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중복 지나도 괜찮아"…제주는 오늘 '닭 먹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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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복·중복 지나도 괜찮아"…제주는 오늘 '닭 먹는 날'

연합뉴스 2026-08-02 09:00:0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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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6월20일 땀 흘린 여름 농사 마치고 온 가족 모여 닭 한 마리

계절과 삶이 어우러진 세시풍속…제주만의 특별한 '여름나기'

초복 맞아 문전성시 이룬 삼계탕집 초복 맞아 문전성시 이룬 삼계탕집

(서울=연합뉴스) 초복을 앞둔 지난 7월 13일 서울 시내 한 삼계탕집 앞에서 시민들이 줄지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초복이면 삼계탕집 앞에 긴 줄이 늘어서고 중복에도 뜨거운 뚝배기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뜨거운 국물에 닭 한 마리를 먹어야 여름을 제대로 날 수 있을 것 같은 날이 복날이다.

올해도 초복(7월 15일)과 중복(7월 25일)을 거치며 한바탕 삼계탕 잔치가 지나갔다.

말복은 8월 14일로 아직 열이틀 남았다.

더구나 올해는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이나 벌어진 '월복'(越伏)이어서 늦더위가 길게 이어질 전망이다.

그 무더위 한복판인 8월 2일, 제주에서는 이날이 또 하나의 닭 먹는 날이다.

음력으로는 유월 스무날.

제주 사람들은 예부터 이날을 '닭 잡아먹는 날'로 여겼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초복과 중복, 말복을 챙겼다면 제주 사람들은 음력 유월 스무날 닭을 잡아 온 가족이 나눠 먹으며 지친 몸을 달랬다.

이날 닭을 잡아먹으면 보약이 돼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여름을 날 수 있다고 믿었다.

삼계탕으로 이겨내는 무더위 삼계탕으로 이겨내는 무더위

[연합뉴스 자료사진]

날짜는 달라도 뜨거운 여름을 이겨내기 위해 닭을 먹고 기운을 보충한다는 의미는 복달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복날은 중국에서 전해진 세시풍속이다.

흔히 입춘이나 하지 같은 절기의 하나로 알기 쉽지만, 삼복은 24절기에 들지 않는다.

육십갑자에서 '경'(庚)자가 들어가는 경일을 기준으로 하지 이후 세 번째 경일이 초복, 네 번째 경일이 중복, 입추 이후 첫 번째 경일이 말복이다.

삼복에는 더위에 지친 몸을 보하기 위해 삼계탕이나 개장국 등 영양식을 먹었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삼복보다 농사 주기에 맞춰 닭을 먹는 풍습이 생활 속에 자리 잡았다.

제주대학교박물관이 펴낸 '할망 하르방이 들려주는 제주 음식 이야기'(허남춘·허영선·강수경 저)에 따르면 제주 사람들이 음력 6월 20일 닭을 잡아먹은 풍습은 농사일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물이 고이지 않고 그대로 스며드는 화산섬 제주에서는 논을 만들기 어려웠다.

벼농사 대신 밭농사가 생업의 중심이 된 이유다.

제주 사람들은 밭에서 겨울 농사로 보리를 기르고 여름 농사로 조와 콩, 팥, 고구마 등을 재배했다.

가을에 씨를 뿌린 보리는 이듬해 망종(양력으로 올해 6월 6일)을 전후해 거뒀다.

더위 이기는 삼계탕 한 그릇 더위 이기는 삼계탕 한 그릇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어 장마철(양력 6월 중하순∼7월 중순)을 전후로 조와 콩, 팥 등 여름 농사의 씨를 뿌렸다.

보리 수확을 마치고 여름 작물까지 심고 나면 대개 음력 유월 스무날께(양력 7월 하순∼8월 초순)가 됐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이어진 농사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한 뒤 닭을 잡아먹으며 지친 몸을 추스른 것이다.

이 책은 당시 농사 풍경을 기억하는 제주 어르신의 말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농사가 딱 끝난 때가 유월 스무날이라. 사람들이 막 버치지(지치지). 여름 농사 콩·조·팥 같은 농사, 고구마 같은 거 그때 딱 끝나. 갈고, 심고. 가을 들어야 거둬들이지만 … (중략) … 망종 되면 선보리라 없다고 해. 농사가 완전히 다 익어버려. 보리 베고 그 시기쯤 농사가 다 끝나면 유월 스무날이 되어. 음력으로."

자연의 흐름에 맞춰 농사를 짓고 그 주기에 따라 몸을 쉬게 하며 음식을 먹은 제주 사람들의 생활 지혜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닭이었을까.

당시 닭은 지금처럼 언제든 사 먹을 수 있는 흔한 음식이 아니었다.

소는 밭을 갈고 짐을 나르는 중요한 노동력이었다. 돼지도 집안의 큰 재산이어서 혼례나 장례, 제사처럼 큰일이 있을 때나 잡았다.

닭 역시 귀했지만 소나 돼지보다는 기르기 쉬웠다.

집집마다 이른 봄 알에서 깨어난 병아리를 마당에 풀어놓고 길렀다. 다섯 달 가까이 자란 닭은 음력 6월이면 제법 살이 오르고 육질도 단단해졌다.

제동목장의 제주재래닭 제동목장의 제주재래닭

[연합뉴스 자료사진]

복날 상에 오르는 자그마한 영계와 달리 몸집이 커 온 식구가 나눠 먹기에도 모자람이 없었다.

음력 유월 스무날이 되면 이렇게 키운 닭을 두어 마리 잡아 식구들이 둘러앉아 나눠 먹었다.

한 해 농사를 무사히 이어온 가족에게 닭 한 마리는 고단함을 달래는 귀한 음식이자 남은 여름을 견디게 하는 보양식이었다.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라는 환경도 제주만의 여름나기 풍습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았던 데다 더위가 심하면 가까운 바다나 용천수에 몸을 담가 열을 식힐 수 있어 육지처럼 여러 종류의 보양 음식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해석도 있다.

오늘날 제주에서도 초복과 중복, 말복이면 삼계탕집이 붐빈다.

전국적인 복달임 문화가 퍼지면서 제주 사람들에게도 복날 삼계탕은 익숙한 여름 풍경이 됐다.

대신 음력 유월 스무날 닭을 잡는 모습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한여름 농사일을 마친 가족이 닭 한 마리를 나눠 먹으며 서로의 수고를 위로하고 남은 여름을 날 힘을 얻었던 풍습은 제주 사람들의 삶과 계절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마침 올해 닭 먹는 날은 온 가족이 모이기 좋은 일요일이다.

초복도, 중복도 지났지만, 제주에서는 바로 오늘이 닭 먹는 날이다.

"더운 여름 건강하게 나세요" "더운 여름 건강하게 나세요"

[연합뉴스 자료사진]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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