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차를 1년에 200번 넘게 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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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차를 1년에 200번 넘게 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 [1]

에스콰이어 2026-07-24 08:00:04 신고

용인 카페 식스에서 최근 새롭게 조성한 셀프 세차 공간. 그릿모터테인먼트 이창우 대표가 기획한 곳인 만큼, 공간 활용의 ‘가성비’보다는 셀프 세차의 즐거움과 매력에 방점을 두고 조성되었다.

용인 카페 식스에서 최근 새롭게 조성한 셀프 세차 공간. 그릿모터테인먼트 이창우 대표가 기획한 곳인 만큼, 공간 활용의 ‘가성비’보다는 셀프 세차의 즐거움과 매력에 방점을 두고 조성되었다.

몇 해 전 여름 조지아를 여행했을 때의 일이다. 일행과 나는 지프 한 대를 렌트해 일주일 동안 시그나기, 텔라비, 카즈베기까지 조지아 동부의 대자연을 떠돌았고, 여행의 막바지 어느 아침에 일어나보니 일행이 지프에 비누칠을 하고 있었다. 렌트 계약 사항에는 없는 일이었으나 그냥 반납하면 된다고 해도 일행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동안 수고했다는 마음을 제가 그냥 표현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누구에게? 바로 차에게. 운송수단(그것도 내 소유도 아닌 운송수단)에 그런 마음을 품어본 적이 없는 내게는 그의 말이 퍽 기이하게 들렸지만 이내 함께 세차를 하기 시작했다. 체크아웃까지 딱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인데, 지금에 와서는 동유럽 한적한 교외 마을에서 둘이 함께 차를 닦았던 그 순간이 아름답게 포장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일행에게도 분명 ‘함께’였다는 게 세차라는 행위에 또 한 층의 의미를 더했을 테다.

이 에피소드를 듣는 반응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첫째로는 “세상에 참 별사람 다 있다”며 혀를 차는 반응. 둘째로는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반응.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되짚는 반응. “그럼 세차를 어떤 도구로 하신 거예요?” 사실 우리는 그냥 숙소 화장실 창고에 있던 스펀지와 세제로 차를 닦았다. 그리고 그런 답을 돌려주면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대체로 경악했다. 그들에게 그건 차를 닦는 게 아니라, 오히려 손상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바로 이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을 다룬다. 세차라는 행위에 집착과 고도의 전문성을 갖게 된 사람들. 그 행위에 매료되어 생판 모르는 남의 차까지 세차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스펀지로 차를 닦았다고 하면 때수건으로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는 얘기라도 들은 것처럼 몸서리를 치는 사람들. 속칭 ‘세차 환자’들이다.

차량에 프리워시를 도포하고 오염물을 불리는 동안 담소를 나누는 디테일링 포럼 회원들.

차량에 프리워시를 도포하고 오염물을 불리는 동안 담소를 나누는 디테일링 포럼 회원들.

셀프 세차 입문은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추는 데만도 비용이 많이 든다. ‘쏘세지’는 한 번에 전부 구매하지 말고 동호회에서 다른 이들의 방식을 보며 하나씩 천천히 갖춰갈 것을 권한다.

셀프 세차 입문은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추는 데만도 비용이 많이 든다. ‘쏘세지’는 한 번에 전부 구매하지 말고 동호회에서 다른 이들의 방식을 보며 하나씩 천천히 갖춰갈 것을 권한다.

차 전체에 새하얀 거품을 도포하고 강한 물줄기로 한 줄 한 줄 반짝반짝하게 만드는 장면에는 큰 힘이 있다. 그런 장면은 문외한에게도 시각적 쾌감을 전달한다. 다만 이들에게 그런 식의 세차는 고작해야 애벌빨래 정도의 단계에 해당하는 ‘프리워시’다. 세차 환자들이 하는 세차는 그냥 세차가 아니라 ‘디테일링’이라고 부른다. 가장 큰 차이는, 단순한 세척을 넘어 부품 교체나 판금 없이 차를 신차 수준으로 복원하고 유지하고자 하는 수준의 욕망을 품는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휠과 차체에 박힌 철분과 타르를 제거하고, 도장 면의 미세 흠집을 없애며, 코팅까지 하는 복잡다단한 과정이 따라붙는다. 구부려 앉아 작은 붓으로 휠의 틈새 하나하나를 훔치는 모습만 해도 일반인의 눈에는 ‘광기’로 비치겠으나 디테일링의 세계에서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한번 시작하면 6시간이 넘도록 세차에 매진하는 이들도 있고, 일주일에 서너 번 세차장을 들락거리는 이들도 있으며, 세차용품에 수천만 원의 비용을 투자하는 이들도 있다. 세차 환자 커뮤니티에서 비가 오는 날 세차하는 사람(미리 세차하면 비를 맞아도 땟국물이 흐르지 않기 때문에 의외로 효용이 높다고 한다)이나 눈이 오는 날 세차하는 사람(내게 이 얘기를 들려준 사람은 눈 속에서 특정 세차용품이 얼마나 버티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다고 한다)은 예사다.

