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9일부터 SK하이닉스 보통주와 미국 예탁증서(ADR) 간 상호전환이 가능해지면서 차익거래를 노린 본주 매수세가 유입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다만 증권업계에서는 상호전환에 따른 수급 개선 효과가 단기간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해외 주요 기업들도 상호전환 이후 일시적인 투자심리 개선은 나타났지만 장기적인 주가 흐름은 결국 실적과 산업 사이클에 따라 결정됐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29일부터 코스피에 상장된 SK하이닉스 보통주와 미국 ADR 간 상호전환이 허용된다. 상호전환은 국내 보통주를 미국 ADR로 바꾸거나 반대로 ADR을 국내 보통주로 전환해 양국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현재 SK하이닉스 ADR은 미국 나스닥시장에서 종목명 'SKHY'로 거래되고 있으며 ADR 10주가 국내 보통주 1주에 대응하는 구조다. 국내 보통주를 ADR로 전환하려는 투자자는 거래 증권사를 통해 신청한 뒤 한국예탁결제원과 ADR 예탁기관인 씨티은행의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반대로 ADR을 국내 보통주로 바꾸려면 씨티은행에 ADR 해지를 신청한 후 이에 상응하는 보통주를 국내 증권계좌로 입고받아야 한다.
상호전환이 시작되면 이론적으로 국내 본주와 ADR 간 가격 차이를 활용한 차익거래가 가능하다. 미국 ADR 가격이 국내 본주보다 높을 경우 국내 주식을 매수해 ADR로 전환한 뒤 미국 시장에서 매도하는 방식이다. 환율과 전환 수수료, 환전 비용 등을 반영하고도 ADR 환산가격이 국내 본주보다 높으면 가격 차이를 수익으로 실현할 수 있다.
실제로 28일 기준 SK하이닉스 ADR 주가는 143.02달러로 한화 약 20만9500원에 형성됐다. 10대 1의 전환 비율을 적용하면 국내 보통주 기준 환산가격은 주당 약 209만5000원이다. 이는 이날 오후 1시 44분 기준 국내 본주 주가인 157만7500원보다 30% 이상 높은 수준이다.
이처럼 국내 본주와 ADR 간 가격 차이가 크게 벌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국내 주식을 매수하려는 차익거래 수요가 유입될 수 있다는 기대가 투자자들 사이에서 확산하고 있다. 차익거래가 본격화하면 국내 본주 매수세가 늘어나면서 단기적으로 주가와 거래량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개인투자자가 실제 차익거래에 직접 참여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일반적인 주식 매매처럼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이나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통해 즉시 전환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내외 증권사와 한국예탁결제원, 씨티은행 등을 거치는 별도 신청 절차가 필요하고 전환이 완료되기까지 일정한 시간이 소요된다. 이 기간 ADR과 국내 본주의 가격 차이가 축소되거나 환율이 변동하면 기대했던 차익이 사라지거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증권사별로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한 전환 서비스 제공 여부가 다를 수 있다는 점도 제약 요소다. 투자자는 해외 증권계좌와 외국환 관련 절차, 전환 수수료, 환전 비용 등을 개별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특히 국내 보통주를 ADR로 전환하는 과정이 사전에 정해진 발행 한도 내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은 가장 큰 제한 요인으로 꼽힌다. SK하이닉스는 전체 발행주식의 약 2.5%인 1779만주를 기초자산으로 활용해 총 1억7790만주의 ADR을 발행했다.
