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도입에 따른 생산성 향상이 근로자의 임금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고용 감소보다 임금 압박이 먼저 나타나는 가운데, 일부 직장인들은 회사의 AI 전략을 고의로 방해하는 등 반발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경제매체 포춘은 글로벌 자산운용사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의 연구 결과를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아폴로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토르스텐 슬록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AI가 고용과 생산성, 물가 등 주요 거시경제 지표에 뚜렷한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동료 연구원 사니아 에들리히와 진행한 이번 연구에서는 AI가 고용보다 임금에 먼저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연구팀은 AI 기업 앤트로픽의 실제 사용 데이터와 미국 노동통계국 자료를 활용해 321개 직군의 2015∼2025년 데이터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AI 노출도가 높은 직군의 실질임금 상승률은 2023년 이후 AI 비노출 직군보다 6.7%포인트 낮았다. 반면 해당 직군의 고용 수준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변화가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AI가 높인 생산성의 이익이 근로자의 임금보다 기업의 수익으로 더 많이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해석했다.
임금 압박은 저소득 직군에서 더욱 뚜렷했다. 최하위 소득 구간에 속한 직군의 임금 상승률은 AI 비노출 직군보다 10.7%포인트 낮았다. 반면 최상위 소득 구간에서는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영향이 나타나지 않았다.
현재 미국에서는 약 580만명의 근로자가 이러한 변화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이에 따른 연간 노동소득 감소 규모는 최소 280억달러(약 4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AI 확산에 대한 불안감은 직장 내 반발 행동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기업 컨설팅기관 라이터와 워크플레이스 인텔리전스가 미국과 유럽의 지식노동자 2400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29%가 회사의 AI 전략을 의도적으로 방해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Z세대 근로자 가운데서는 그 비율이 44%에 달했다.
구체적인 사례로는 허가되지 않은 공용 AI 서비스에 회사 기밀정보를 입력하거나 승인받지 않은 외부 AI 도구를 사용하는 행위가 꼽혔다. 회사가 의무화한 AI 프로그램 사용을 거부하거나 AI의 성능이 실제보다 떨어져 보이도록 의도적으로 낮은 품질의 결과물을 제출한 사례도 있었다.
AI 관련 방해 행위를 인정한 근로자의 30%는 자신의 일자리가 AI로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장 큰 이유로 들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움직임이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함께 반복돼 온 노동시장의 반발과 유사하다고 분석한다. 산업혁명 당시 기계 도입에 저항했던 ‘러다이트 운동’이나 1980∼1990년대 공장 자동화로 생산성은 향상됐지만 근로자 임금은 정체됐던 현상과 닮았다는 설명이다.
포춘은 AI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대규모 해고처럼 즉각적으로 드러나기보다 임금 상승을 억제하는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최규현 기자 kh.choi@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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