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진입으로 뇌졸중과 파킨슨병, 치매 등 신경계질환의 부담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하지만 지역별 급성기 치료격차와 전문인력 부족, 해외 표준치료제의 국내 미도입 등 현행 치료체계는 늘어나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개별 질환 중심의 대응을 넘어 예방부터 급성기 치료, 장기관리와 일상복귀까지 이어지는 국가 차원의 뇌건강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한신경과학회는 오늘(22일) ‘2026 세계 뇌의 날(World Brain Day)’ 기념 기자간담회를 개최, 초고령사회에 대비한 뇌질환 치료체계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연자들은 생존율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환자가 독립적인 일상을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뇌건강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뇌졸중환자 2050년 2배…응급실 신경계 전담의 필요
뇌졸중은 뇌혈관이 막히는 뇌경색과 혈관이 터지는 뇌출혈을 아우르는 중증응급질환이다. 이 중 국내 뇌졸중환자의 약 80%는 뇌경색이다. 뇌혈관이 막히면 1분마다 약 200만개의 뇌세포가 손상될 수 있어 정맥 내 혈전용해술과 동맥 내 혈전제거술을 얼마나 빨리 시행하는지가 생존과 후유장애를 좌우한다.
대한뇌졸중학회 김태정 홍보이사(서울대학교병원 중환자의학과&신경과 교수)는 ‘1분이 생명을 바꾼다 : 초고령사회 뇌졸중 급성기 치료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김태정 홍보이사는 현재 국내에서 매년 약 15만명의 신규 뇌졸중환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2050년에는 약 두 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약 5조원인 연간 의료비도 환자 증가와 중증 후유장애에 따른 재활·요양 부담이 더해지면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뇌졸중은 치료가 조금만 늦어져도 환자의 예후가 크게 달라진다. 김태정 홍보이사가 발표한 사례에 따르면 한 환자는 증상 발생 1시간20분 만에 병원을 찾았지만 혈전제거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돼 결국 중증장애가 남았다. 반면 같은 시간 안에 혈전제거술이 가능한 병원에 도착한 다른 환자는 3개월 뒤 증상 없이 업무에 복귀했다.
문제는 급성기 치료가 가능한 의료기관과 전문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국 약 120개 지역응급의료센터 가운데 급성기 뇌졸중 치료가 가능한 곳은 절반 수준이다. 응급실 병상이 있어도 신경과 전문의나 혈전제거술을 시행할 인력이 없으면 환자를 받을 수 없다.
응급실과 배후 진료과 간 소통체계 미흡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현행 권역응급의료센터 지정기준에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배치기준만 필수로 규정돼 있고 신경과·신경외과 등 배후 진료과 전문의 배치는 선택사항이다. 이 때문에 환자의 중증도와 치료 가능 여부를 신속하게 판단하지 못해 전원이 지연될 수 있다.
대한뇌졸중학회는 우선 권역응급의료센터 평일 주간부터 신경계 전담의를 배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신경계 전문의가 119와 직접 소통하면 이송 전 환자의 중증도와 시술 가능 여부를 판단해 불필요한 전원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태정 홍보이사는 “국내 뇌졸중 사망률은 낮아졌지만 후유장애가 남는 환자는 여전히 많다”며 “초고령사회에서는 단순히 생존하는 것을 넘어 환자가 노년에도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골든타임 안에 치료받는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는 표준치료…국내서는 못 쓰는 파킨슨병치료제
파킨슨병은 도파민을 생성하는 신경세포가 줄면서 움직임이 느려지고 몸이 뻣뻣해지는 진행성 퇴행성질환이다. 우울과 수면장애, 변비 등 비운동증상도 함께 나타나 환자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대한파킨슨병 및 이상운동질환학회 권도영 홍보이사(고려대안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신약 도입 지연과 필수 치료의 공백 : 환자치료의 사각지대’를 주제로 발표했다.
파킨슨병은 현재 완치법은 없지만 레보도파 등 도파민을 보충하는 약물로 증상을 크게 개선할 수 있다. 단 병이 진행되면 약효가 다음 복용시간까지 유지되지 않는 ‘약효소진’과 의지와 관계없이 몸이 움직이는 ‘이상운동증’이 발생할 수 있다.
약물흡수 문제도 있다. 파킨슨병환자는 위장관운동이 저하된 경우가 많아 약을 처방대로 복용해도 위와 장에 오래 머물면서 제때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환자 상태에 따라 약물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거나 위장관을 거치지 않는 투여방식이 필요하다.
해외에서는 흡입제와 패치제, 설하제, 피하주사제, 지속주입제 등 다양한 치료제가 짧게는 5년, 길게는 20년 이상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러한 치료옵션 대부분을 사용할 수 없다. 해당 약제들은 임상시험 단계의 신약이 아니라 이미 해외에서 표준치료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 학회의 설명이다.
파킨슨병환자와 보호자 31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65.7%가 가장 시급한 정책과제로 ‘해외 신약의 신속한 도입’을 꼽았다. 학회는 낮은 약가와 성분 중심의 획일적인 가격산정, 복잡한 급여절차 때문에 제약사가 한국 출시를 포기하는 사례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권도영 홍보이사는 “해외에서는 이미 표준치료로 사용되는 약제를 국내 환자만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새로운 제형과 약물전달기술의 가치를 인정하고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옵션이 신속히 도입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기자간담회에서는 치매 치료의 새로운 방향도 소개됐다. 대한치매학회 김희진 홍보이사(한양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항아밀로이드 항체 치료제 등장으로 치매 치료가 증상완화에서 질병 진행을 늦추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 약물치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만큼 환자의 일상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인지중재와 보호자교육, 사회활동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