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의 월드컵이 실패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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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의 월드컵이 실패한 이유

에스콰이어 2026-07-25 13:00:00 신고

이 글에서 홍명보 한국 감독과 모리야스 하지메 일본 감독의 2026 북중미 월드컵은 어떻게 달랐는지 살펴볼 것이다. 시작하기에 앞서 반드시 전제해야 하는 사실이 있다. 일본인들이 보기에 모리야스는 명장이 아니다. 심지어 평균 이하라고 생각하는 일본인들도 많다. 일본 대표팀의 스타 수비수였던 다나카 툴리오는 월드컵 직전 “이런 명단을 내놓은 모리야스는 벌을 받지 않는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체면을 중시하는 일본 문화와 달리 대표팀 선수들은 유럽물을 먹고 좀 더 자유분방한 편인데, 감독 전술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더 공격적이고 주도적인 축구를 할 수 있는 스쿼드(squad)로 선수비 후역습만 반복한다는 게 불만의 골자다.

특히 득점력 갖춘 공격자원이면서 대표팀만 오면 측면 수비수로 기용되는 도안 리츠가 죽어라 측면 수비에 가담한 뒤 불만을 털어놓곤 한다. 이런 불만은 북중미 월드컵 이후에도 다시 불거졌다. 일본은 조별 리그에서 네덜란드를 오히려 밀어붙이는 등 선전한 끝에 1승 2무로 32강에 진출했다. 그런데 토너먼트 첫 단계에서 불운하게도 브라질을 만났고, 선제골을 넣고 잘 싸웠으나 경기 후반 두들겨 맞다가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이때도 너무 일찍 수비 모드로 전환한 모리야스의 선택이 비판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모리야스를 비판할 때 근거로 드는 답답한 전술, 아시안컵 우승 실패 등은 한국이 보기에 배부른 소리다. 일본은 최근 세 차례 월드컵에서 모두 토너먼트에 진출하면서 매번 한국보다 좋은 성적을 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한국이 ‘트릭 논란’과 같은 한심한 과정으로 조별 리그 탈락을 겪을 때도 일본은 비록 공 돌리기 논란이 있긴 했으나 16강에 도달했다. 2022년 카타르 대회부터 모리야스가 일본을 지휘했고, 파울루 벤투의 한국과 나란히 16강에 갔다. 한국이 포르투갈을 꺾고 극적으로 생존하는 과정도 물론 멋졌지만 일본이 스페인, 독일과 한 조에 편성됐으면서 둘 다 꺾어버린 건 비교를 불허하는 성과였다.

16강에서는 크로아티아와 승부차기 끝에 떨어졌으니 공식 기록으로는 무승부. 최악의 대진 속에서 유럽 강호 3팀을 상대로 2승 1무를 거둔 것이다. 이번 북중미 대회에서 일본의 성적표는 만족스럽지 못했으나 바닥을 본 한국에 비하면 대성공이다. 본선 참가국이 48팀으로 늘어 훨씬 수월한 조별 리그였지만, 한국은 경우의 수를 4일 동안이나 따지는 치욕 끝에 32강 진출에 실패했다. 여기에 한국의 행운과 일본의 불운까지 감안한다면 경쟁력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한국은 손흥민 등 핵심 스타들이 건강한 상태에서 대회에 임했으며 이동 거리, 고지대 적응 기회 등 모든 면에서 엄청난 행운이 따랐다. 반면 일본은 미토마 가오루 등 주요 선수들이 대거 부상당한 가운데서도 한국보다 나은 성적을 냈다.

