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예술로 가득 찬 2026 F/W 오트 쿠튀르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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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과 예술로 가득 찬 2026 F/W 오트 쿠튀르 컬렉션

더 네이버 2026-07-30 10:48:23 신고

chanel

‘가브리엘 샤넬의 삶은 과연 한 편의 동화였을까?’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한 샤넬의 거대한 판타지가 무대 위에 환상적인 모습으로 펼쳐졌다. 거대한 독초 덩굴과 꽃으로 가득 찬 초현실적인 공간은 마치 <잭과 콩나무> 속 세계를 현실로 옮겨놓은 듯한 풍경으로 시선을 모았다. 마티유 블라지는 허구와 실용 사이를 오가며, 옷을 만들고 입는 행위가 공생하는 관계에 집중했다. 마법의 콩을 연상시키는 기퓌르 레이스와 가볍고 투명한 실크 모슬린으로 재정의한 샤넬 슈트를 입은 모델의 손에는 가브리엘 샤넬의 아파트 서재에서 꺼내 온 <요정들 이야기>가 들려 있다. 동화적 창의성은 옷에만 머물지 않았다. 슈즈의 힐을 타고 오르는 덩굴, 잠든 곰을 형상화한 미노디에르, 새끼 오리에서 백조로 변신하는 버튼 등 위트와 환상을 담은 디테일 장치가 곳곳에 등장한 것. 착용자만이 발견할 수 있는 은밀한 코드들, 이를테면 밑단 체인에 매단 메모와 안감, 주머니 속에 숨겨놓은 작은 장식은 디자이너와 옷을 입는 사람만이 공유하는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된다. 화려한 장식을 넘어, 오트 쿠튀르를 입는 순간 비로소 완성되는 하나의 서사를 보여준 컬렉션이었다.

Balenciaga

때아닌 폭염으로 파리가 뜨겁게 달아오른 여름날, 발렌시아가의 55번째 쿠튀르 컬렉션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에르파올로 피촐리의 첫 쿠튀르 컬렉션이 14구 파리 국제 대학촌에서 공개됐다. 눈부신 햇살 아래 웅장한 계단을 따라 거대한 버블 실루엣과 풍성한 깃털 장식, 바닥을 길게 스치는 트레인이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했다. 하우스 유산을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한 이번 컬렉션은 인체와 의복의 관계를 통해 쿠튀르의 본질을 탐구했다. 인체를 3차원 디지털 스캔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테일러드 코트와 드레스를 제작하고, 개인의 자세와 움직임에 맞춰 내부 가죽 프레임을 몰딩했으며, 쿠튀르 최초로 바이오 엔지니어링 기반의 실크 대체 소재와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직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네오 가자(Neo-Gazar)를 적용했다. 이러한 기술적·소재적 실험은 놀랄 만큼 가벼우면서도 건축적인 실루엣을 구현했으며, 360도 모든 방향에서 형태를 드러내는 조형적 컬렉션을 완성했다.

Schiaparelli

과장된 실루엣과 독창적인 소재, 장인 정신이 집약된 표현 방식. 이 모든 특징을 지닌 오트 쿠튀르 피스는 패션의 아트 피스라 할 만하다. 이를 가장 충실히 구현하는 하우스로는 단연 스키아파렐리를 꼽을 수 있다. 다니엘 로즈베리가 이끄는 하우스는 ‘심연(The Abyss)’을 주제로 심해가 품은 미지의 공포와 경이, 그리고 머지않아 인간과 인공지능이 융합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탐구했다. 시그너처인 골드를 중심으로 랍스터 핑크, 바이올렛, 탠저린 등 해양 생물과 식물에서 착안한 색채를 펼쳐냈으며, 전통적인 실크와 새틴, 울 대신 라텍스와 실리콘 같은 새로운 소재를 적극 활용했다. 특히 컬렉션 전반에 등장한 극사실적인 코르셋은 손으로 조각한 형태를 실리콘으로 주조한 뒤 컬러를 입혀 실제 피부처럼 매끈하고 유기적인 질감을 연출했다. 실제 꽃과 물고기 비늘, 리본 플라워를 촘촘히 수놓은 재킷과 레깅스, 어깨에서 생명체처럼 뻗어 나오는 라텍스 촉수까지 더하며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초현실적인 세계를  완성했다.