청소하며 스트레스를 푼다거나 가구를 재배치하면서 희열을 느낀다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청소란 스스로에게 통제감, 성취감을 안겨주고 가벼운 육체 활동을 동반하며, 정돈된 환경에서 생활하게끔 하는 다채로운 긍정적 효과를 가진 행위니 따지고 보면 이해 못 할 심리도 아니다. 세차에서 이 효과는 좀 더 직관적이다. “세차하다 보면 스트레스와 잡생각이 날아가요. 광택 과정이 특히 그렇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인데, 스크래치를 지우고자 하는 마음이 다른 무엇보다 크다 보니까 다른 모든 건 다 사라지거든요. 불안장애, PTSD, 우울증이 좀 심하신 분이 저한테 세차를 배우러 오신 적이 있는데, 그분은 실제로 세차를 통해서 많이 호전되었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도 힘들었던 시기를 세차로 견뎌낸 경험이 있었고요.” ‘구장이’(세차 커뮤니티에는 별명으로 활동하는 문화가 있으며, 구장이는 ‘낭만 디테일러’라고도 불린다)의 설명이다.

디테일링 포럼 수도권의 구심점인 회원 ‘태이’. 1년에 200일 이상 세차를 한다고 하여 ‘매세남’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디테일링 포럼 수도권의 구심점인 회원 ‘태이’. 1년에 200일 이상 세차를 한다고 하여 ‘매세남’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세차 동호회의 ‘세벙’에서 가장 먼저 배울 수 있는 것은 차는 빡빡 닦는 게 아니라 섬세하게 다뤄야 하는 물건이라는 기본 태도다.

세차 동호회의 ‘세벙’에서 가장 먼저 배울 수 있는 것은 차는 빡빡 닦는 게 아니라 섬세하게 다뤄야 하는 물건이라는 기본 태도다.

차량의 표면은 보통 여러 층의 도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철판 위에 색이 잘 붙도록 하는 프라이머와 차량 색상인 베이스 코트가 있고, 그 위에 클리어 코트가 있다. 클리어 코트는 간단히 말해 색상을 보호해 주는 투명 코팅인데, 이 클리어 코트의 자잘한 스크래치 때문에 빛의 난반사가 일어나고 결국 표면을 아무리 깨끗이 닦아도 매끈해 보일 수가 없게 된다. ‘광택’은 이 클리어 코트를 균일하게 해주는 작업을 말한다. 거친 세상 속에서 미세하고도 무수한 상처를 입은 차가 새 차처럼 반짝반짝하게 변신하는 마법이 이 과정에 숨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새롭게 태어나는 물건이 다른 무엇도 아닌 ‘자동차’라는 점 역시 중요하다. 왜 사람들은 집 치우기나 거리 청소 영상에는 큰 관심이 없지만 남의 세차 과정은 영상까지 챙겨 보며 대리만족을 할까? 그런 질문을 던졌을 때 23만 구독자를 가진 세차 유튜버 ‘샤인프릭’은 이렇게 말했다. “일단은 눈에 보이는 변화가 확연하잖아요. 범주가 딱 집중하기 좋기도 하고, 다양한 세차용품을 사용하는 재미도 있고. 무엇보다 자동차가 주는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도로 위에서 자신의 존재를 투영하게 되기도 하고, 차 좋아하는 분들은 굉장히 소중한 장난감으로 여기기도 하잖아요. 예를 들어 남자가 구두를 성심성의껏 관리하는 영상을 보면 그냥 단장과는 다른 의미가 깃드는 것처럼, 좀 남다른 투영의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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