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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태 주알제리대사] 한국과 알제리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문명의 시간으로 보면 결코 낯선 사이가 아니다. 유라시아를 가로지른 실크로드는 지중해와 사하라의 교역로와 만나 두 대륙을 하나의 문명 네트워크로 이어왔다. 그 서쪽 끝에 알제리가, 동쪽 끝에 한반도가 있다. 올해는 한국이 아프리카 국가 중 유일하게 알제리와 맺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 20주년으로 단순한 기념을 넘어 다음 20년을 새롭게 설계할 계기다.
알제리는 우리가 생각해온 것보다 훨씬 깊고 넓은 나라다. 북쪽의 푸른 지중해와 남쪽의 붉은 사하라를 품고 영토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크다. 프랑스,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를 다 합해도 알제리의 76% 정도에 불과하다. 기원전 페니키아 인들의 교역 거점, 토착 누미디아 왕국, 로마 제국의 거점 도시들, 7세기 이슬람의 도래와 오스만의 시대, 132년의 프랑스 식민 지배와 자력으로 쟁취한 독립까지 여러 문명이 겹겹이 쌓인 이 나라는 풍부한 자원을 지니고도 정치적으로 안정된 흔치 않은 아프리카의 대국이다.
오늘의 알제리를 다시 보게 하는 이유는 에너지와 지정학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사태 이후 유럽이 에너지 공급망을 재편하면서 알제리의 위상은 빠르게 높아졌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천연가스의 3분의 1 안팎을 알제리에서 공급받고 그 비중은 계속 커지는 추세다. 유럽연합 전체로도 두 번째 규모의 파이프라인 가스 공급원이다. 한국에도 석유화학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의 주요 공급원이자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는 원유의 대체 공급선으로 경제안보 가치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알제리를 우리의 필요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전략적 가치는 숫자로 계산할 수 있지만 지속 가능한 관계는 마음이 이어질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알제리는 가혹한 식민 지배를 견디고 치열한 독립전쟁 끝에 스스로 주권을 되찾은 국가적 자존심이 매우 강한 나라다. 일제강점기의 상처를 지닌 한국이라면 이 감정을 남의 역사로만 볼 수 없다. 단기 이익을 따지는 관점이나 기술·경제적 우위에 선 시혜적 태도가 아니라 먼저 존중하고 경청하는 자세로 다가갈 때 두 나라는 식민과 독립, 가난과 개발이라는 공통의 경험 위에서 깊은 공감대를 만들 수 있다.
알제리는 이제 유럽의 남쪽 변방이 아니라 지중해와 아프리카를 잇는 중심으로 서고자 한다. 지도를 알제리 중심으로 돌려보면 지중해 건너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가 둘러싸고 남쪽으로는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펼쳐진다. 알제리는 사헬 지역의 테러와 불안에 맞서 북아프리카의 안정을 지켜온 안보의 축이기도 하다. 미국이 군사협력 양해각서를 맺고 전략적 협력을 확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첨단 방위산업을 일궈온 한국의 경험은 자주국방을 중시하는 알제리에 또 하나의 협력 지평이 될 수 있다. 알제리가 추진하는 재생에너지, 담수화, 스마트 농업, 디지털 전환, 제조업 육성에서도 한국은 가장 실질적인 파트너가 될 수 있고 한국은 알제리를 통해 지중해와 아프리카를 함께 바라보는 전략적 시야도 얻을 수 있다.
전략적 동반자 관계 20주년이 과거의 기념에 그치지 않으려면 서로의 역사와 자존심, 주권과 전략적 자율성을 존중하는 토대 위에서 다음 20년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서울과 알제리가 가까워질수록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알제리는 지중해와 아프리카에서 평화와 번영의 길을 함께 넓혀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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