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통상환경 변화와 인공지능(AI)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국내 6대 그룹이 하반기 투자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반도체와 AI, 미래차, 방산, 친환경 소재 등 미래 성장동력을 중심으로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면서 국내 산업 전반에도 새로운 변화가 예고된다. 기업들의 투자 확대가 경기 회복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을지, 아니면 불확실성에 대비한 '선별적 생존 투자'에 그칠지는 하반기 한국 경제를 가늠할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재계에서는 올해 하반기를 단순한 실적 경쟁이 아닌 미래 산업 주도권을 결정짓는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재명 정부가 AI와 반도체, 첨단 제조업을 국가 성장전략의 핵심 축으로 제시한 가운데 민간 대기업들의 투자 계획 역시 정부 정책과 맞물리며 산업 경쟁력 강화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달라지는 투자…'확장'보다 '선택과 집중'
과거 대기업들이 경기 호황기에 생산시설 확대에 집중했다면 최근 투자 기조는 확연히 달라졌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 중국 경기 둔화, 지정학적 리스크가 장기화되면서 모든 분야에 투자하기보다 수익성과 성장성이 높은 미래 산업으로 자금이 집중되는 모습이다.
실제로 국내 주요 그룹의 투자 계획을 살펴보면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차세대 모빌리티, 에너지 전환, 방산 등 국가 전략산업에 역량을 집중하는 공통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단기 실적 개선보다 향후 10년을 대비한 경쟁력 확보 차원의 전략적 투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경제계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정부의 첨단산업 육성 정책과 맞물릴 경우 민간 투자 확대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 기술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지만, 규제 개선과 전력·인력 공급 등 투자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기대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AI 반도체 초격차 회복에 사활거는 삼성
삼성전자는 하반기 투자의 중심축을 AI 반도체 경쟁력 강화에 두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차세대 메모리와 첨단 파운드리 공정 경쟁력을 높이는 데 역량을 집중하는 한편, AI 서버와 데이터센터 시장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연구개발 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반도체 사업은 삼성전자 전체 실적을 좌우하는 핵심 축인 만큼 하반기에는 수익성 회복과 기술 경쟁력 확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AI 시장 확대가 지속될 경우 메모리 중심의 수익 구조 개선이 가능하지만, 글로벌 경쟁이 한층 치열해진 만큼 기술 우위를 얼마나 빠르게 확보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의 투자 전략은 단순히 반도체 생산능력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AI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플랫폼 경쟁으로 영역을 확대하면서 장기 성장 기반을 구축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평가다.
SK, AI 생태계 확대와 에너지 사업 재편 '투트랙'
SK그룹 역시 AI를 그룹 전체의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SK하이닉스는 HBM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첨단 메모리 생산능력 확대와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하고 있으며, AI 데이터센터와 관련한 사업 영역도 넓혀가고 있다.
동시에 그룹 차원에서는 배터리와 에너지, 소재 사업의 구조조정을 병행하며 선택과 집중 전략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수익성이 낮은 사업은 과감히 재편하는 대신 AI와 반도체, 에너지 솔루션 등 미래 성장성이 높은 분야에 자원을 집중하는 방식이다.
재계에서는 SK의 하반기 전략을 'AI 투자 확대와 사업 체질 개선을 동시에 추진하는 구조개편'으로 평가한다. 단순한 외형 성장보다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질적 성장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의미다.
현대차, '완성차' 넘어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전동화·소프트웨어 투자 가속
현대자동차그룹은 하반기 전략의 중심을 미래 모빌리티 경쟁력 강화에 두고 있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모델 확대는 물론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자율주행 기술, 차세대 배터리 등 미래차 생태계 전반에 대한 투자를 이어가며 글로벌 시장 주도권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친환경차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현대차는 단순한 생산량 확대보다 기술 경쟁력과 현지 생산체제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 현지 생산 기반 확대와 공급망 안정화 전략은 관세와 통상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동시에 글로벌 판매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 과제로 꼽힌다.
자동차 산업이 내연기관 중심 제조업에서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이 결합된 첨단산업으로 빠르게 전환되는 만큼 현대차의 투자 역시 '자동차를 만드는 기업'에서 '모빌리티 플랫폼 기업'으로 체질을 바꾸는 과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투자 키워드는 '생산 확대' 아닌 '기술 주도권'
삼성과 SK, 현대차의 투자 방향을 종합하면 공통된 흐름이 나타난다. 과거처럼 공장 증설과 생산능력 확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AI와 첨단 반도체, 미래차, 데이터센터, 차세대 에너지 등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기술 투자 비중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글로벌 산업 질서가 기술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기술 발전과 미국·중국 간 기술 패권 경쟁, 공급망 재편 등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단기 실적보다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생존의 조건이 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들은 "AI 시대에는 투자 속도가 곧 경쟁력"이라며 "기술 개발을 늦추는 순간 시장 주도권을 잃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 대기업들의 선제적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정부 산업정책과 민간투자, 시너지 낼 수 있을까
이 같은 투자 확대는 정부가 추진하는 첨단산업 육성 정책과도 맞닿아 있다. 정부는 반도체와 AI, 미래차, 바이오, 방산 등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며, 민간 투자 확대를 위한 세제 지원과 규제 개선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산업계에서는 기업 투자만으로는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첨단산업은 대규모 전력 공급과 우수 인재 확보, 신속한 인허가, 연구개발 지원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하는 만큼 정부와 기업 간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필요한 전력 인프라와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 미래차 관련 규제 정비는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과제로 꼽힌다. 투자 계획이 실제 생산과 고용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산업 기반을 뒷받침할 정책적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하반기 투자 성패가 한국 경제의 분수령
하반기 6대 그룹의 투자 전략은 개별 기업의 성장 여부를 넘어 한국 경제의 향방과도 직결될 가능성이 크다. 국내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확대는 협력업체와 지역경제, 고용시장에도 적지 않은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글로벌 경기 둔화와 통상환경 변화, 금리와 환율 변동성 등 대외 불확실성은 여전히 부담 요인으로 남아 있다. 투자 확대가 계획대로 진행되더라도 실제 수익성과 산업 경쟁력으로 연결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만큼 시장의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얼마나 좁힐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재계는 올해 하반기를 단순한 실적 경쟁의 시기가 아니라 향후 10년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전략적 전환기로 보고 있다. AI와 첨단 제조업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의 과감한 투자가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집중된다.
□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하편에서는 LG·포스코·한화의 투자 전략과 함께 대기업 투자 확대가 국내 산업 생태계와 일자리, 지역경제에 미칠 영향, 그리고 한국 경제가 넘어야 할 과제를 심층적으로 살펴본다.
[폴리뉴스 정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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