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통신산업의 경쟁 구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가입자 확대와 이동통신 서비스 중심의 성장 모델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통신사들의 승부처는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등 기업 대상 디지털 전환(AX) 시장으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KT가 향후 5년간 약 18조원을 AI와 미래 정보통신기술(ICT)에 투자하며 'AI 플랫폼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한 것도 이 같은 산업 환경 변화를 반영한 전략이다. 다만 시장은 투자 규모보다 AI 사업이 실제 수익성과 기업가치 제고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더 주목하고 있다.
KT는 최근 AICT(AI+ICT) 기업을 새로운 정체성으로 제시하며 통신 중심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AI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기업용 AI 서비스, 보안, 차세대 네트워크를 미래 성장축으로 육성해 통신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단순한 신사업 확대가 아니라 성숙기에 접어든 국내 통신시장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구조 전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입자 경쟁 시대는 끝났다…통신사의 생존 전략으로 떠오른 AI
한때 통신사의 성장은 가입자 수와 스마트폰 보급률 확대에 비례했다. 하지만 국내 이동통신 시장은 이미 포화 단계에 접어들었고, 5G 서비스 역시 초기 성장세를 지나 안정기에 들어섰다.
가입자 증가 여력이 줄어든 상황에서 요금 규제와 경쟁 심화는 통신사의 수익성 개선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실제 국내 통신 3사 모두 무선사업만으로는 과거와 같은 성장세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데 공감하고 있으며, 새로운 먹거리 발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때문에 AI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SK텔레콤은 글로벌 AI 생태계 구축과 AI 서비스 확대에 집중하고 있고, LG유플러스는 기업용 AI 플랫폼과 맞춤형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KT 역시 AICT 기업을 선언하며 통신사 간 경쟁의 무대를 네트워크에서 AI 플랫폼으로 옮기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제 통신사의 경쟁력은 가입자 수보다 얼마나 많은 기업 고객에게 AI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안정적인 수익으로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8조 투자의 핵심은 AI 인프라…기업 시장이 승부처
KT가 발표한 18조원 투자 계획의 핵심은 단순한 AI 서비스 개발이 아니다.
생성형 AI 시대에는 대규모 연산 능력을 갖춘 데이터센터와 GPU 인프라, 클라우드 플랫폼, 초고속 네트워크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KT는 이러한 기반 시설을 확대하는 동시에 제조업과 금융, 유통, 공공기관 등을 대상으로 한 AI 전환(AX) 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국내 기업들의 AI 도입이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기업용 AI 플랫폼 시장을 선점할 경우 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반면 AI 인프라 구축에는 막대한 투자비와 운영비가 수반되는 만큼 투자 회수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은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력…기회이자 과제
KT의 AI 전략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마이크로소프트(MS)와의 협력이다.
양사는 기업용 생성형 AI 서비스와 클라우드, AI 에이전트, 업무 자동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며 국내 기업의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고 있다. 글로벌 AI 기술과 KT의 통신 인프라, 기업 고객 기반을 결합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력만으로 경쟁력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시장은 얼마나 많은 기업 고객이 실제 서비스를 도입하고, AI 사업이 지속 가능한 매출과 영업이익으로 연결되는지를 기준으로 KT의 성과를 평가할 가능성이 크다.
'AI 투자'보다 중요한 것은 'AI 수익화'
최근 AI 산업은 세계적으로 대규모 투자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투자 규모가 곧 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AI 데이터센터 구축과 GPU 확보, 연구개발에는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지만, 이를 안정적인 수익으로 연결하는 기업은 아직 많지 않다. AI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경쟁 역시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KT 역시 향후 기업 가치의 핵심은 AI 투자 규모보다 AI 사업의 수익성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용 AI 서비스 확대와 데이터센터 운영 효율성, 클라우드 경쟁력 강화, 공공 AX 시장에서의 성과가 실질적인 성장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AICT 기업 전환도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KT의 도전은 통신산업의 미래를 보여주는 시험대
KT의 변화는 한 기업의 사업 전략을 넘어 국내 통신산업 전체의 방향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통신사의 역할이 단순한 네트워크 제공자를 넘어 AI 플랫폼과 디지털 인프라 사업자로 확대되는 흐름은 앞으로 더욱 뚜렷해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성공 여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AI 시장에서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은 물론 국내 통신사와 클라우드 기업, 플랫폼 기업들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기술 개발과 투자만으로는 차별화를 만들기 어려운 만큼, 고객 확보와 서비스 경쟁력, 수익성이라는 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결국 KT가 내건 'AI 플랫폼 기업'이라는 비전은 선언 자체보다 앞으로의 실적이 증명하게 될 것이다. AI 투자가 새로운 성장의 출발점이 될지, 또 하나의 대규모 투자 계획에 머물지는 향후 기업 시장에서의 성과와 수익 창출 능력이 가늠할 것으로 보인다.
[폴리뉴스 정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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