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콰이어 에디터의 세차동호회 '세벙' 취재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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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콰이어 에디터의 세차동호회 '세벙' 취재기 [2]

에스콰이어 2026-07-24 08:00:07 신고

각자 선호하는 사용감에 맞도록 세차장의 고압건 노즐과 교체해 사용하는 숏 랜스. 세차 애호가들은 온갖 장비로 자신을 표현하고, 개조하며, 유용하기만 하다면 다른 분야의 물건들도 폭넓게 활용한다.

각자 선호하는 사용감에 맞도록 세차장의 고압건 노즐과 교체해 사용하는 숏 랜스. 세차 애호가들은 온갖 장비로 자신을 표현하고, 개조하며, 유용하기만 하다면 다른 분야의 물건들도 폭넓게 활용한다.

여기까지는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지금까지의 이야기와 상충하는 구석이 있어 보이는 ‘세차 동호회’의 존재다. 세차가 그렇게 ‘동적인 명상에 침잠해 자기 내면을 어루만질 수 있는 행위’이며 ‘자동차라는 자신의 투영체와 소통하는 과정’이라면 왜 그걸 약속을 정하고 한자리에 모여 다 같이 하는 걸까? “옛날로 치면 자동차가 ‘애마’ 같은 개념이니까, 다 함께 강가에서 자기 말을 씻기는 회합처럼 그것만의 풍류가 있는 거 아닐까요?” 이 기사의 주제에 대해 말했을 때 누군가가 돌려준 추측이었다. “굳이 카페에 가서 작업을 하는 것과 비슷한 거죠. 완전히 혼자일 때보다 적당한 거리감을 가진 사회 속에 있을 때 집중이 더 잘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또 다른 누군가의 추측이었다. “다 자기 기술과 장비를 자랑하려고 하는 거죠. 동호회 활동이라는 게 분야 막론하고 십중팔구 그런 거잖아요.” 솔직히, 마지막 맥락의 추측이 가장 많았다. 다만 이런 답을 돌려준 이들 누구도 세차 동호회의 ‘세벙(세차 번개 모임)’에 참가해본 적은 없었다고 했으니 전부 추측일 뿐이었다.

6만 6000여 명의 회원을 가진 세차 동호회 ‘디테일링 포럼’에서 활동하는 ‘태이’의 설명은 심플했다. “교류하는 거죠. 모여서 수다 떨고, 간간이 서로 돕기도 하고, 새로 산 외부 코팅제가 있으면 ‘야 너 한번 발라봐’ ‘어때’ ‘나는 별로야’ 이렇게 한 번씩 서로의 방식이나 제품을 시도해 보기도 하고요.” 그에게는 ‘태이’ 외에도 ‘매세남(매일 세차하는 남자)’이라는 별명이 붙어 다니는데, 한 해에 200회가 넘게 세차하고 꼬박꼬박 ‘세차일지’를 만들어 올리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활동에도 성실히 임하는 편이라 몇 해 전 디테일링 포럼에서 매해 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왕’에 뽑힌 적도 있다. 6월 22일 의정부 워시존 EV 스테이션에서 열린 세벙에서도 역시나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월요일 저녁이며 스콜 같은 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진 날이었는데도. 함께 세벙을 하려면 일단 지역이 가까워야 하고, ‘세차하기 좋은 날’이라는 기준이 맞아야 한다. “그건 사람마다 다 다르거든요. 어떤 사람은 맑은 날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또 비 오기 전에 하고 싶어 하고. 보통은 주말을 선호하죠. ‘금야세’ ‘일조세’라고 하는데, 금요일 저녁이나 일요일 아침에 오셨다면 회원이 열댓 명은 됐을 거예요.” 그날 모인 여섯 명의 회원은 세차라면 언제든 환영하는 ‘골수 세차 환자’에 속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폴리셔로 앞유리의 유막을 제거하는 과정.

폴리셔로 앞유리의 유막을 제거하는 과정.

