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순매수 규모가 5개월 만에 최대 수준으로 늘었다. 원·달러 환율 하락으로 미국 주식의 매수 부담이 줄어든 데다 최근 코스피가 큰 폭으로 출렁이면서 투자자들이 다시 해외 증시로 눈을 돌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다만 자금 대부분이 미국 반도체 관련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와 미국에 상장된 국내 반도체 종목에 집중되면서 분산투자보다 단기 수익을 노린 고위험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주식 순매수 4조4천억원…2월 이후 최대
23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22일까지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순매수액은 29억7,545만달러, 우리 돈으로 약 4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월 이후 5개월 만에 가장 큰 규모다. 이달 들어서는 3거래일을 제외한 대부분 거래일에서 매수 우위가 이어졌다.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거래는 코스피 급등과 국내시장복귀계좌 출시 등의 영향으로 지난 4~5월 순매도 흐름을 보였지만, 지난달부터 다시 순매수로 전환됐다.
환율 하락에 미국 주식 매수 부담 완화
미국 주식 매수세가 다시 강해진 배경으로는 원·달러 환율 하락이 꼽힌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2일 종가 기준 1,555.8원까지 오르며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지만, 23일 오후 3시30분 기준 1,466.8원까지 내려왔다.
환율이 약 90원 하락하면서 원화 기준 미국 주식 매수 비용도 줄어든 셈이다.
여기에 최근 국내 증시에서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급등락이 반복되고 코스피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상대적으로 미국 시장을 선택한 투자자가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투자 자금이 일부 고위험 상품에 지나치게 집중됐다는 점이다.
이달 국내 투자자가 가장 많이 순매수한 미국 주식은 미국 반도체지수의 일일 수익률을 3배로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 SOXL이었다.
순매수액은 22억8,774만달러, 약 3조4,000억원으로 이달 전체 미국 주식 순매수액의 약 77%를 차지했다.
지난 10일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는 6억1,591만달러, 약 9,000억원으로 순매수 2위에 올랐다.
한국 증시 수익률을 3배로 추종하는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 KORU는 2억2,420만달러로 3위를 기록했다. 나스닥100지수를 각각 2배와 3배로 추종하는 QLD와 TQQQ도 순매수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달에는 스페이스X와 마이크론, 메모리 관련 상장지수펀드, 마벨 테크놀로지 등 개별 기술주와 특정 산업에 투자하는 상품이 순매수 상위권을 차지했다.
반면 이달에는 반도체와 나스닥지수의 하루 수익률을 2~3배로 추종하는 레버리지 상품으로 투자 중심이 빠르게 이동했다.
레버리지 상품은 상승장에서 수익을 크게 낼 수 있지만, 하락 시 손실도 같은 배율로 확대된다. 변동성이 큰 장세에서는 장기간 보유할수록 기초지수의 누적 수익률과 실제 상품 수익률 사이의 차이가 커질 수 있다.
시장에서는 미국 주식 순매수 증가를 자산 분산의 결과라기보다 단기 반등을 노린 고위험 투자 확대 흐름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금융당국의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규제 강화가 해외 투자 증가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금융당국은 최근 국내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에 대한 기본예탁금을 높이고 투자자 보호 장치를 강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국내 상품의 투자 조건이 까다로워지자 상대적으로 거래 제약이 적은 미국 상장 레버리지 상품으로 수요가 이동하는 이른바 '풍선효과'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국내 상품만 규제를 강화하면 투자 수요가 해외 고위험 상품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있다"며 "투자자 보호와 함께 시장의 자율적인 조정 기능을 살리는 접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향후 환율과 국내 증시 흐름, 금융당국의 레버리지 규제 방향에 따라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매수세가 지속될지가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폴리뉴스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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