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한국GM 노사가 2026년 임금 및 단체협약(이하 임단협)에 대한 교섭 잠정합의안을 마련했다. 지난 5월27일 상견례 이후 17차례 교섭과 7월 중 이어진 부분파업 끝에 찾은 접점이다.
잠정합의안에는 기본급 9만2000원 인상과 타결 일시금 및 2025년 경영성과에 대한 성과급을 합해 1500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이 담겼다. 노조 조합원 찬반투표는 오는 27~28일 진행된다. 과반의 찬성을 얻어야 올해 임단협이 최종 타결된다.
중요한 대목은 역시 미래 생산계획이다. 노사가 후속 차종의 개발 사실을 확인하고, 최종 결정을 추진할 시한을 2027년 3분기로 잡았다. 지난 교섭 과정에서 노조가 가장 강하게 요구했던 미래 물량이 구체적인 프로젝트명과 시한을 갖고 잠정합의안에 들어왔다.
당초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는 올해 기본급 14만9600원 인상과 1인당 약 3000만원의 성과급을 요구했다. 최종 잠정합의안은 기본급과 일시금 모두 노조 요구보다 낮다. 노조는 임금 요구를 전부 관철하지 못했지만, 교섭을 장기화하는 대신 미래 차종 논의를 합의문에 남기는 선택을 했다.
한국GM 노조는 지난 15~16일 각각 4시간 부분파업을 벌였고, 20~22일에도 4시간씩 쟁의를 이어갔다. 22일 열린 17차 교섭에서 잠정합의안이 나오자 조합원 투표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 모든 쟁의행위를 중단했다.
인천 부평구 한국GM 부평공장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차량이 출고되고 있다. ⓒ 연합뉴스
합의의 실마리는 '9BXX-2'다. 노조 발표에 따르면 현재 생산 중인 9B 프로그램의 차세대 차종인 9BXX-2가 GM테크니컬센터코리아(GM Technical Center Korea, GMTCK)에서 글로벌 차량 개발 절차를 밟고 있는 사실이 교섭 과정에서 확인됐다.
노사는 후속 차종이 2027년 3분기 안에 최종 확정될 수 있도록 추진하기로 했다. 정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신차가 한국 공장에 배정됐다는 확약은 아니며, 해당 시점까지 최종 결정을 끌어내기 위해 협의를 이어가겠다는 내용이다.
GMTCK에서 9BXX-2 개발이 진행된다는 사실은 한국 연구개발 조직이 차세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는 근거다. GMTCK는 미국 본사에 이어 GM에서 두 번째로 큰 차량 개발 거점으로, 디자인과 엔지니어링부터 차량 검증과 생산기술까지 수행할 수 있다.
다만 현재 확정된 내용은 9BXX-2 프로그램의 존재와 GMTCK의 개발 참여, 2027년 3분기라는 결정 시한까지다. 개발 참여가 국내 생산 배정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생산 차종과 공장, 양산 시점은 앞으로 GM 본사의 글로벌 제품 배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현행 차종의 생산 기간은 한층 길어졌다. 공개된 합의 내용에는 2025년 임금교섭에서 확인한 대로 현재 차종 프로그램이 기존 계획상 2028년 이후에도 생산될 예정이라는 문구가 포함됐다. 당장의 생산 공백 우려는 낮아졌지만, 현행 차종의 수명 연장과 차세대 제품 배정은 서로 다른 사안이다.
한국GM 창원공장 전경. ⓒ 한국GM
GM은 지난해 12월과 올해 3월 두 차례에 걸쳐 한국사업장에 총 6억달러, 약 88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한국 생산 소형 SUV의 상품성 강화와 생산설비 현대화, 신규 프레스 설비 도입 등이 투자 대상이다. 2028년 이후 생산을 뒷받침할 설비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철수 우려를 낮추는 근거로 볼 수 있다.
당시 투자 발표에는 9BXX-2의 국내 생산 확정이 담기지 않았다. 기존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고 공장 효율을 개선하는 투자와 차세대 차종의 생산권을 확보하는 결정 사이에는 간격이 남아 있다. 이번 임단협은 그 간격을 좁히기 위한 시한을 합의문에 적은 셈이다.
한국GM이 미래 물량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현재 실적의 집중도에서 드러난다. 한국GM은 2025년 완성차 46만2310대를 판매했다. 트랙스 크로스오버가 30만8764대, 트레일블레이저가 15만3070대를 차지했다. 두 차종을 합치면 46만1834대로 연간 전체 판매량과 거의 일치한다.
수출 의존도가 높다. 지난해 전체 판매 가운데 수출은 44만7216대였고 내수는 1만5094대였다. 트랙스 크로스오버와 트레일블레이저의 글로벌 수요가 생산을 떠받치고 있지만, 두 차종에 판매와 공장 가동이 집중된 구조는 세대교체 시점마다 물량 공백 위험을 키운다.
현재 차종의 판매가 강할 때 차세대 프로젝트를 확정해야 하는 이유다. 판매가 꺾인 뒤 후속 차종을 논의하면 생산설비 투자와 부품 공급망 전환, 인력 운영 준비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2027년 3분기는 신차 결정 시점인 동시에 현행 차종에서 다음 세대로 생산을 연결하기 위한 관리 시한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한국GM 창원공장 임직원들과 미팅을 진행 중인 헥터 비자레알(Hector Villarreal) 사장의 모습. ⓒ 한국GM
산업은행과 GM의 2018년 경영정상화 합의도 이 시간표와 연결된다. 한국산업은행은 한국GM 지분 17.02%를 2028년 5월까지 유지할 방침이다. 지분 15% 이상을 전제로 행사할 수 있는 견제 장치가 유지되는 기간 안에 후속 차종의 방향을 정해야 노조와 지역사회가 요구하는 고용 안정 계획도 구체화될 수 있다.
한국GM 노사는 같은 잠정합의안을 두고 회사는 안정적인 사업 운영과 추가 투자 여건을 강조했고, 노조는 고용을 지탱할 미래 생산물량을 앞세웠다. 양측 설명이 향하는 곳은 다르지만 공통된 전제는 생산 안정성이 확보돼야 차세대 프로젝트 유치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점이다.
아시프 카트리(Asif Khatri) GM 해외사업부문 생산 총괄 부사장은 "올해 교섭의 마무리를 통해 안정적인 사업 운영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노사가 함께 책임 있는 노력을 이어감으로써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안규백 한국GM지부장은 "누구도 모든 쟁점을 완벽하게 해결했다고 만족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며 "이번 잠정합의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라고 강조했다.
두 발언은 이번 잠정합의의 한계를 함께 보여준다. 회사가 말하는 투자는 안정적인 생산과 경쟁력이 전제돼야 하고, 노조가 요구하는 고용 안정은 실제 신차 배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파업 중단과 임금 합의로 교섭장의 갈등은 낮아졌지만, 9BXX-2를 둘러싼 본사의 결정은 남아 있다.
조합원 투표에서 잠정합의안이 가결되면 올해 임단협은 마무리된다. 이후 노사가 확인해야 할 내용은 어느 공장에서 언제부터 후속 차종을 생산할지다. 2027년 3분기까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올해 합의한 시한은 다시 현장 불안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한국GM 노사가 확보한 성과는 신차 배정 자체보다 결정 시한이다. 미래 물량 논쟁은 프로젝트명과 날짜를 얻었다. 이제 GM 본사가 그 날짜 안에 한국 생산 여부에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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