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관 위탁 콜센터 상담사들이 살해 협박과 폭언에 노출됐지만 보호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셔터스톡
"칼 들고 찾아가겠다"는 민원인 살해 협박에 돌아온 회사의 대처는 고작 "문단속 잘하라"였다.
정부 기관의 이름을 걸고 국민을 상대하는 콜센터 상담사들이 무방비 상태로 폭언과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매뉴얼은 존재하지만 현장에서는 작동하지 않았고,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관리자는 오히려 가해자 편에 섰다.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유승민 작가의 취재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와 국세청이 위탁 운영하는 콜센터 상담사들이 일상적인 언어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 내 번호 차단했냐" 2차 가해에도 대책은 '문단속'
사건의 발단은 중소벤처기업부 콜센터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였다.
민원인은 상담사에게 칼을 들고 찾아가겠다는 살해 협박을 가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상담사가 상부에 상황을 보고했지만, 위탁업체 측은 사내 공지로 "문단속을 잘하라"는 황당한 지시를 내렸다.
사태를 파악한 원청 중소벤처기업부가 해당 민원인의 전화번호 수신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했다. 피해를 입은 중기부 콜센터 상담사는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공포를 생생히 증언했다.
> "번호를 차단해서 기분이 나빴는지 다른 번호로 전화가 또 인입됐어요. '왜 자기 번호 차단했냐' 이러면서 또 저희를 괴롭혔죠." (중소벤처기업부 콜센터 상담사)
누를 수 없는 '인권 버튼'⋯관리자는 "왜 끊었냐" 질책
정부 기관 콜센터에는 폭언 발생 시 상담사를 보호하기 위한 매뉴얼이 존재한다.
1차적으로 구두 경고를 하고, 폭언이 반복될 경우 이른바 '인권 버튼(폭언 등으로부터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상담사가 통화를 강제 종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눌러 전화를 끊고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달랐다. 상담사들은 폭언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실시간으로 통화를 듣는 관리자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폭언을 감내해야 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어렵게 버튼을 누른 후의 상황이다. 국세청 콜센터 상담사는 원색적인 욕설을 듣고 통화를 종료했다가 오히려 소속 팀 관리자에게 질책을 받았다.
> "상담 도중 고객이 욕설과 고성을 퍼부어 ‘계속 소리를 지르시면 상담이 어렵다’고 안내했는데, 오히려 ‘내가 어디 가서 이렇게 화를 내겠느냐’며 더 크게 소리쳤습니다. 결국 통화를 종료했지만, 이후 관리자는 ‘예전에는 더 심한 욕도 들었는데 왜 그 정도로 전화를 끊었느냐’며 오히려 저를 질책했습니다. 민원인 대응도 버거운데, 같은 편이어야 할 조직 내부에서까지 문제 삼으니 정신적으로 크게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국세청 콜센터 상담사)
진화하는 민원인의 괴롭힘도 문제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고객응대 근로자 보호 조치 멘트가 송출된 이후, 노골적인 욕설은 줄었으나 교묘한 조롱이 늘었다.
유승민 작가는 "욕을 안 하고 혼자 한 말인 척하거나 '제대로 배운 게 맞냐'는 식의 지능화된 폭언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근무 환경 속에서 상담사들은 스스로를 책망하며 우울증 약에 기대어 버티고 있다. 한 상담사는 "어쩔 수 없이 불안이랑 우울 약을 먹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약에 의존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정부 기관의 '사용자성' 인정⋯책임 회피 불가능해져
그동안 공공기관 콜센터 상당수는 민간 업체에 위탁 운영을 맡겨왔다. 문제가 발생하면 원청인 정부 기관은 하청업체 일이라며 선을 긋기 일쑤였다. 하지만 법적 환경이 변하고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 등은 중소벤처기업부와 국세청 같은 원청 정부 기관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추세다. 이는 콜센터 상담사를 보호할 최종적인 법적 책임이 위탁업체가 아닌 정부 기관에 있다는 의미다.
유승민 작가는 "중기부와 국세청 같은 경우 원청으로서 사용자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앞으로는 보호할 책임이 있는 것"이라며 "정부 기관의 이름으로 국민을 만나는 상담사를 보호하는 일은 선택이 아닌 책임이고 의무"라고 강조했다.
콜센터 상담사는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법에 명시된 노동자 인권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원청인 정부 기관의 철저한 관리 감독과 매뉴얼의 실효성 확보가 시급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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