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에 수습 국면…몰려든 5∼6만명 중 최소 4만8천300명 출국
방파제 건너다 60여명 사망…스페인 총리 "공격·영토 보전 침해"
모로코 배후설…EU, 국경통제 강화하고 트럼프 "재앙·침략" 정치공세
(런던·서울=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신재우 기자 =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스페인령 북아프리카 자치도시 세우타로 5만∼6만명이 한꺼번에 밀려들며 빚어진 국경 위기가 하루 만에 상당 부분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스페인 내무부는 사태 발생 이틀째인 31일(현지시간) 세우타 무단 입국자 중 최소 4만8천300명이 자발적으로 모로코로 돌아갔다고 밝혔다.
스페인 정부는 무단 입국자 규모를 약 5만명으로 집계했고, 세우타 당국은 최대 6만명이 넘어온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현재는 수천 명만 세우타에 남아 있으며, 스페인 정부는 군 병력 등을 투입해 신원 확인과 송환 절차를 진행 중이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이날 세우타를 방문해 "이는 공격이자 스페인의 영토 보전에 대한 침해"라고 규탄했다.
산체스 총리는 이주민 서류 심사와 무자격 이주민의 신속한 추방을 위해 세우타에 임시 접수센터를 설치하고, 월경 방지를 위해 해안에 국경을 식별할 수 있는 해상 경계용 부표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산체스 정부는 최근 자국 내 장기 불법체류자 100만여명에게 합법적 체류 자격을 신청할 길을 여는 등 유럽연합(EU) 내에서 관대한 이민 정책을 펼쳐 왔으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내외에서 국경 관리에 실패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무단 입국자 중 상당수가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현지의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인구 8만4천명이 사는 도시에 이주민 수천 명이 거리를 배회하자 주민 상당수는 약탈 등을 우려해 집 안에 머물렀고, 상점들도 문을 닫았다.
당국은 잔류 이주민에게 음식이나 숙소를 제공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며, 일부 이주민은 이틀 가까이 굶었다고 호소했다.
이날 저녁 들어 주민들이 하나둘씩 거리로 나오며 다소 평온을 되찾는 모습이 보였지만, 일부 스페인 청년들이 이주민들을 향해 "모로코로 돌아가라"고 외치며 쫓아다니고 경찰과 군인이 곤봉을 든 채 이주민들을 국경 쪽으로 몰아붙이는 등 긴장감은 계속됐다.
당국은 최소 60명이 세우타 진입을 시도하다 사망했다고 밝혔다.
상당수는 세우타와 모로코 영토를 나누는 방파제를 헤엄쳐 건너려다 익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모로코 현지에서도 사망자가 나왔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보안 당국은 세우타로 향하는 군중을 물대포와 곤봉, 최루가스를 동원해 저지했고 충돌 현장 인근에서는 불에 탄 차량 여러 대가 목격됐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번 사태의 배경을 두고는 다양한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모로코 정부가 사실상 이를 묵인했거나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특히 최근 스페인과 알제리의 관계가 가까워진 데 대한 모로코의 불만이 반영됐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체스 총리는 열흘 전 알제리를 방문해 관계 강화를 모색했다. 모로코와 알제리는 서사하라 문제 등을 둘러싸고 북아프리카에서 오랫동안 경쟁해온 앙숙이다.
2021년에도 서사하라 독립운동 지도자의 스페인 입국을 둘러싼 양국 외교 갈등 속에 모로코인 5천∼8천명이 세우타로 넘어오는 사태가 벌어진 바 있다.
모로코 정부는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스페인령 세우타와 멜리야에 대한 스페인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해상으로 도착하는 이주민을 즉각 추방해선 안 된다는 스페인 대법원의 최근 판결이 이번 사태를 불렀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산체스 총리는 이에 대해 불법 입국 중개업자들이 법원 결정을 잘못 해석했다면서 "이러한 오독이 몇 시간 만에 인신매매 조직망을 타고 삽시간에 퍼져 대규모 유입을 촉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세우타가 유럽 본토로 향하는 대규모 이주 경로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면서 스페인 국내는 물론이고 역내 자유로운 이동을 규정한 솅겐 조약으로 묶인 EU에서도 산체스 정부에 국경 통제 회복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민 단속을 강화해온 이탈리아는 가장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이탈리아 내무부는 "스페인과의 해상 및 항공 국경을 폐쇄한다"고 밝혔다. 이는 EU 솅겐 조약을 스페인에 대해서만 적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며, 양국을 오가는 항공기와 선박 이용객들은 강화된 출입국 절차를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는 스페인 국경 검문을 강화한다고 밝혔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세우타에서 들어오는 이민자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우린 그 누구도 우리 규칙을 준수하지 않고 우리 연합에 들어오도록 허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독일과 스웨덴도 스페인에 "상황을 통제하라"고 촉구했다.
산체스 총리와 이란 전쟁,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방위비 문제로 각을 세워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번 사태를 "재앙"이라고 부르며 스페인 정부를 비판했다.
cherora@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