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강성곤의 아름다운 우리말…'읽는 말'과 '하는 말'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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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강성곤의 아름다운 우리말…'읽는 말'과 '하는 말'의 차이

연합뉴스 2026-07-24 09:56:1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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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문화체육관광부 집계 기준 2025년 K-콘텐츠 수출액은 149억 달러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이제 K-콘텐츠와 K-컬처는 언어와 국경을 넘어 지구촌 곳곳에서 실시간으로 향유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강성곤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강성곤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본인 제공]

'말하기'를 '스피치'로 부르기도 한다. '스피치'라고 명명한 말하기는 연설이나 담화처럼 자기 생각과 견해를 여러 사람 앞에서 밝히는 '공적 말하기'로 보면 되겠다. '화법(話法)'이라는 말도 쓰이지만, 이는 말 그대로 '말하는' 방법이어서 기술과 예절에 무게가 실린다. 이 둘을 아울러 여기서는 '말하기'로 뭉뚱그린다.

◇ 표현하지 못하면 없는 것이 된다

우리는 말하기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빛을 발하는 시대에 산다. 아이디어가 아무리 뛰어나고 생각이 아무리 창의적이어도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헛일이다. 직장을 예로 들어보자. 예전에는 보고서·기획안·제안서를 들고 윗사람에게 조용히 보고하거나 문서를 돌려 보는 것으로 끝났다. 요즘은 대부분 파워포인트 작업에 발표(프레젠테이션)까지 마쳐야 일이 끝난다.

어느 회사에서든 '발표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는 곧 경쟁력 있는 사원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취업 현장도 마찬가지다. 필기시험 성적과 이른바 '스펙'이 아무리 훌륭해도, 끝내는 자기 생각과 주장과 느낌을 말로 풀어내는 면접의 관문을 통과해야 합격의 축배를 들 수 있다.

기분 좋은 사례도 있다.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결정했다. 그날 나승연·김연아의 빼어난 발표가 없었다면 과연 유치할 수 있었을까. 말하기의 힘은 이제 결정적 순간의 '마지막 한 방'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훈장 받은 김연아·나승연 훈장 받은 김연아·나승연

(평창=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17일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용평돔경기장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개최 범국민 다짐대회에서 김연아 전 유치위 홍보대사(오른쪽)와 나승연 전 대변인이 각각 국민훈장 모란장과 체육훈장 맹호장을 목에 걸고 있다. 2012.1.17 zjin@yna.co.kr

말하기의 요체는 우선 읽기와 구분 짓는 데 있다. 둘이 가장 크게 갈리는 지점은 바로 '텍스트의 있고 없음'이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읽기로 착각하고 읽기처럼 하는 것이 문제다. 원고를 힐끔힐끔 보면서 최대한 말하듯 하는 것을 말하기로 혼동한다. 말하기의 틀이 아니라 글로 굳어진 문장을 말하는 형식만 빌려 전달하는 것은 말하기가 아니다. 원고를 보지 않더라도 외워서 읊는 것을 말하기로 쳐서도 안 된다.

말할 때 늘 염두에 둘 것은 "무엇을, 누구에게 말하다"라는 짜임이다. 말하는 행위 자체가 내용과 더불어 반드시 상대를 전제로 한다는 뜻이다. 말하기는 '말'로 연습해야 실력이 는다. 무언가를 적는 순간 말하기와는 멀어진다. 물론 무엇을 말할지 정리하는 단계에서 메모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메모는 메모로 끝내야지 원고가 되어서는 안 된다. 메모를 바탕으로 이렇게도 말해보고 저렇게도 말해보다가 마침내 원고 없이 말할 수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말하기다.

그러니 말하기는 큰 줄기는 대동소이하되 그것을 감싸고 꾸미는 형식(形式)과 수사(修辭)는 달라질 수 있다. 처음에는 이 과정이 몹시 고통스럽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말하다 보면 보태야 할 대목이 생기고, 빼는 편이 나을 부분도 드러난다. 좋다고 여겼던 표현보다 최근에 접한 새 표현이 더 근사해 자꾸 고치게 된다. 그러나 바로 이 일련의 과정이야말로 말하는 능력이 자라는 징후다. 이것이 몸에 배면 어느새 말하기 자체가 좋아지고, 말하기의 근육이 단단해지며, 체급이 오른다.

◇ 형식이 마음을 움직인다

한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이 있다. 냉정히 따지면 내용이 그토록 신선하고 놀라웠는지는 의문이다. 굳이 성공의 이유를 찾자면 '공감'과 '진정성'이라는 화두로 접근 방식을 새롭게 한 데 있을 것이다.

사실 '긍정적인 사고가 인생을 바꾼다', '꿈과 희망은 삶의 추동력이다', '실패를 모르면 성공할 수 없다' 같은 말은 다 좋은 말이지만 진부하기도 하다. 이런 것을 영어권에서는 'TBU'(True but Useless)라고 한다. 맞는 말이긴 한데 쓸모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 가느냐에 따라 가슴에 와닿을 수도, 하염없이 지루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형식의 힘이다.

