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에서 이어집니다.) 정부가 혁신조달 정책을 확대하는 배경에는 인공지능(AI)을 비롯한 미래 산업을 보다 빠르게 시장에 안착시키려는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다. 첨단기술은 연구개발 단계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더라도 실제 현장 적용과 초기 수요 확보에 실패하면 사업화가 지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최근 추진한 혁신조달 사업을 살펴보면 이러한 정책 방향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선정 과제에는 AI 기반 산업안전관리 시스템, 인공지능을 활용한 도로 통합관리, 드론을 활용한 항공등화시설 자동점검, 스마트 수질관리 시스템, 친환경 방역제품 등이 포함됐다. 기술 개발 자체보다 실제 공공현장에서 활용 가능한 기술을 발굴하고 검증하는 데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의미다.
이는 산업정책의 무게중심이 공급 중심에서 수요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기업이 기술을 개발하면 시장에서 스스로 판로를 개척해야 했다면, 이제는 공공기관이 먼저 필요한 기술을 제시하고 기업과 공동으로 기술을 완성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계에서는 이러한 구조가 AI와 디지털트윈, 스마트팩토리, 산업용 로봇, 스마트시티 등 공공서비스와 접점이 많은 산업에서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첫 구매'가 만드는 기업 성장 사다리
혁신기업에게 공공조달이 갖는 의미는 단순한 매출 확보가 아니다. 공공기관 납품 실적은 기술 신뢰도를 입증하는 대표적인 이력(Track Record)으로 평가된다.
특히 초기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은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하고도 납품 실적이 부족해 민간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공공기관이 첫 구매자가 되면 기업은 제품 성능을 객관적으로 검증받을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민간기업과 해외시장 진출도 한층 수월해질 수 있다.
산업부 역시 이러한 점을 고려해 연구개발과 실증 이후 혁신제품 지정, 공공조달, 민간시장 진출, 투자유치까지 연계하는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기술개발 지원에 머물렀던 기존 정책과 달리 사업화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셈이다.
대표 사례로 소개된 원격·실시간 전기안전 모니터링 기술은 공공기관 수요를 기반으로 개발된 뒤 제도 개선과 실제 도입으로 이어졌으며, 이후 민간시장 확대도 추진되고 있다. 이는 혁신조달이 단순한 정부 구매를 넘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서비스까지 넓어진 혁신조달…'제조 중심' 넘어 산업 전반으로
혁신조달 정책은 제조업에만 머물지 않고 서비스 산업으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국가기술표준원과 조달청은 지난해 서비스 공공조달 확대를 위해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서비스 한국산업표준(KS)과 공공조달을 연계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서비스 KS 인증을 받은 기업은 용역 입찰에서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공공조달 분야에서도 서비스 품질 경쟁이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이는 공공조달의 범위가 물품 구매를 넘어 디지털 서비스와 시설관리, 고객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AI 기반 소프트웨어와 클라우드, 데이터 서비스 등 디지털 산업에도 새로운 시장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구매 행정'에서 '산업 투자'로…남은 과제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공공조달이 산업 경쟁력 강화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혁신제품에 대한 공공기관의 구매 부담을 줄이고, 실증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제도적으로 분담하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공공조달이 특정 기업 지원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평가 기준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럼에도 정부가 공공조달을 단순한 구매 행정이 아닌 산업 육성 정책으로 활용하려는 방향은 분명해지고 있다. 기술개발과 초기 시장 창출, 민간 확산, 해외 진출을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하는 전략은 AI 시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정책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앞으로의 공공조달은 '얼마나 싸게 사느냐'보다 '어떤 기술을 키우느냐'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첫 구매가 혁신기업의 첫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이 대한민국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성과로 연결될 수 있을지가 하반기 산업정책의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폴리뉴스 정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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