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172분… 놀란이 빚어낸 시네마틱 대서사 '오디세이'[봤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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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172분… 놀란이 빚어낸 시네마틱 대서사 '오디세이'[봤어영]

이데일리 2026-07-23 23:34:1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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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윤기백 기자] 크리스토퍼 놀란은 또 한 번 극장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증명했다. 영화 ‘오디세이’는 기대를 충족하는 수준을 넘어, 그 기대 자체를 다시 써 내려간다. 디지털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대체할 수 없는 필름의 질감, 컴퓨터그래픽(CG)만으로는 흉내낼 수 없는 자연의 압도적인 물성 그리고 이를 극장이라는 공간 안에서 온몸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시네마의 힘이 스크린 위에 펼쳐진다. 소문난 잔치가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사람에게 권해야 할 잔치상이다.

영화 '오디세이' 포스터.(사진=유니버설픽쳐스)
영화 '오디세이' 포스터.(사진=유니버설픽쳐스)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 오디세우스(맷 데이먼)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 10년에 걸친 귀향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영화는 단순한 모험담에 머물지 않는다. 귀향길에서 신과 괴물, 거센 폭풍을 마주하는 오디세우스의 여정과 사라진 아버지를 찾아 나선 아들 텔레마코스가 왕국을 위협하는 구혼자들에 맞서는 이야기가 병행되며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완성한다.

놀란은 회상과 현재를 넘나드는 구조를 통해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한다.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를 배치하는 서사 방식은 자칫 복잡해질 수 있지만, 그는 이를 치밀한 편집과 리듬으로 엮어낸다. 관객은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단 한순간도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다. 익숙한 신화를 새로운 블록버스터 문법으로 재탄생시킨 연출력은 놀란이 왜 동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평가받는지를 다시금 증명한다.

무엇보다 압권은 ‘체험’이다. 영화를 보고 있다는 감각보다 오디세우스와 함께 항해하고 있다는 감각이 먼저 찾아온다. 아이맥스 필름 카메라가 담아낸 광활한 바다와 절벽, 거대한 전투는 단순히 ‘보는’ 화면이 아니라 관객을 공간 안으로 밀어 넣는 경험을 만든다. 어느 순간에는 트로이 목마 안에 몸을 숨긴 병사가 되고, 어느 순간에는 그의 배에서 함께 노를 젓는 선원이 된다. 마지막 이타카 전투에서는 카메라 밖에서 바라보는 관객이 아니라, 그 공간 한편에 서 있는 목격자가 된다. 놀란은 카메라 밖에 있던 관객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인다.

트로이의 해변부터 키클롭스의 동굴, 칼립소와 키르케가 머무는 신비로운 섬, 라이스트뤼고네스족의 땅 그리고 이타카에 이르기까지 원작 속 공간들은 장엄한 스케일로 되살아난다. 광활한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또 하나의 등장인물처럼 기능하며 영화의 압도적인 질감을 완성한다.

귀를 사로잡는 음악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루드비히 예란손은 아울로스와 리라 등 고대 악기를 적극 활용해 시대의 질감을 소리로 복원했다. 기존 시대극 음악의 익숙한 문법에서 벗어나, 마치 수천 년 전 서사시를 직접 듣는 듯한 독창적인 음향 세계를 구축했다. ‘오디세이’는 눈으로만 감상하는 영화가 아니라 귀로도 완성되는 작품이다.

영화 ‘오디세이’ 포스터.(사진=유니버설픽쳐스)
영화 ‘오디세이’ 포스터.(사진=유니버설픽쳐스)


원작을 접하지 않은 관객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는 점 역시 장점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읽지 않았더라도 서사는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놀란은 방대한 신화를 현대 관객의 언어로 풀어내면서도 원작이 지닌 철학은 놓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영웅담의 해체다. 그는 승리보다 전쟁이 남긴 상처와 인간성의 붕괴를 응시하며, 마지막 오디세우스의 참회와 “인간은 서로의 신뢰를 깨버렸다”는 한마디로 수천 년 전 고전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이유를 설득력 있게 증명한다. 그가 “현대적인 블록버스터로는 한 번도 구현되지 않은 이 이야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힌 이유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배우들의 연기도 흠잡을 데 없다. 맷 데이먼은 오랜 표류 끝에 지친 영웅의 육체와 내면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며 영화 전체를 묵직하게 이끈다. 특히 페넬로페와 재회하는 순간의 절제된 표정 연기, 망자가 된 전우들과 마주하는 장면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감정을 응축한 명장면으로 남는다.

앤 해서웨이는 20년 동안 왕국과 가족을 홀로 지켜낸 페넬로페의 강인함과 절제를 품위 있게 그려냈고, 로버트 패틴슨은 왕위를 노리는 안티노오스를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완성하며 이타카 서사의 긴장감을 책임진다. 샤를리즈 테론이 연기한 칼립소는 신비와 유혹, 슬픔을 동시에 품어낸 대체 불가능한 캐릭터였으며, 젠데이아의 아테나와 루피타 뇽의 헬레네·클리타임네스트라 역시 캐스팅을 둘러싼 논란을 잊게 만들 만큼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엘리엇 페이지 역시 왜 놀란이 그를 선택했는지 납득할 만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다만 아쉬움도 있다. 텔레마코스를 연기한 톰 홀랜드는 소년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하려 애쓰지만, ‘스파이더맨’ 이미지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어 몰입을 방해하는 순간이 적지 않다. 또한 172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은 분명 부담스럽다. 서사의 밀도는 끝까지 유지되지만, 관객에게 잠시 숨을 고를 여유를 주는 인터미션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오디세이’는 끝내 시계를 바라보게 만드는 영화가 아니다. 긴 시간조차 하나의 항해처럼 받아들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영화가 끝난 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단 하나다. 상영 전 화장실은 꼭 다녀와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길 잘했다는 확신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연출. 러닝타임 172분. 8월 5일 개봉. 쿠키영상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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