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반딧불이·야시장·밤바다...어둠이 열어준 또 다른 미식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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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밥상' 반딧불이·야시장·밤바다...어둠이 열어준 또 다른 미식의 세계

뉴스컬처 2026-07-23 17:21:28 신고

사진=한국인의 밥상
사진=한국인의 밥상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기록적인 더위가 이어지는 계절, 낮의 공기는 숨이 막힐 듯 무겁다. 해가 기울고 나서야 비로소 바람이 움직이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다시 바깥으로 향한다. 여름밤은 단순히 더위를 피하는 시간이 아니라, 낮 동안 멈춰 있던 일상이 다시 이어지는 시간이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풍경은 달라진다. 낮에는 보이지 않던 빛과 소리, 그리고 음식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강가와 골목, 바다 위와 마을 어귀에서 펼쳐지는 밤의 밥상은 각기 다른 기억을 품고 이어진다.

누군가에게 여름밤은 오래된 시간을 떠올리게 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금도 계속되는 삶의 현장이다. 그 모든 밤에는 음식이 있고, 사람의 온기가 있다. 그 온기는 하루를 견디게 하고 다음 날로 나아가게 한다.

■반딧불이 깜박이는 강가, 사라진 터전 위에 남은 기억

사진=한국인의 밥상
사진=한국인의 밥상

충북 옥천군 동이면 안터마을은 해가 지면 전혀 다른 분위기로 바뀐다. 불빛이 거의 없는 마을 주변 숲과 들판에는 반딧불이가 하나둘 빛을 켜며 여름밤을 채운다. 작은 불빛이 이어지며 만들어내는 풍경은 낮과 전혀 다른 인상을 남긴다.

대청호 상류의 맑은 물과 잘 보존된 자연환경은 반딧불이가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지켜왔다. 사람의 손길이 크게 닿지 않은 덕분에 이곳의 밤은 오랜 모습이 유지되고 있다.

과거 이 마을의 밤은 고된 노동으로 이어졌다. 산에서 칡넝쿨을 베어 와 삶고 껍질을 벗긴 뒤 실을 만들어 베를 짜는 일은 늦은 시간까지 계속됐다. 손끝이 저릴 정도의 작업이었지만 멈출 수 없는 일이었다.

사진=한국인의 밥상
사진=한국인의 밥상

일을 마친 뒤 사람들은 한자리에 모여 콩칼국수를 나눠 먹었다. 큰 솥에 끓여낸 국수는 허기를 채우는 동시에 서로를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이야기가 이어지고 웃음이 오가던 시간은 하루의 피로를 덜어냈다.

1980년 대청댐이 들어서면서 마을 일부는 물에 잠겼다. 익숙했던 집과 길이 사라졌지만, 남은 공간에서는 또 다른 시간이 이어졌다.

밤이 깊어지면 사람들은 강으로 나가 다슬기를 잡는다. 물안경을 쓰고 돌 사이를 더듬으며 건져 올린 다슬기는 여름철 중요한 먹거리다.

모깃불을 피워 놓고 다슬기를 손질한 뒤 국을 끓이고 장떡을 부쳐 먹는 시간은 지금도 이어진다. 사라진 공간 위에서 새로운 기억이 쌓이며 밤은 계속된다.

■불 꺼지지 않는 골목, 밤을 버티게 한 한 끼

사진=한국인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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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의 오래된 골목에는 수십 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온 작은 식당이 있다. 간판도 없이 이어진 이곳은 낮과 밤을 나눠 두 자매가 운영하며 하루를 이어간다.

1980년대 이 골목은 공장과 시장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던 곳이었다. 기계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사람들은 밤늦게까지 일을 이어갔다. 끼니를 챙길 시간조차 부족한 날들이 많았다.

이곳에서 내놓는 국수 한 그릇은 빠르게 허기를 채우는 음식이었다. 비빔국수와 잔치국수는 간단하지만 든든한 식사로 선택됐다. 짧은 식사 시간이었지만 몸을 다시 움직일 힘을 주기에 충분했다.

사진=한국인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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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마친 뒤에는 또 다른 모습이 펼쳐졌다. 노동자들이 모여 순대와 곱창, 두부김치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나눴다. 하루를 마친 뒤의 시간은 서로를 위로하는 자리였다. 특히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들에게 토스트는 오래 기억에 남은 음식이다. 고소한 빵과 달콤한 맛은 고된 하루 끝에서 얻는 작은 기쁨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공장은 사라졌지만 식당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다시 찾은 사람들은 음식을 통해 지나온 시간을 떠올린다. 그곳에서의 식사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한 그릇의 음식이 기억을 불러내며 감정을 건드린다.

■은빛 갈치가 오르는 바다, 밤 위에서 완성되는 식사

사진=한국인의 밥상
사진=한국인의 밥상

전남 여수의 밤바다는 수많은 불빛으로 채워진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마다 켜진 집어등이 주변을 밝히며 또 다른 풍경을 만든다.

빛을 따라 갈치 떼가 모여들고, 낚싯줄 끝에는 묵직한 감각이 전해진다. 물 밖으로 올라온 갈치는 은빛으로 반짝이며 살아 있는 바다의 기운을 보여준다.

사진=한국인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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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은 갈치는 바로 손질되어 식탁으로 이어진다. 신선한 재료가 주는 맛은 다른 어떤 요리와도 비교하기 어렵다. 매콤한 회무침과 따뜻한 국물 요리가 더해지면 식사는 더욱 풍성해진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나누는 식사는 색다른 경험으로 남는다.

바다 위에서 보내는 시간은 낮과 다른 리듬으로 이어진다. 주변의 소음이 사라지고 파도와 바람만이 느껴진다. 이 시간 동안 사람들은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를 느낀다. 짧지만 강하게 남는 기억이 만들어진다.

여름밤 바다에서의 식사는 자연과 함께하는 순간을 또렷하게 남긴다.

■횃불을 밝히는 밤바다, 이어지는 오래된 방식

사진=한국인의 밥상
사진=한국인의 밥상

경남 남해 창선면에서는 밤이 되면 횃불을 들고 바다로 나가는 작업이 이어진다. 낙지를 잡는 ‘홰바리’는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방식이다. 어둠 속에서 불빛 하나에 의지해 바다를 살피며 낙지를 건져 올리는 일은 경험이 필요하다. 손의 감각과 바다의 움직임을 읽는 능력이 중요하다.

과거에는 이 작업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밤바다에서 돌아온 뒤 이어지는 식사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었다.

갓 잡은 낙지를 넣은 라면과 연포탕은 간단하지만 깊은 맛을 낸다. 신선한 재료가 주는 만족감이 그대로 전해진다.

사진=한국인의 밥상
사진=한국인의 밥상

한동안 줄어들었던 이 방식은 최근 다시 이어지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전통을 지키며 새로운 방식으로 이어가고 있다. 이 과정은 공동체의 기억을 지키고,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일이다. 밤바다에서 이어지는 경험은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며 계속 확장되고 있다.

여름밤은 이렇게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는 시간이다. 사라진 줄 알았던 방식과 기억이 다시 살아나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또 다른 내일을 준비한다.

해가 지면 펼쳐지는 여름 밤의 밥상은 23일 저녁 7시 40분 방송되는 KBS1 '한국인의 밥상' 764회  '우리의 밤은 낮보다 눈부시다, 한여름 밤의 만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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