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경쟁이 기술에서 인프라 경쟁으로 옮겨가면서 데이터센터는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자산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AI 산업을 떠받치는 데이터센터는 세계 곳곳에서 지역사회의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AI가 성장할수록 더 많은 데이터센터가 필요하지만, 전력과 물, 토지, 송전망 부담 역시 함께 커지면서 AI 혁신의 기반시설이 오히려 산업 성장의 제약 요인이 되는 양상이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더 이상 GPU 확보만으로 결정되지 않으며, 사회적 수용성과 전력 인프라를 함께 확보하는 게 실질적인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비즈니스플러스는 3회에 걸쳐 이에 대해 짚어본다. [편집자주]
AI 산업은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성장 궤도에 올랐다. 이제 각국이 고민하는 것은 데이터센터를 지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운영할 것인가다. 전력과 물, 탄소 배출을 줄이면서도 AI 경쟁력을 유지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가 된 것이다.
업계에선 AI 시대 국가 경쟁력은 더 많은 데이터센터를 확보하는 능력이 아니라 기술 혁신과 환경, 지역사회가 공존하는 구조를 얼마나 빠르게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진단한다.
AI 산업을 둘러싼 논의는 불과 몇 년 사이 크게 달라졌다. 생성형 AI가 등장한 초기에는 생산성 혁신과 산업 경쟁력이 핵심 화두였다. 그러나 AI 서비스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과 용수, 반도체, 토지를 소비하는 초대형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AI 산업의 외형이 커질수록 환경 부담 역시 함께 커지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31일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에너지 정책과 산업 정책의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제 AI 경쟁은 소프트웨어 경쟁이 아니라 전력과 자원 효율 경쟁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변화는 각국의 정책 기조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데이터센터 유치 자체가 목표였다면, 최근에는 에너지 효율과 탄소 감축, 주민 수용성까지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분야는 데이터센터의 환경 정보 공개다. 유럽연합(EU)은 일정 규모 이상의 데이터센터를 대상으로 전력 소비와 에너지 효율, 물 사용량, 폐열 활용 현황 등을 보고하도록 하는 제도를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데이터센터를 단순한 민간 시설이 아니라 사회적 기반시설로 보고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기업들도 이에 맞춰 에너지 효율을 새로운 경쟁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과거에는 얼마나 많은 GPU를 운영하는지가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동일한 연산을 얼마나 적은 전력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가 핵심 평가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계는 향후 데이터센터 투자에서 총 전력사용효율(PUE)과 탄소배출 저감 수준이 투자 판단의 핵심 지표 가운데 하나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AI 산업이 성능 중심 경쟁에서 효율 중심 경쟁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의미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AI 데이터센터에서 가장 많은 전력이 소비되는 분야 가운데 하나는 냉각이다. 최신 AI 서버는 고성능 GPU를 대규모로 집적하면서 기존 공랭식 냉각만으로는 발열을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따라 액침냉각(Immersion Cooling)과 직접액체냉각(DLC) 같은 차세대 기술 도입이 빠르게 늘고 있다. 액침냉각은 서버를 특수 절연액에 직접 담가 열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냉각 효율을 높이고 전력 소비를 줄일 수 있는 기술로 평가받는다. 직접액체냉각은 냉각수를 칩 가까이 공급해 발열을 제어하는 방식으로 초고성능 AI 서버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엔비디아를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도 차세대 AI 반도체 설계 단계부터 전력 효율을 핵심 요소로 반영하고 있다. 결국 AI 경쟁력은 더 많은 연산 능력이 아니라 동일한 전력으로 얼마나 높은 성능을 구현할 수 있는지에 의해 결정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유럽에서는 데이터센터를 지역 에너지 생태계의 일부로 활용하려는 시도도 확대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폐열 재활용이다. 핀란드와 덴마크,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에서는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하는 열을 지역난방망과 연결하는 사업이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외부로 배출되던 열을 주택과 공공시설 난방에 활용하면서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주민 체감 혜택도 함께 제공하는 방식이다.
일부 지방정부는 데이터센터 인허가 과정에서 폐열 활용 계획을 함께 검토하기도 한다. 이 같은 모델은 주민에게는 난방비 절감 효과를, 사업자에게는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는 효과를 동시에 제공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데이터센터가 전기를 소비하는 시설에서 벗어나 전력과 열을 함께 공급하는 복합 에너지 인프라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주민 반발을 줄이는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일자리 창출과 지방세 증가 효과를 강조하는 데 그쳤다면 최근에는 지역사회와 실질적인 이익을 공유하는 모델이 확산하는 추세다.
일부 프로젝트는 송전망 확충 비용 일부를 사업자가 부담하거나 지역사회 발전기금을 조성하고 있다. 공원과 도로 등 생활 인프라를 함께 개선하거나 주민 의견을 설계 단계부터 반영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는 데이터센터를 단순한 민간 투자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 운영해야 하는 공공 인프라로 바라보는 시각이 확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용인과 하남, 김포 등 일부 지역에서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는 배경에는 시설 자체보다 정보 부족과 소통 부재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 전문가들은 초기 단계부터 주민 설명과 환경 영향 공개, 지역 기여 방안을 함께 제시해야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 역시 AI 인프라 확대라는 과제를 피할 수 없다. 정부는 국가 AI 컴퓨팅센터 구축과 AI 고속도로 조성, 첨단 GPU 확보 등을 추진하고 있고, 민간에서는 SK그룹과 네이버, LG유플러스, KT를 중심으로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AI 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할수록 송배전망 확충과 재생에너지 확보, 용수 관리, 주민 수용성 확보는 더욱 중요한 정책 과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선 앞으로 데이터센터 허가 정책도 단순한 입지 심사를 넘어 전력 공급 안정성과 탄소 감축, 지역 상생 계획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한다.
업계 관계자는 "AI 산업은 이제 반도체나 소프트웨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며 " 기술 혁신과 전력 인프라, 환경, 지역사회가 균형을 이루는 새로운 사회계약을 얼마나 빠르게 구축하느냐가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AI 시대의 진정한 경쟁은 더 많은 데이터센터를 짓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인프라를 사회와 어떻게 공존시키느냐가 앞으로의 AI 경쟁력을 결정하는 새로운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대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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