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3 지방선거를 통해 충청권 지방권력에 큰 변화가 생겼다. 지난 대선을 통한 정권교체에 이어 지선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하면서 지역발전의 새로운 코드가 맞춰졌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시너지 극대화의 필요충분조건이 맞춰졌다는 얘기다. 새로운 민선, 임기 4년의 지방권력을 잡은 광역단체장과 지방의회 전반기(2년) 의장을 차례로 만나 그들이 구상하는 변화와 도전의 로드맵을 들여다 봤다. 또 4년간 교육 정책을 총괄할 교육감도 만나 교육행정의 새로운 변화상도 엿봤다.
대전시민 선택의 무게추는 이미 ‘정권교체’로 기울어 있었다. 사상 초유, ‘2연 타석 대통령 탄핵’이라는 멍에를 짊어진 국민의힘은 대선에 이어 지선에서도 힘을 쓰지 못했다.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도의 표심은 ‘권력 교체’에 있었고 민심은 더불어민주당에 다시 한번 기회를 줬다.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된 지 꼭 1년 만에 치러진 지난 6·3 지선에서 민주당은 충청권 4개 광역단체장을 모두 가져갔다. 8년 전 전승, 4년 전 전패에 이어 다시 전승을 거둬 지방권력을 되찾았다. 특히 허태정 대전시장은 8년 전 민선 7기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 가운데 유일하게 민선9기에서 부활한 이력을 갖게 됐다. 4년의 정치적 공백이 그가 허투루 보낸 시간이 아니었음을 방증한다.
◆밀려오는 AI 파도…미래 대응
민선9기 대전시정의 최대 화두는 역시 AI(인공지능)다. AI에 대한 대응력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이재명정부 국정과제 수행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 지역발전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대전시가 발표한 조직개편안(8월 31일 시행)만 봐도 허 시장의 시선을 따라잡을 수 있는데 시는 조직개편의 최우선 방향으로 ‘AI 대전환’을 꼽았다. 기획조정실에 3급 AI혁신관을 신설해 AI 관련 정책 기획과 행정 전반에서의 인공지능 활용, 시민 서비스 개선, 공공혁신과 정보화 기능을 연계함으로써 시정의 AI 전환을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민간 전문가와 산·학·연·관이 참여하는 (가칭)AI혁신전략위원회도 구성해 정책 전문성과 현장성을 보완하기로 했다. 또 미래전략산업실과 기업지원국을 미래전략실로 통합·강화한다. 반도체·바이오·국방·우주항공 등 전략산업 육성과 기업지원, 창업, 투자유치 기능을 한 체계 안에서 연계해 산업 혁신이 기업의 성장으로 이어지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지난 4년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전시를 지켜보면서 무엇이 부족하고 또 무엇을 바로잡아야 하는지 계속 고민해왔어요. 또 시민들께서는 어려워진 민생을 회복하고 대전을 다시 바로 세워달라는 뜻으로 저를 선택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민선9기 대전시정의 방향성은 뚜렷합니다. 미래 먹거리 전략을 마련하는 일과 도시경쟁력을 키우는 것, 그리고 청년이 핵심 키워드입니다.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대전시가 중앙정부 국정과제와 코드를 맞춰 미래를 준비하는 데 있어 대전시정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어요. 변화된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하면 도태되기 마련이죠. 연내 AI를 중심으로 한 미래전략과 정책을 수립해 체계적으로 대응해 나갈 생각입니다.”
◆열악해진 재정 상황
새로운 미래전략 실행을 위해 허 시장은 시정의 속도감을 재촉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재정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게 허 시장에게 가장 큰 고민이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민선8기에 대한 평가는 자제하는데 이 부분 만큼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허 시장은 토로한다. 정책 실행의 효과는 속도, 즉 추진력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데 이를 이끌어갈 가장 중요한 도구인 재정이 메말랐다는 게 민선9기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시정에 복귀해 가장 먼저 재정과 주요 현안을 검검했는데 생각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합니다. 먼저 지방채 규모가 지난 4년간 6000억 원 가까이 급증해 1조 5800억 원에 이릅니다. 특·광역시를 통틀어 채무 증가율이 가장 큽니다. 세입이 줄었는데도 사업계획은 과다하게 짠 결과입니다. 특별한 목적을 갖는 시 기금은 800억 원 가까이 줄었고 그 결과 재정자립도는 39%에서 37%까지 떨어졌어요. 현재 계획대로 사업을 추진하면 올해만 5482억 원, 내년부터는 매년 6900억 원 안팎의 재원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런 상황에선 사업을 포기하든지, 아니면 어디서 빌리든지 해야 하는데 그러면 ‘일 못한다’는 비판을 마주해야 할 겁니다. 일단 지출 구조조정이 급선무예요. 정말 필요한 사업인지, 시민들께 도움이 되는 사업인지 처음부터 다시 따져보고 있습니다. 현재 82개 사업, 총사업비 6조 6000억 원 규모의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어요. 꼭 필요한 사업은 계속 추진하되 규모나 시기를 조정할 사업은 과감하게 손보려고 합니다. 물론 이 같은 재정 혁신이 긴축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절약해서 확보한 재원을 민생과 복지, 청년, 미래산업처럼 시민 삶과 직결되는 분야에 빠르게 투자하려고 합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허 시장이 가장 먼저 폐지를 결정한 사업은 ‘대전0시축제’다. 투자 대비 효율이 지극히 낮다는 게 허 시장의 판단이다.