이미 발행된 ADR이 한도에 근접한 상태라면 기존 ADR이 국내 보통주로 전환돼 발행 물량이 줄어들어야만 새로운 ADR을 추가로 발행할 수 있다. 상호전환이 시행되더라도 국내 보통주를 ADR로 전환할 수 있는 물량은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실제 차익거래는 대규모 자금과 국내외 거래 인프라를 갖춘 기관투자자가 주로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관투자자는 환율과 수수료, 전환 기간을 고려해 거래할 수 있지만 개인투자자는 절차와 비용, 시간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차익거래가 본격화하면 현재의 가격 격차도 빠르게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 본주 매수세가 유입되면 본주 가격이 상승하고 미국 시장에서 ADR 매도 물량이 늘어나면 ADR 가격은 하락하면서 양 시장의 가격이 일정 수준으로 수렴하기 때문이다. 상호전환 초기의 수급 개선 효과가 장기간 이어지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해외 사례도 단기 효과 그쳐…결국 실적·HBM 경쟁력이 관건
해외 주요 기업의 사례에서도 ADR 상호전환이 장기적인 주가 상승을 이끄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대표적으로 TSMC는 대만 본주와 미국 ADR 간 상호전환이 이뤄지고 있지만 장기적인 주가 흐름은 글로벌 반도체 업황과 실적 전망에 따라 움직였다.
TSMC 주가는 2022년 글로벌 반도체 경기 침체로 연간 약 27% 하락했다. 이후 AI 투자 확대와 첨단 반도체 수요 증가에 힘입어 2023년에는 약 37%, 2024년에는 약 81% 상승했다. ADR 프리미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주가 반등을 이끈 핵심 요인은 거래 구조 변화가 아니라 AI 반도체 수요 확대와 실적 개선이었다.
ADR 프리미엄이 존재한다고 해서 국내 본주 가격이 ADR 환산가격과 같은 수준까지 반드시 상승하는 것도 아니다. 미국 투자자의 접근성과 유동성, 거래시간, 환율, 세금, 지정학적 위험 등이 복합적으로 반영되면서 ADR에는 일정한 프리미엄이나 할인율이 유지될 수 있다. 상호전환은 양 시장 간 가격 괴리를 줄이는 역할을 하지만 구조적 차이까지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다.
학계에서도 비슷한 분석이 나온다. 국제금융학술지인 'Journal of International Financial Markets, Institutions and Money'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유럽 기업 250여곳의 미국 ADR 발행 사례를 분석한 결과, ADR 상장을 통한 투자자 접근성과 유동성 개선 효과는 확인됐다.
다만 장기적인 주가 성과에는 기업의 실적과 수익성, 재무구조 등 펀더멘털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 ADR 발행과 상호전환은 거래 환경을 개선할 수 있지만 그 자체를 기업가치를 지속적으로 끌어올리는 핵심 동력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국내 전문가들도 SK하이닉스 보통주와 ADR 간 상호전환이 단기적인 투자자 유입과 유동성 확대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인 주가 흐름을 바꿀 결정적 변수는 아니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통상적으로 보통주와 ADR 상호전환에 따른 차익거래 수요로 단기적인 주가 상승은 나타날 수 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실적과 산업 사이클, 투자심리가 다시 주가를 결정하게 된다"며 "상호전환은 양 시장 간 가격 괴리를 줄이고 유동성을 높이는 제도이긴 하나 기업의 수익성이나 성장성을 크게 바꾸는 요인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향후 SK하이닉스 주가를 결정할 핵심 요인으로는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에 따른 HBM 수요와 주요 고객사 공급 확대 여부, 차세대 HBM 제품의 양산 경쟁력,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 흐름 등이 꼽힌다. 글로벌 메모리 업황이 개선되고 HBM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유지하면 기업가치가 추가로 상승할 수 있지만 수요 둔화나 공급 경쟁이 심화할 경우 상호전환에 따른 수급 효과만으로 주가를 지탱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이영원 흥국증권 수석연구위원은 "ADR 프리미엄은 결국 국내 본주의 가치와 기업의 펀더멘털을 기반으로 형성되는 만큼 장기적인 주가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는 실적과 성장성, 업황 변화다"며 "상호전환은 양 시장 간 가격 괴리를 줄이고 거래 편의성을 높이는 제도적 장치일 뿐 그 자체가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상호전환 자체를 투자 판단의 근거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향후 실적과 HBM 경쟁력, 메모리 업황 등 본질적인 기업가치를 중심으로 투자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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