어떤 틀을 갖추고 어떤 흐름과 방식으로 주제를 이끌어 갈 것인가. 이것이 관건이다. 여성이 남성에게서 반지를 선물 받는다고 하자. 남성 A는 18K 반지를 검푸른 우단 상자에 담긴 그대로 가져왔다. 남성 B는 14K짜리지만 포장을 새로 하고 예쁜 카드에 사랑의 글귀를 적어 작은 가방에 넣어 왔다. 누가 이길지는 명약관화하다. 남성 B다.

내용이 중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지만, 다가가는 방법이 설득적이어야 통하는 시대다. 알맹이와 메시지 전달로만 끝나서는 안 되고, 그것을 담는 형식과 결이 세련되고 근사해야 통한다. 그래야 사람의 마음이 움직인다.

비언어 표현, 흔히 몸짓언어(보디랭귀지)라 일컫는 것에는 몸짓·손짓·표정·눈길·동선(動線)은 물론 넓게는 화장·옷차림·머리 모양·장신구까지 들어간다. 어찌 보면 서양인과 동양인을 가르는 가장 도드라진 대목이기도 하다. 서양인이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말과 몸짓으로 확실히 드러내지만, 동양인은 역사·문화·사회적으로 오랫동안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비례(非禮)로 여기고 말로 표현하는 것마저 삼갔던 것과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일단 말하기의 영역에 들어선 이상 감추고 숨기는 것은 더는 미덕이 아니다. 몸 전체를 써서 자신의 주장과 생각을 밝히고 상대의 반응을 끌어내야 한다. 무표정한 얼굴, 움직임 없는 자세, 그저 그런 분위기의 말하기를 청중은 사절한다.

비언어 표현에 왕도는 없다. 자신에게 맞는 몸짓·눈빛·표정을 만들고 익히는 수밖에 없다. 비언어 표현을 써야 한다는 당위에 자신의 말하기를 억지로 맞추면 그것도 어색하다.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몸짓과 표정과 눈빛이 곧 자기 것이다. 이를 가리켜 '매력 자본'이라 부른다. 자신의 매력 자본을 쉼 없이 다듬고 키우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 일이다.

◇ 듣는 이가 달라지면 말도 달라져야

말하기는 상대에 따라 다가가는 방법이 달라야 함은 물론이다. 나이와 계층, 직업에 따라 내용과 결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핵심은 화자(話者)가 그만큼의 전문성과 능력, 융통성과 순발력을 갖추었는가, 그리고 청중이 과연 예상대로 그 변화에 긍정적으로 반응할 것인가에 있다. 마구 떠드는 학생들, 졸 각오를 하고 앉은 수련생들, 까칠하게 노려보는 참가자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어내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스트레스 연구의 권위자인 오스트리아 태생 의학자 한스 셀리에(1907∼1982)는 저서 '삶의 스트레스'(The Stress of Life)에서 스트레스란 내가 어찌할 수 없다는 절망에서 비롯된다고 짚었다. 아예 듣기를 포기한 청소년들, 의무감과 연수 점수에 떠밀려 억지로 앉아 있는 공무원들은 어쩌면 듣고 싶지 않아도 안 들을 수 없는 '절망적 스트레스'에 놓인 무리다.

이들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일까. 배려와 열정, 동질감과 동기 부여로 요약된다.

그러므로 화자는 끝까지 참고 웃음을 잃지 않는 배려 위에, 기어이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열정과 의지, 나와 상대가 다르지 않다는 동지 의식, 반드시 무언가 이룰 수 있다는 용기를 얹어 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피부에 와닿는 사례와 예화, 상대의 귀가 솔깃할 정보와 관심사, 참여를 이끄는 적극성과 자신을 낮추는 자세가 따라야 한다. 중고생이 상대라면 유행어·연예인·인기곡·밈과 '짤'을 정리해 머리에 넣어 두고, 공무원이라면 근무 평가와 승진 사례를, 언론사 준비생이라면 최근 채용 정보와 합격 수기를 챙겨 단단히 무장한 채 말하기에 뛰어들어야 한다.

말 잘하는 사람을 뜯어보면 대개 설득과 감동, 유머라는 세 가지를 갖추고 있다. 설득은 머리를, 감동은 가슴을, 유머는 그 둘 사이의 빗장을 연다. 셋 가운데 어느 하나도 원고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직 사람에게서, 그리고 그 사람이 고르고 벼려 온 우리말에서 나온다.

강성곤 현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 전 KBS 아나운서 ▲ 전 정부언론공동외래어심의위원회 위원 ▲ 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 위원 ▲ 전 건국대·숙명여대·중앙대·한양대 겸임교수 ▲ 현 가천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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