“0시축제의 경우 직접적인 예산뿐만 아니라 산하기관과 간접사업비까지 포함하면 연간 약 100억 원 안팎의 재원이 투입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런데 여름철 열흘 넘게 도심 교통을 통제하는 방식까지 감안하면 지금의 재정 여건에서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최선인지 다시 판단을 해야 했어요. 특히 이 축제와 관련해선 매년 찬반 논란이 뜨거운데 교통불편, 뜨거운 여름철 개최에 따른 피로감과 같은 반대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판단합니다. 이미 올해 축제를 위해 투입된 매몰비용(17억 7000만 원)이 발생하지만 이를 이유로 더 큰 예산을 계속 투입하는 게 오히려 무책임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신 대전의 최대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빵을 테마로 한 축제로 문화와 관광, 지역상권, 제과·제빵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겠습니다.”
◆관성 탈피, 두 번의 담금질
허 시장에게 있어 대전시장직은 민선7기에 이어 두 번째다. 한 번 경험이 있으니 그만큼 시행착오는 줄어들겠지만 허 시장 특유의 ‘안정감’은 때론 ‘추진력 부재’라는 비판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는 4년 전 지방선거에서도 그랬고 이장우 전 시장과 치른 지난 6·3 지선 리턴매치에서도 내내 허 시장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과연 그는 달라졌을까.
“결국 리더십과 연결되는 부분인데 리더십은 시대상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봅니다. 과거엔 리더십이라고 하면 정치력과 조직 장악력, 뭐 이런 것들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실용성, 효능감이 중요하지요.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달라진 큰 변화를 체감하실 겁니다. 물론 제 정치적 명분과 가치지향점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행정의 효능감이 무척 중요해졌습니다. 민선9기에서는 시민들이 일상에서 ‘달라졌다’고 느낄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하려고 합니다. 정책 어젠다를 빠르게 정립해 속도감있게 추진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허 시장은 특히 이 같은 ‘리더십의 변화’의 원동력을 그의 선거 이력에서 끄집어냈다. 그는 지방선거와 관련해 한 번의 경선 낙선과 또 한 번의 본선 낙선 이력이 있는데 그 패배의 시간이 그를 단련시킨 결정적 계기가 됐다.
“노무현정부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하다 2006년 제4회 지선 유성구청장선거 출마를 위해 대전으로 내려왔는데 그땐 자신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당내 경선에서 덜컥 떨어진 거예요. 이후 4년간 낮은 자세로 정치적 기반을 다져 이후 12년간 유성구청장 연임에 성공했고 곧바로 대전시장에까지 올랐지요. 관성에서 탈피해 새로 거듭나기 위한 담금질을 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4년도 마찬가지였어요. 저를 다시 되돌아보는 시간 속에서 제 정치적 역량을 키웠고 그 노력의 시간은 그만큼 행정적 효능감으로 이어져 성과로 나타날 것입니다.”
◆불안정한 현안, 시급한 과제
허 시장의 민선9기 시정 추진 방향은 이재명정부의 지향점과 맞닿아 있다. 미래 먹거리 전략 마련에 집중하면서 시민주권 확대와 민생회복 분야에서 행정 체감도를 끌어올리는 거다. 허 시장은 특히 민생경제를 다시 일으키는 게 급선무라고 보고 있다. 미래에 대한 투자를 과감하게 전개해 나가면서도 풀뿌리 민주주의, 시민사회의 역량을 함께 끌어올리면서 골목상권도 동반 성장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거다.
“시민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현안 중 최대 관심사는 대전도시철도 2호선 트램일 겁니다. 취임 후 진행상황을 점검했더니 2028년 개통은 어렵다는 보고를 받았어요. 그래서 현재 모든 공구에 대한 공정 상황을 반영한 통합공정계획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올 하반기에 사업계획이 확정되면 변경된 일정과 추진계획을 투명하게 공개하겠습니다. 수소 생산시설과 충전인프라, 운영기관 선정도 차질없이 준비하겠습니다. 또 다른 현안은 혁신도시 조성, 다시 말해 수도권 공공기관 유치도 큰 과제이자 도전입니다. 이는 대전역세권 개발과도 맞물려 있는 사안이기도 하죠. 대전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최적의 기관들을 유치하겠습니다. 과학기술·지식재산·기술창업·벤처성장을 중심으로 한 클러스터 전략을 마련하고 그린테크 분야 클러스터에 걸맞은 기관 유치도 적극 추진할 생각입니다. 또 다른 핵심 정책수단은 ‘온통대전의 부활’입니다. 민선7기에서 도입한 온통대전의 업그레이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온통대전 2.0’을 빠르게 다시 선보이겠습니다. 캐시백 기능을 기본으로 하고 정책수당 등 다양한 시민 혜택과 단계적으로 연계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특히 골목상권과 전통시장, 청년창업기업과 같은 꼭 필요한 곳에 혜택이 더 집중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축적되는 온통대전 소비 데이터를 정책에 적극 활용해 소상공인들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지역경제 플랫폼으로 발전시켜 나가겠습니다. 9월 중 추경을 통해 필요 예산을 확보하겠습니다.”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Copyright ⓒ 금강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