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D가 ATI 테크놀로지스(ATI Technologies)를 인수한 지 20년을 맞았다. 당시 54억 달러 규모의 인수는 무리한 승부수라는 평가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AMD를 CPU 전문 기업에서 CPU와 GPU를 모두 보유한 종합 컴퓨팅 기업으로 탈바꿈시킨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AMD는 2006년 7월 24일 ATI를 약 54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ATI는 엔비디아와 함께 세계 GPU 시장을 양분하던 대표 기업이었다. AMD는 ATI 인수를 통해 라데온(Radeon) 브랜드와 GPU 설계 기술, 그래픽 아키텍처 개발 역량을 확보하게 됐다.
ATI 브랜드는 2010년 시장에서 사라졌지만, 핵심 기술은 이후 모든 라데온 그래픽카드의 기반이 됐다.
ATI 인수로 AMD는 제품 전략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했다. CPU와 GPU를 하나의 칩으로 통합하는 APU(Accelerated Processing Unit)가 등장한 것도 ATI 인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APU는 CPU와 내장 그래픽을 하나의 프로세서에 통합한 구조로, 별도의 외장 그래픽카드 없이도 일정 수준 이상의 그래픽 성능을 제공한다. 라이젠(Ryzen)과 라데온 그래픽 기술을 결합한 다양한 APU 제품군도 그렇게 추가되면서 내장 그래픽 시장에서 두각을 보일 수 있었다.
게이밍 시장에서도 ATI 인수 효과가 컸다.
라데온 그래픽카드는 지난 20년 동안 엔비디아 지포스(GeForce)와 경쟁하며 AMD GPU 사업의 핵심이 축으로 자리 잡았다. 시장 점유율만 보면 엔비디아가 우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AMD는 가격 대비 성능을 앞세운 경쟁 전략으로 꾸준히 경쟁 구도를 형성해 왔다.
하지만 콘솔 시장에서는 라데온의 성과가 도드라진다. AMD의 세미 커스텀(Semi-Custom) 사업은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과 엑스박스(Xbox)의 핵심 프로세서를 공급하는 기반이 됐다. CPU와 GPU를 하나의 SoC(System on Chip)로 통합한 AMD의 설계 역량은 콘솔 플랫폼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으며, 다양한 휴대용 게임기에도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AI 사업에서도 ATI 인수의 의미가 더욱 커지고 있다. AMD의 데이터센터 AI 가속기 '인스팅트(Instinct)' 시리즈 역시 ATI가 축적한 GPU 기술을 기반으로 발전했다. Instinct는 고성능 컴퓨팅(HPC)과 생성형 AI 학습, 추론을 위한 GPU 가속기로, 현재 엔비디아 중심의 AI 데이터센터 시장에 대응하는 AMD의 핵심 사업으로 성장했다.
AMD는 최근 MI300과 MI350 시리즈를 출시한 데 이어 차세대 MI400과 MI500 로드맵도 공개하며 AI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CPU와 GPU를 넘어 HBM, 네트워크, AI 소프트웨어 플랫폼(ROCm), 랙 단위 AI 시스템까지 통합하는 전략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관련 전문가들은 ATI 인수가 단순히 그래픽 사업을 확보한 거래가 아니라 현재 AMD의 모든 핵심 사업을 가능하게 한 결정이었다고 평가한다. APU와 콘솔 SoC, 라데온 GPU, Instinct AI 가속기까지 모두 ATI가 보유했던 그래픽 기술과 아키텍처 개발 역량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AI 시대에 GPU가 반도체 산업의 중심으로 떠오른 현재, 20년 전 AMD의 ATI 인수는 결과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반도체 인수합병 사례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