두 팀의 성적 격차는 어디에서 왔을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건 감독의 전술이다. 국가대표 감독은 풋볼 클럽 팀 감독과는 달리 선수를 영입할 수 없다. 아주 드물게 귀화 선수를 데려오는 경우는 있지만, 대한민국 국민인 선수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결국 이들의 기량을 극대화하는 게 전술의 조건이다. 일본의 경우 특정 에이스에 의존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선수들의 평균 기량이 고루 올라와 있다. 그래서 교체 카드를 적극적으로 쓰면서 전·후반 운영을 다르게 하고, 기동력으로 강팀을 흔드는 쪽으로 방향성을 잡았다. 감독이 의도적으로 만든 건 아니지만 카타르 월드컵에서 독일 상대 교체 카드가 대성공하자 이를 놓치지 않고 팀 컬러로 정착시켰다. 공식은 이번 대회로 이어졌는데, 네덜란드를 상대로 경기 막판 교체 투입한 오가와 고키가 동점 골을 어시스트했다.

반면 한국은 선수단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지 못했다. 손흥민, 이강인, 황인범, 김민재로 이어지는 4인방은 세계 어느 나라와 견줘도 손색없지만 이들의 장점에 맞는 경기 템포(tempo)도, 동료 조합도 없었다. 한국도 일본처럼 우발적 발견으로 팀을 강화할 기회가 있었다. 이번 월드컵 첫 경기에서 황인범이 1골 1도움을 올리며 체코를 잡아냈기에, 앞으로도 황인범의 공간 침투를 주요 공격 전술로 쓸 만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의 전진은 이후 두 경기에서 오히려 줄어들었다. 가장 눈에 띄었던 이강인도 경기가 반복될수록 보기에는 좋지만 전술적으로는 의미가 없는 플레이를 하는 데 그쳤다.

감독의 역량이란 대회 중 전술에서 그치지 않는다.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일본축구협회와 모리야스의 계획성은 홍명보와 대한축구협회의 주먹구구식과 큰 차이를 보였다. 대표팀을 오래 맡아 지도한다는 건 선수를 육성할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기본적으로 선수 성장은 본인과 소속 구단이 알아서 하는 것이지만, 축구협회 차원에서 대표 선수 한두 명을 집중 육성하는 것도 가능하다.

일본의 경우 전통적으로 약점인 포지션이 골키퍼와 스트라이커였다. 과거 최용수, 김도훈, 황선홍 등 스트라이커와 최근 김승규 등 골키퍼가 유독 일본 리그에서 맹활약한 것도 그래서다. 스트라이커를 키우겠다고 다짐한 모리야스는 2019년 당시 대학생이었던 우에다 아야세를 국가대표팀에 선발 출장시키며 파격 대우했다. 골키퍼 스즈키 자이온은 2023 아시안컵에서 역대 최악 수준의 실수를 연발하며 조기 탈락의 원흉이 됐는데도 비난을 감싸주며 계속 대표팀 주전 자리를 맡겼다. 이처럼 전폭적 신뢰를 보냈더니, 마치 게임 캐릭터가 경험치를 축적하고 능력치가 오르듯 두 선수는 급성장했다. 우에다는 네덜란드 1부 득점왕으로 성장했고, 이번 월드컵에서 2골을 기록했다. 스즈키는 이탈리아 1부 파르마의 주전 골키퍼로서 아시아 역대 최고 골키퍼의 길을 걷고 있다. 이처럼 축구협회 차원에서 팀의 약점을 보완하는 건 수년에 걸친 중장기 프로젝트로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대한축구협회는 육성해야 할 유망주가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대표팀의 약점을 파악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시야를 아예 선수단 밖으로 넓혀 보자. 거기에도 감독이 할 일은 있다. 모리야스는 조별 리그 3차전 전날 축구 팬들이 모인 텍사스 팬 파크를 찾아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과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승리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길이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왔습니다.” 경기에 집중하지 않고 팬에게 아양 떠는 행위가 아니라, 엄연히 승리에 도움 되는 행위라는 걸 분명히 했다. 월드컵을 보는 사람들은 다들 느낀다. 성적은 선수단 능력의 총합과 비례하지 않는다. 무형의 응집력 같은 것이 작용할 때 상상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게 월드컵이라는 대회다.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나 루카 모드리치(크로아티아) 같은 영웅이 있을 경우 그를 중심으로 뭉치기 마련이다. 이런 선수를 갖지 못한 축구협회라면 직접 정신적 지향점과 구심점을 만들어 가면 된다.