셀프 세차장의 베이(bay)는 보통 독서실 같은 구조로 조성되어 있다. 실제로 독서실 같은 효과를 내기도 한다. 칸칸이 모두가 자신의 작업에 몰두해 있으니 저절로 집중이 된다. 세벙을 하면 식사라도 한 끼 하고 헤어지는 게 정석이니 암묵적으로 ‘몇 시간 안에 끝내야 한다’는 시간제한도 생긴다. 저마다의 세차 방식과 프로세스를 갖고 있지만, 혹여라도 누를 끼치지 않도록 모두가 부단히 작업에 매진하는 분위기가 저절로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독서실과 다른 점은, 누군가 잘 안 풀리는 문제를 붙들고 있다면 협력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다 함께 한 차에 달라붙어 미트질하거나 물기를 제거하거나 코팅한다. 협력뿐만 아니라 시시때때로 수다의 장이 열리기도 한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자면 뭐랄까, 꼭 〈동물의 숲〉 같은 게임 속 주민들 같다. 수다의 주제? 물론 다른 게 없다. 각자의 차와 장비다. 오늘 어디를 중점적으로 할 것인지, 어떤 새로운 장비를 들였는지, 어떤 차가 ‘맛있어’ 보이는지 얘기를 나누는 것이다. “요 앞에 주차되어 있는 현대 PV5 봤어요? 진짜 맛있어 보이던데.” ‘네온등’이 미처 에스콰이어 포토그래퍼의 차인 줄 모르고 군침을 삼키며 세차장 앞의 차를 언급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세차 환자의 차는 언제든 깨끗한 상태일 확률이 높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건 세차에서 얻을 수 있는 쾌감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은 더러운 차를 보면 감탄하고 입맛을 다신다. ‘맛있겠다’며. 물론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차를 본인이 대신 세차하게 해달라고 조른다거나 하는 일은 흔히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분야의 마니아들은 늘 상상을 초월하므로 ‘흔히’라는 단서를 붙인다.) 세차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나 새로운 소재를 위해 그런 부탁을 할지는 모르겠다. 특히나 ‘디테일링 포럼’ 같은 동호회는 남의 차를 대신 닦아주지는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에스콰이어의 촬영 날, 자신의 차를 방치하고 수다 삼매경에 빠진 네온등을 보며 혀를 차던 태이가 대신 그의 차를 씻어주기는 했는데, 아무튼 원칙은 그렇다. “아무리 초심자라고 해도 세차를 대신 해줄 수는 없어요. 훨씬 깨끗한 세차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그 차의 주인은 성취감과 세차의 즐거움을 얻을 수가 없잖아요. 필요하다면 잘 가르쳐드릴 수 있고 잘 안 되는 게 있다면 도와드릴 수도 있지만 누가 대신 해줘서는 안 돼요.” ‘쏘세지’의 설명이다.

세차 동호회 회원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세차에 몰두하지만, 힘든 작업이나 오래 걸리는 작업이 있으면 다 함께 붙어서 돕기도 한다.

세차 동호회 회원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세차에 몰두하지만, 힘든 작업이나 오래 걸리는 작업이 있으면 다 함께 붙어서 돕기도 한다.

세차 초심자의 경우에는 동호회 활동을 해야 할 이유가 명확하다. 의욕은 넘치고 지식은 없는 성인 남성 둘이서 세차하겠답시고 화장실 스펀지와 세제로 차를 망가뜨리는 일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구와 세제만 잘 고른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카 샴푸 및 프리워시 세제의 권장 희석 비율은 제조사가 찾은 ‘차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오염을 제거할 수 있는 최적의 농도’이기에 가급적 세심하게 따르는 게 좋고, 아무리 좋은 워시미트를 써도 차에서 달라붙은 오염물이 기스를 낼 수 있기 때문에 그릿가드에 자주 문질러 떼어줘야 한다. 단계 단계 이런 세세한 부분을 배우려면 아무래도 유튜브를 보며 따라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일단은 셀프 세차라는 게 혼자 시작해 정착하기는 어려운 취미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동안 기계 세차를 해온 차라면 기스가 엄청나게 나 있거든요. 한번 해보면 셀프 세차가 엄청난 육체노동인데, 사실 아무리 열심히 닦고 왁스를 발라도 그렇게 기스가 많은 상태에서는 희열을 느낄 수가 없어요. 광택 작업이 들어가야 하는 거죠. 그래서 동호회에서는 새로 오신 분이 있다, 그러면 보통 날 잡아서 여럿이서 작업을 한번 싹 해요. 그래야 ‘맛’을 볼 수가 있으니까.” 태이의 설명이다.