Jean Paul Gaultier

2020년부터 객원 디자이너 체제로 오트 쿠튀르를 이어온 장 폴 고티에는 듀란 랜팅크를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하며 전환점을 맞았다. 패션계의 이단아라 불려온 랜팅크가 선보인 첫 오트 쿠튀르 컬렉션 제목은 ‘테크 쿠튀르(Tech Couture)’. 이름과 달리 출발점은 오트 쿠튀르 초창기인 18세기 마리 앙투아네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거대한 궁정복 실루엣을 3D 프린팅 기술로 재해석한 크리놀린은 신체 곳곳에서 튤이 흘러나오는 구조물로, 버슬은 말벌의 꼬리를 연상시키는 형태로 재탄생했다. 랜팅크가 탐구한 것은 몸이 아니라 실루엣 자체다. 이러한 접근은 장 폴 고티에의 상징적인 코드에도 이어진다. 콘브라는 가슴을 벗어나 몸 곳곳의 날카로운 돌기로 변주됐고, 2002 F/W 오트 쿠튀르 컬렉션의 스트라이프 울 원단과 오래된 바이커 재킷도 새롭게 재해석됐다. 기술과 패션이 결합한 시대 위에 랜팅크가 써 내려간 기발하고 창의적인 컬렉션은 듀란 랜팅크가 장 폴 고티에에서 펼쳐낼 새로운 비전을 가늠하게 하는 첫 무대였다. 

fendi

9년간 디올을 이끌었던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가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한 펜디로 돌아와 첫 번째 쿠튀르 컬렉션을 공개했다. 그녀는 첫 무대로 파리 오트 쿠튀르 위크의 중심에서 벗어나 브랜드의 기원인 로마에 위치한 국립현대미술관으로 향했다. 컬렉션의 키워드는 ‘욕망(Desire)’. 키우리는 ‘욕망’이라는 단어에 관능과 에로티시즘, 자유, 그리고 쾌락을 결합한다. 옷은 신체를 구속하기보다 움직임을 따라 유연하게 흐르고, 절제된 리듬 속에서 우아한 모습을 드러낸다. 재킷과 오버코트에 적용한 기모노 실루엣은 코르셋 없이 드레이핑만으로 몸의 선을 조각하듯 자연스럽게 감싸고, 깃털처럼 가벼운 망토는 가죽 꽃잎과 보드라운 나비, 섬세한 아라베스크 자수로 화려하게 장식됐다. 일부 룩은 ‘덜어냄’의 미학으로 완성된다. 퍼는 깃털처럼 가볍게 변주되고, 블랙과 화이트 스트라이프는 튤의 구조만으로 형태를 유지했다. 

Dior

파리 로댕 미술관 정원은 이번 시즌 나무고사리로 뒤덮인 디올의 울창한 숲으로 탈바꿈했다. 조나단 앤더슨이 디올에서 두 번째로 선보인 오트 쿠튀르 컬렉션은 미국 조각가 린다 벵글리스(Lynda Benglis)의 작업에서 출발한다. 2차원 소재로 시작해 매듭과 플리츠, 몰딩을 통해 3차원으로 전환하는 벵글리스의 작업 방식은 패브릭에 조형적 형태를 불어넣고 착용하면서 완성되는 오트 쿠튀르와 맞닿아 있다. 앤더슨은 이러한 연관성을 핸드 플리세, 매듭, 드레이핑 기법으로 구현했다. 벵글리스의 작품은 메탈릭한 광택과 종이를 연상시키는 질감의 패브릭으로 재해석됐으며, 특히 인도 구자라트주의 도시 아마다바드에서 마주한 공작새에서 영감 받은 작품 ‘피콕 시리즈’는 플로럴 모티프와 비즈 장식을 더한 드레스로 재탄생했다. 조나단 앤더슨은 이번 컬렉션을 “소재와 형태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하며, 예술과 오트 쿠튀르가 교차하는 지점을 섬세하게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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