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묘정 작가] 회화와 공간이 된 실, 올가 데 아미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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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묘정 작가] 회화와 공간이 된 실, 올가 데 아미랄

문화매거진 2026-07-31 16:46:2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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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가 데 아마랄, 3차원 설치 연작 '안개(Brumas)' 중 'Brumas Q, R and T', 2014
▲ 올가 데 아마랄, 3차원 설치 연작 '안개(Brumas)' 중 'Brumas Q, R and T', 2014


[문화매거진=노묘정 작가]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실을 엮어왔다. 추위를 막기 위한 옷, 생활을 위한 천, 공간을 장식하는 직물까지 직조는 언제나 인간의 삶 가까이에 존재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은 오랫동안 ‘예술’보다는 ‘공예’의 영역에 머물렀다. 캔버스 위의 그림이나 조각과는 달리 실을 엮는 행위는 생존과 노동의 기술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며 이러한 경계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예술가들은 재료가 가진 전통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실과 천을 이용해 색과 형태, 공간을 만드는 작업을 해왔다. 콜롬비아 작가 올가 데 아마랄(Olga de Amaral)은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그녀의 작업에서 섬유는 벽에 걸리는 장식품에서 벗어나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립적인 예술 매체가 되었다.

1932년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태어난 아마랄은 처음부터 섬유 예술가를 꿈꾸었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건축을 공부했고, 이후 미국 크랜브룩 예술학교에서 섬유 디자인을 배우며 직조의 세계에 들어섰다.

초기 작품은 전통적인 타피스트리 형식에 가까웠지만, 점차 그는 직조된 표면 자체보다 실이 만들어 내는 깊이와 질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두꺼운 실, 반복되는 매듭, 불규칙한 표면은 그림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조각처럼 물성을 드러냈다.

▲ 프랑스 파리의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에서 열린 회고전 전경
▲ 프랑스 파리의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에서 열린 회고전 전경


그녀는 직물을 단순히 평면적인 화면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건축물이 공간을 구성하듯, 섬유 역시 공간을 변화시키는 구조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 앞에 서면 관객은 하나의 이미지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멀리서 보면 추상적인 회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수많은 섬유와 손의 흔적이 드러난다.

아마랄을 대표하는 특징은 금을 활용한 작업이다. 콜롬비아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문화에서 금은 태양, 생명, 영적인 세계와 연결되는 상징이었고, 이러한 문화적 기억을 자신의 작품 속에서 조형 언어로 표현하였다. 

올가 데 아마랄, 금박(Gold leaf) 설치 연작 '비석(Estelas)'
▲ 올가 데 아마랄, 금박(Gold leaf) 설치 연작 '비석(Estelas)'


대표작으로 ‘Estelas’와 ‘Alquimias’ 시리즈가 있다. 그녀는 직조한 섬유 위에 석고와 안료를 바르고 그 위에 금박을 입히는 독특한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완성된 표면은 천이면서도 마치 오래된 벽이나 풍화된 돌처럼 보인다. 정면에서는 단단한 금속처럼 보이지만, 관객이 움직이면 빛이 반사되며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 스위스 럭셔리 패션 하우스 아크리스(Akris)의 2026 가을/겨울(F/W) 레디투웨어 컬렉션 패션쇼
▲ 스위스 럭셔리 패션 하우스 아크리스(Akris)의 2026 가을/겨울(F/W) 레디투웨어 컬렉션 패션쇼


그리고 이러한 그녀의 작품은 패션까지 확장된다. 2026년 파리 패션위크에서 열린 Akris 컬렉션은 아마랄과 공식 협업을 통해 진행되었다. Akris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그녀의 작품 세계를 패션으로 재해석한 컬렉션으로, 금빛 실과 직물이 가득 채운 런웨이 위에 그녀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Akris의 옷들이 선보여졌다.

그녀의 작품은 실과 천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생활을 위해 사용되던 부드러운 섬유는 그녀의 손을 거치며 회화가 되고, 조각이 되고, 빛에 따라 변화하는 하나의 공간이 된다. 

올해로 94세가 되는 아마랄은 여전히 작업을 이어가며 색과 재료가 가진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 그렇게 많은 시간 동안 수많은 실험을 통해 많은 작품을 만들었는데도 그녀는 자신이 아직도 색의 신비로운 본질을 찾고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녀에게 있어서 예술이란 하나의 답을 완성하는 일이 아니라, 같은 재료를 오래 바라보며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계속해서 발견하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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