쏘세지는 세차 동호회가 ‘건전’하기로 유명한 이유 중 하나 역시 고강도 노동에 있을 거라고 설명했다. “만에 하나 여성 회원에게 수작 걸려고 들어온 분이 있다고 해도, 한번 해보면 알게 되거든요. 세차 한 번 하고 나면 그럴 힘이 남지 않는다는 걸.” 세차를 마친 차를 다시 운전해서 돌아가야 하니 술을 자주 마시지 않는다는 점도 있다. 한 번씩 날 잡고 회식을 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식사 정도를 함께하고 해산한다. 별명을 쓰는 특유의 문화도 한몫했을 것이고… 아니, 그냥 전부 다 됐고, 사실 이런 의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실제로 세차 동호회 회원들은 ‘왜 댁들의 모임은 건전할까요’라는 질문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동호회 활동 3년 차인 여성 회원 ‘띠띠’ 역시 지금껏 한 번도 부적절한 접근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냥 저한테 관심이 없어요. 제가 쓰는 제품에만 관심이 있죠.” 한동안 온라인에서 밈으로 떠돌았던 온라인 익명 고민 글이 있다. 한 여인이 ‘남편이 세차 동호회에 나가는데 모임이 너무 잦아 혹시 딴짓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하는 글을 남겼고, 거기에 현직 불륜 탐정이 댓글을 남긴 것이다. “수많은 모임에서 불륜을 잡았지만 세차 모임은 없었습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띠띠 역시 그 밈을 알고 있다고 했다. 직접 댓글도 몇 번 남겼다고 했다.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고. “여자 회원이 들어오면 다들 도와주려고 하는 분위기는 있죠. 근데 그것도 그냥 응원에 가까운 마음인 거예요. 워낙 힘이 많이 드는 취미다 보니까 여자 회원이 많지 않고 금방 떠나가는데, 하다 보면 재미있거든요. 그래서 저도 여성 회원이 들어오면 무작정 잘해주고 싶고요.” 여성 회원에게 관심이 쏟아질 수는 있지만, 그건 추근거림이라기보다 ‘뉴비 하나 들어오면 혹시라도 금방 떠날까 봐 여기저기 달고 다니며 경험치와 아이템 먹여주는 망겜 고인 물’의 마음에 가깝다는 얘기다.

다양한 제품을 돌려 써보고 새로운 소식을 접할 수 있다는 건 ‘고인 물’들에게도 큰 장점이다. 다만 솔직히 말해서, 베테랑들에게는 초심자에게만큼 동호회 활동이 메리트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피곤할 일이 많다면 모를까. 쏘세지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 많은 회원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동호회를 떠나기도 한다. 배울 것 다 배우고 써볼 것 다 써봤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혼자서 세차를 하는 사람도 많다는 뜻이다. 물론 베테랑이 된 후에도 계속 동호회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또 나름의 이유가 있다. 네온등은 ‘누군가를 인도해 줄 수 있는 뿌듯함’을 언급했고, 쏘세지는 ‘자신을 성장시켜 준 커뮤니티에 대한 감사와 애정’을 말했다.

가장 의미심장한 답은 구장이가 들려준 것이었다. 올해로 25년째 디테일링을 하고 있는 그는 ‘1세대’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아예 디테일링 문화라는 게 생기기도 전에 이런 취미를 시작한 인물이다. 접점과 니즈가 만들어지기 어려웠던 타이밍 때문인지 그는 지금껏 세차 동호회 활동을 별로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지금도 특정 단체에 속하기보다는 자신을 찾는 다양한 곳을 다니며 디테일링 기술을 전파하는 야인처럼 활동하고 있다. 그런 그가 인터뷰의 말미에, 자신의 취미를 지속해 준 것이 ‘사람들과의 교류’였다는 얘기를 내놓은 것이다. “오늘 기자님과 제가 처음 알게 되고 세차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지만, 이 대화 안에서도 만들어지는 게 있잖아요. 제 경우에는 세차를 배우고 싶다고 멀리서도 찾아오는 분들이 좀 계시거든요. 그러면 저는 힘닿는 데까지 도와드려요. 세차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 그 안에서는 사람마다 매번 새롭게 쌓이는 친밀감과 신뢰도와 교감이 있어요. 같은 질문도 매번 새롭고, 세차를 마쳤을 때의 뿌듯함이나 저 자신에 대한 리플렉스(reflex,성찰)도 항상 새롭고. 그런 게 없었다면 질렸을 수 있겠죠. 25년 동안 매번 똑같이 제 차만 닦았다면, 분명 지금과 같은 의미의 취미는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촬영날 ‘띠띠’는 본인 차의 광택 작업이 불만족스러웠다며, 3시간의 세벙이 끝난 밤 9시에 추가로 세차를 더 하고 돌아갔다.

촬영날 ‘띠띠’는 본인 차의 광택 작업이 불만족스러웠다며, 3시간의 세벙이 끝난 밤 9시에 추가로 세차를 더 하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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