일본축구협회는 ‘재팬즈 웨이(Japan's Way)’라는 이름의 축구 발전 프로젝트를 세우고 58페이지 분량의 영문 PPT로 누구든 열람할 수 있게 공개해 뒀는데, 평범한 일본인들의 ‘즐기는 축구’부터 프로와 대표팀의 ‘경쟁력 있는 축구’를 아우르는 두 경로를 모두 달성하며 월드컵 우승까지 나아간다는 원대한 목표가 담겨 있다. 한국인은 곧잘 ‘일본의 목표는 월드컵 우승’이라는 문장을 비웃곤 하지만 그건 이번 대회의 근시안적인 목표가 아니라 일본의 비전이고 꿈이다. 반면 한국은 오로지 경기력과 신체적 컨디션에만 몰두하며 선수들의 대외 활동은커녕 가족과의 접촉조차 제한했다. 정신적으로 지칠 만했다. 한국 선수들의 집중력이 경기를 거듭할수록 떨어진 건 오히려 너무 지엽말단적인 목표에 함몰됐기 때문이라는 게 내 가설이다.

결국 홍명보가 한 나라를 대표하는 감독으로서 얼마나 미흡했는지는 단순히 ‘남아공 상대로 이재성을 쓰지 않은 이유가 뭐냐’ 또는 ‘스리백을 고집한 이유가 뭐냐’ 같은 눈에 보이는 질문에서 끝나지 않는다. 물론 그 질문도 중요한 축이지만, 나머지 두 가지 질문은 대표팀 발전 전략의 부재, 그리고 축구협회와 아울러 지나치게 좁았던 시야를 향한다. 조금 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보자. 옌스 카스트로프(Jens Castrop)는 독일 청소년 대표 출신으로, 몇 년 더 성장하면 독일인으로서 월드컵에 나갈 수도 있는 재능의 소유자지만 어머니의 나라 한국을 택했다. 이런 옌스의 스토리는 한국 선수들에게서 희미해지고 있던 국가대표의 의미를 되살릴 수 있었다. 또한 이번 월드컵이 이민자의 땅 북미에서 열리기 때문에 디아스포라(diaspora)가 대회를 관통하는 화두였는데, 옌스에 대한 고민은 멕시코 교민들과의 교류, 애니깽으로 유명한 그들의 비극적 과거, 대표팀 캠프에서 멀지 않았던 안창호 선생의 옛 거처 등으로 의미 부여를 넓혀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월드컵은 하나의 거대한 콘텐츠여야 하지만 홍명보의 접근법은 ‘결과를 내기만 하면 여론은 바뀐다’는 한탕주의였다. 결과에 집착하면 오히려 결과를 내지 못한다는 게 그의 역설이다.

월드컵을 1년 앞두고 홍명보와 모리야스는 직접 만나 대담을 나눴다. 선수 시절 맞대결한 데 이어 라이벌 국가의 수장으로서 나란히 월드컵에 나가게 된 인연이 대화의 소재였다. 서로에 대한 덕담이 훈훈했다. 그러나 월드컵이 지나간 지금 그들의 처지는 대조적이다. 모리야스는 환영 행사 속에서 일본에 돌아왔고, 홍명보는 “꺼져”라는 붉은악마의 외침을 들으며 입국해야 했다. 홍명보가 기자 회견을 하지 않고 숨은 가운데, 오히려 모리야스가 기자 회견에서 “홍 감독을 비롯한 선수들도 나라를 위해 노력했으니 칭찬도 좀 해 달라”며 그를 두둔했다. 일본은 이토록 여유가 있다. 잔칫집과 초상집이 되어 버린 월드컵 이후 풍경은 단순한 감독 됨됨이 차이를 넘어 두 나라 축구 현실의 차이를 보여 준다.


김정용은 축구 전문 매체 '풋볼리스트'의 취재팀장이다. 축구에 대한 책 〈프란체스코 토티〉 〈데이비드 베컴〉 등을 썼다. 유로, 월드컵, 클럽월드컵, AFC와 UEFA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현장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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