지고기 거래를 둘러싼 담합에 제재가 내려진 첫 사례로 꼽힌다. 검찰은 지난 4월 이들 업체를 압수수색하는 등 강제수사에 착수해 약 3개월 만에 담합 구조를 규명했다.
검찰은 담합이 실제 소비자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봤다. 검찰은 "2023년 11월 담합 행위가 적발된 이후에는 돼지고기 도매가격이 2023년 ㎏당 5134원에서 2024년 5239원으로 올랐는데도 대형마트 삼겹살 판매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25.5% 떨어졌다"며 "적발 전까지는 담합 탓에 대형마트 판매가격이 최소 20% 이상 높게 유지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매가격이 올라도 업체 간 경쟁이 붙자 소비자가격은 오히려 내렸다는 것이다. 담합이 사라지자 값이 떨어졌다는 점에서 그동안 소비자가 부담한 가격에 거품이 끼어 있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Copyright ⓒ 위키트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